PwC가 올해 한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보고서의 이름은 '물류산업의 미래(Shifting patterns : The Future of the Logistics industry'). (보고서 전문 다운로드)
보고서를 쭉 훑어보다 보니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이거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주구장창 말했던 내용인데..."
보고서 전문은 CLO 칼럼리스트이기도 한 인천대 송상화 교수님께서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정리된 기고는 송상화 교수님의 독특한 필치와 함께 읽어볼 수 있으니, 저처럼 영어울렁증이 심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마존·구글·우버가 한 자리에, 미래 공급망에 닥칠 4가지 변화>
요약하자면 PwC는 크게 '물류 네트워크 공유', '스타트업의 시장혁신', '복잡한 경쟁구도',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물류산업의 다가올 미래(Possible Future)를 예측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PwC가 예측한 미래와 CLO가 올 한해 취재했던 내용 사이 상당 부분 접점이 존재했다는 점이죠!
어찌됐든 자랑글입니다. 반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소형 전문매체가 전한 내용이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으로 꼽히는 PwC와 맞닿아 있다니... 그것만으로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물류 네트워크 공유(Sharing the P.I.)
2. 스타트업의 시장혁신 (Start-up, Shake-up)
3. 복잡한 경쟁구도(Complex Competition)
4. 규모의 경제(Scale Matters)
PwC가 제시한 미래물류를 바꿀 핵심기술(자료=PwC)
1. 물류 네트워크 공유
기존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부분에서 새로운 업체가 나타나 네트워크 공유 및 협력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여러 기술로 인해 업체간 네트워크 공유는 이전보다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게 PwC의 설명이기도 합니다.
국내 물류업계에서도 네트워크 공유 현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라스트마일 물류판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간 협력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라스트마일 물류 분야에서만 CJ대한통운-메쉬코리아, 현대로지스틱스-고고밴코리아, KG로지스-퀵퀵, SK플래닛-원더스, GS샵-허니비즈 등 여러 협업 사례가 탄생했습니다. 택배업체가 허브앤스포크 시스템의 한계로 제공하지 못하는 당일배송 서비스를 이륜차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첫번째로 메쉬코리아가 CJ대한통운과 MOU 이후 1년만에 정식 제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기존 택배 네트워크로는 불가한 '3시간 배송' 서비스를 메쉬코리아의 이륜차 네트워크와 솔루션을 통해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향후 CJ대한통운과 메쉬코리아는 CJ대한통운이 전략적으로 밀고있는 지역인 동남아시아 지역 확장에 있어서도 이륜차 솔루션 공유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참고로 관련기사는 메쉬코리아와 CJ대한통운이 보낸 보도자료가 섞인 기사이며, 구체적인 제휴 관련 기사는 올 1월 오프라인 잡지 송고를 준비중입니다. (관련기사= CJ대한통운, 물류스타트업과 협력 서울지역 3시간 배송 개시)
CJ대한통운과 메쉬코리아의 지난해 MOU 이후 또 다른 택배업체인 현대로지스틱스와 KG로지스도 각각 이륜차 물류스타트업인 '고고밴코리아', '퀵퀵'과 함께 제휴를 추진했는데요. 각각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그간 택배업체가 제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네트워크 공유를 통해 제공하자'는 취지는 동일했습니다. (관련기사=고고밴-현대로지스틱스, 라스트마일 협업모델 론칭 임박) (관련기사2=KG로지스의 퀵서비스 파트너로 ´퀵퀵´이 선정된 이유)
택배업체가 아닌 업체간 협업사례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뜨거웠던 사례로는 SK플래닛과 이륜차 스타트업 원더스의 협업 사례를 꼽을 수 있겠네요. SK플래닛은 11번가 이벤트 물량을 그들이 신규 론칭한 화물정보망 '트럭킹'을 통해 집하하고, 원더스를 통해 110분 안에 라스트마일 직배송 하는 방식을 통해 네트워크를 공유했습니다. (관련기사= 이륜차 만난 SK플래닛의 화물정보망, 11번가 110분 배송 시동)
2. 스타트업의 시장혁신
사실 저는 지난해 3월부터 '대한민국 물류스타트업백서'라는 이름의 연재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숨은 아픔이 많은 연재인데요... (숨은 아픔에 관해서= 대체 '물류스타트업'이 뭥미?)
