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에 도전한 달러쉐이브클럽, 유니레버에 10억 달러 인수
경계가 무너진 시대, 제조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핵심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동기화´, 파괴적 혁신을 찾아서
글.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Idea in Brief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제조업 서비스화’의 시대가 열렸다. 자연히 제조, 유통, 물류를 나누던 산업간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제조기업이 직접 제품을 고객에게 정기배송하고, 유통기업이 제품을 개발하며, 제품판매보다 제품과 관련된 종합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들을 등장하고 있다. 혼란의 시대, 소비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 본질에 대한 고민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탄생한다. |
‘그 비디오’ 에서 마이크 더빈(Mike Dubin) CE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매달 면도기 구매에 20달러를 지불하시면 19달러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가 가져가죠”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면도기에 진동기능이 필요한가요? 수많은 신기술이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기업들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거액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그것보다 더 많은 돈을 광고 및 홍보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보다 차별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돈을 더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이상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상당수 제품에서 이미 기술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수준을 넘어서 있죠. HD TV로도 이미 훌륭한 수준인데, Full HD를 넘어 4K Ultra HD TV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기술 개발로도 차별화가 쉽지 않고, 더 이상 개발할 기술도 없고, 남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쉬운 방법으로 드라마에 간접광고하고, 인기스타가 무의미하게 등장하는 수많은 광고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갑자기 웬 브랜드 이야기일까요?
P&G를 흔든 스타트업의 도전
2016년 7월, 달러쉐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의 CEO 마이크 더빈(Mike Dubin)은 4년된 회사를 10억 달러에 유니레버에 매각하여 엑싯(Exit)에 성공하게 됩니다. 불과 4년만에 10억 달러. 앞서 언급한 ‘그 비디오’는 돈이 부족했던 사업 초창기 마이크 더빈이 유튜브에 올렸던 광고 비디오였고, 그 비디오에서 마이크 더빈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매월 1달러를 내면 정말 좋은 품질에 기본기가 충실한 면도기를 집으로 보내주는 정기구매(Subscription) 방식의 기업을 창업한 것이죠.
(사진= P&G의 대표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
당시 면도기 시장을 장악한 기업은 P&G였고, P&G는 화려한 면도기와 화려한 광고로 시장을 선도해 왔습니다. P&G 면도기 자체의 품질이 나쁠 리가 없겠지만, 제품 브랜드를 명확히 소비자에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P&G는 본질을 벗어난 곳에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습관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돈을 불필요하게 지불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현상과 겹쳐 마이크 더빈이 면도기라는 제품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바로 ‘달러쉐이브클럽’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종말(?)
오랜 기간 제조업체들은 제품 자체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기술 개발에 몰두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품질이라는 것은 고객 신뢰로 이어져 제품의 브랜드가 되었죠. 제조업체들이 브랜드를 구축하고 나면 제품 판매는 유통 채널을 통해 이루어져왔습니다. 저품질의 제품과 고품질의 제품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이고, 제품 브랜드 구축이야말로 제조업체들의 핵심 과업이었던 시대였습니다.(물론 당연히 지금도 유효한 전략입니다. 아이폰을 보세요.)
하지만 기술이 평준화되고, 시장이 성숙함에 따라 이제 누구나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제품 그룹에서 기술 개발과 혁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군에서는 기술 평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죠. 브랜드만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전에 직면한 P&G, 그들의 대응은
앞선 사례로 돌아가서 경쟁사 P&G 역시 달러쉐이브클럽의 성장에 자극을 받고 새로운 혁신을 시도 중 입니다. 2016년 7월 P&G는 타이드워쉬클럽(Tide Wash Club)과 타이드스핀(Tide Spin)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애틀랜타 지역에서 테스트하고 있는 타이드워시클럽 서비스는 정기적으로 세탁세제 타이드(Tide)를 소비자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입니다. 타이드스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타이드(Tide) 제품으로 세탁하는 세탁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비스입니다. 바로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세탁 O2O 서비스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정기배송 서비스는 이미 아마존이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대쉬(Amazon Dash Button), 아마존프라임(Amazon Prime Membership)을 통해 버튼만 누르면 해당 제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도입됐습니다. 미래에는 아마존어제배송(Amazon Yesterday Shipping)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예측하여 배송하는 서비스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P&G의 수많은 일반소비재 상품들, 샴푸, 로션 등도 미래에는 서브스크립션 형태로 정기배송되는 시기가 올수도 있습니다. P&G가 제조업체에서 서비스업체, 유통업체로 바뀌는 것이죠.