당시 도무지 '물류'만 하는 스타트업은 찾으래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달, 유통, O2O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뭔가 사람이나 화물이 움직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가리지 않고 취재를 나갔었죠.
그래서 인연이 닿은 업체가 '배달의민족(배달중개만 했던 시절. 지금은 직접물류도 합니다.)', '짐카(O2O 이사)', '허니비즈(배달)', '크린바스켓(O2O 세탁)', '베이팩스(O2O 화물운송, 엑싯했습니다.)', 헬로네이처(식자재 커머스) 같은 업체였습니다.
연재 기사의 이름은 '물류스타트업 백서'라 붙였지만 실제 소개된 업체중 '물류'만 하는 업체는 드물었고, 서비스의 핵심 가치 역시 물류가 아닌 업체도 많았죠. 그나마 물류한다고 하는 업체도 '라스트마일 물류', 즉 이륜차퀵과 배달분야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1년이 지나니 순수하게 '물류'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들도 꽤 생기더군요. 대표적인게 마이창고, 트레드링스, 포에스텍, 헬로쉽, 아이씨비, 인프로, 리턴박스 같은 업체들이죠. (이륜차 물류는 워낙 많고 위에 언급돼 일부러 뺐습니다.)
투자액 기준으로도 물류스타트업들은 많이 성장했습니다. 이륜차 물류스타트업 메쉬코리아가 누적투자 230억원으로 국내 물류를 내세우는 스타트업 중 제일 많은 투자를 유치했으며, 그 뒤를 허니비즈 (175억원), 트레드링스(20억원) 등이 잇는 상황입니다. (사족으로 어찌됐든 물류를 품고있는 업체들까지 전부 꼽자면 1조원대의 투자를 유치한 유니콘 '쿠팡', 10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한 '우아한형제들'까지 포함됩니다.)
(관련기사= 강남을 넘어간 O2O, 띵동의 탈강남을 바라보며)
(관련기사= 트레드링스 "무역업계를 연결하기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도 확실히 늘어났죠. 국토교통부는 올해 처음 '한국물류대상'에 스타트업 6개 기업을 선정하여 포상했습니다. 지난 7월 최종 발표된 '국가물류기본계획 2016-2025'(국토부, 해수부가 5년마다 발표하는 계획으로 향후 10년간 한국 물류정책의 기조를 정합니다.)에도 '스타트업'은 중요한 꼭지로 언급됩니다. 관련하여 스타트업 육성 및 지원 관련 예산도 따로 배정된 상황입니다.
(관련기사= 물류대상 첫 스타트업 선정 “IT와 신유통까지 포괄했다”)
물론 물류판에 들어오고 있는 새로운 업체들에게 PwC의 보고서 마냥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이들이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관련기사= 세상을 바꿀 대한민국 물류스타트업 33選)
3. 복잡한 경쟁구도
물류산업에 유통, IT, 제조 등 별별 이상한 애들이 다 섞여 들어와 한 전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잊혀질때마다 한 번씩 언급하는 '산업간 영역붕괴'가 이 내용이죠. 이제는 좀 많이 지겹기도 하구요...
사실 CLO 콘텐츠의 대부분은 이 꼭지가 기본적으로 잠재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실 저희가 쿠팡, 카카오, SK플래닛, 배달의민족과 같은 업체의 기사를 쓸 이유는 전혀 없지요.
스스로 물류기업 아닌 IT기업이고, 로켓배송은 'Just 서비스'라고 언급했던 쿠팡은 지난 여름 무려 '물류스타트업 채용박람회'에 연사로 참여하여 "쿠팡의 성장을 이끈 것은 물류"라는 오프닝 멘트를 때려버립니다. 최근 2시간 배송 서비스를 철수하고, 로켓배송 기준가격을 올리는 등 여전히 로켓배송과 관련된 논란은 산재해있지만, 앞으로 쿠팡의 물류 DNA 변화는 여전히 주목할 부분입니다.
(관련기사= IT기업 쿠팡이 물류기업 채용박람회에 참여하는 이유)
제가 참 많이 좋아하지만 기사 써도 트래픽은 잘 안나오는 기업 카카오는 물류를 하는 기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카카오는 그들의 중요 성장 꼭지인 O2O의 방향성을 '스마트 모빌리티'로 잡으면서 배달, 물류산업 진출 가능성을 본격 시사했습니다. 현시점 카카오 '스마트 모빌리티' 전장의 중심에는 대리운전 서비스인 '카카오드라이버'가 있구요.
물론 카카오가 펼친 대리운전 O2O 전선의 상황은 그리 좋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는 최근 카카오가 카카오드라이버 관련 대규모 고객 광고를 시작했으니 결과를 찬찬히 살펴봄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카카오드라이버의 성패에 따라 그 다음 출시될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의 방향 역시 결정될 수 있으니까요.
(관련기사= 카카오드라이버의 위기, 스마트모빌리티의 향방)
이 외에도 최근 SK플래닛은 '트럭킹'이라는 이름의 '화물정보망'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서비스 비전 2.0(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곳에서) 선포 이후 여러 물류관련업체(신선식품 커머스 '덤앤더머스', 배달대행업체 '두바퀴콜')를 인수했습니다. 새롭게 물류판에 들어온 IT업체들은 분명 기존 물류기업에게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경쟁자로 다가올 전망입니다.
(관련기사= SK플래닛이 물류를 하는 시대, 그들의 경쟁력)
(관련기사= 배달의민족의 공격적 M&A, 그 끝에 있는 것)
어찌됐든 산업간 경계는 한참 전에 무너졌고 그 사례는 굳이 아마존, 구글, 징동, 텐센트 같은 해외 기업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4. 규모의 경제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는 여전히 물류 역량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거론됩니다. 사실 CLO가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집중했던 콘텐츠는 이쪽이었는데요... 한동안 소홀했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빅딜이 터져 그때마다 정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최근 사례로는 CJ대한통운의 스피덱스, 롱칭물류 인수를 통한 중국 네트워크 강화, SK C&C의 물류로봇 기업 에스엠코어 인수를 통한 HW와 SW의 융합추진, CVC캐피탈의 로젠 인수 등이 대표적입니다.
(관련기사= CJ대한통운 롱칭물류 인수 이후, 중국사업 확대 가속)
(관련기사= SK C&C 물류로봇 기업 에스엠코어 지분 인수, ´스마트팩토리´ 정조준)
(관련기사= 새 주인 맞은 로젠택배, 인수가 3300억이 결정되기까지)
'M&A'하면 또 하나 언급되는 키워드가 '수직적 통합'이기도 한데요. 항공, 해운분야까지 통합하고자 하는유통공룡 아마존, 자율주행트럭 제조기업 오토(otto) 인수를 통해 향후 펼쳐질 무인물류 전선을 강화하는 우버(UBER)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월마트와 유니레버가 각각 '제트닷컴', '달러쉐이브클럽'이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관련기사= 아마존과 가격으로 경쟁한 스타트업, 제트닷컴의 비밀)
(관련기사= 스타트업에 흔들린 P&G, 제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세상)
Logistics is Everywhere
어찌됐든 이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되돌아 보니 CLO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렇게 헛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음 고민이 시작됩니다. 모든 기자들의 숙제 "내일 기사 뭐쓰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앞으로의 이야기는 현재 벌어지는 이야기들의 업데이트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CLO의 기조인 "물류로 세상 보기"입니다. 물류는 세상 어디에든 있으니, 세상 어딘가 있는 물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지난 4월 CLO가 주최한 로지스타서밋에서 "세 발짝만 걸어도 물류"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실제 마지막 세 발짝인 라스트마일 분야, 그것을 넘어 물류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물류판에서 수없이 많은 서비스가 탄생하고 있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