P&G는 내부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P&G는 전통적으로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만 집중하고(로저 페더러에게 광고비도 줘야죠.), 유통은 전문 유통 채널을 통해 처리해왔습니다. 그런데 제조업체가 달러쉐이브클럽처럼 정기배송 서비스에 뛰어들게 되면서 전통적 파트너인 유통 채널과 경쟁하는 셈이 됐습니다.
실제 달러쉐이브클럽의 등장 이후 면도기 시장에서 P&G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왔고, 온디맨드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또한 편리한 오더풀필먼트(Fulfillment Service)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P&G의 전략인 제품 기술에 있어 과도한 차별화나 광고/홍보에 기반한 차별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제조업체도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다가왔고, 이는 곧 제조업체의 직접 유통 방식으로 진출을 유도하게 됩니다.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이를 ‘제조 산업의 서비스화’라고 합니다. GE와 같은 기업의 예를 들면, 전력산업에서 발전기 터빈 제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발전기 터빈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고, 전력을 생산하고, 파이낸싱을 도와주는 등 전체 서비스를 판매하여 얻는 매출이 제품 판매 매출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제품을 활용하여 ‘가치(Value)’를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객이 자동차를 구매하는 이유는 A에서 B로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사실 자동차의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이동보다는 주차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편리하게 자동차를 공유할 수 있다면, 자동차를 구매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공유하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자동차 기업들은 앞 다투어 자동차 공유 기업들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GM은 우버(Uber)의 경쟁자 리프트(Lyft)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포드(Ford) 역시 자동차 공유(Car Sharing)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기업들이 제품 자체가 아닌 서비스의 본질에 집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그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가치를 필요로 한 것이므로, 제품이 아닌 ‘서비스’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버가 자동차 산업을 재정의하고, 달러쉐이브클럽은 P&G의 면도기 판매 시장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GE는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제품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제품 판매에 따른 이익보다 전체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타이어회사들은 타이어 임대(Rental) 서비스를 내놓았고, 정수기 시장에서 코웨이 역시 렌탈 비즈니스를 성공시켰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은 깨끗한 물이었지, 정수기는 아니었던 것이죠. 깨끗한 물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게 되면 정수기에 이것저것 기술을 집어넣어 차별화하는 것보다 매월 필터를 교체하고 정수기를 청소해주는 서비스가 더 중요해집니다.
혼란의 시대, 파괴적 혁신을 찾아서
제조산업의 서비스화는 결국 산업간 경계를 허물게 됩니다. 유통기업도 제품을 개발할 수 있고(이마트의 노브랜드 제품, 코스트코의 Kirkland), 제조기업도 직접유통에 뛰어들 수 있으며, 물류기업이 유통에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관건은 누가 더 효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 동안 큰 고민 없이 ‘제품을 구매’해왔던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면 고객을 자신의 생태계에 머물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 번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제품 브랜드에 의존하던 시대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제조산업이 서비스화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제품 자체의 기술력이 가치(Value)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조산업이 큰 변화에 직면한 것은 확실합니다. 지난 6월 KBS 스페셜에 방영된 ‘최고 기업의 성공전략’에서 영국 패션기업 올세인츠의 한국인 CEO 윌리엄 킴은 올세인츠 성공 조건 중 하나로 ‘디지털 전략’을 얘기했습니다. 실제 해당 방송에서 보여주는 올세인츠의 모습은 여느 패션기업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마치 IT기업을 보는 것처럼 올세인츠의 직원들은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발 빠르게 찾아내고 이를 제품화한 후 고객에게 배송했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고, 그 핵심 가치, 즉,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죠.
우리가 제조기업이든, 유통기업이든, 물류기업이든, 우리의 핵심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동기화(Matching Supply with Demand)’에 있을 것입니다. 10년 뒤 우리가 제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 바뀔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모든 제품을 소비자들이 유통 채널을 통해 직접 구매하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대가 열릴 것인지. 그리고 달러쉐이브클럽과 P&G의 경쟁은 어떻게 진행될지. 유니레버가 지불한 10억달러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아마도 제품 자체의 강력한 차별화를 이룬 기업과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한 기업으로 양분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품이 아닌 서비스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도 지속적으로 살펴봐야겠습니다. 바로 거기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숨어있고, 시장 선도기업을 해체하는 파괴적 혁신이 있을테니까요.
한국지역난방공사, 홈플러스그룹, POSCO, CJ대한통운, 현대엠앤소프트 등 제조, 유통, 물류 분야의 기업들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였고, 삼성전자, LG전자, CJ제일제당,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생산성본부, 국군수송사령부 등과 함께 SCM 및 물류혁신 관련 교육을 진행하였다. Marquis Who's Who, IBC 등 인명사전 등재 및 논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관심분야는 SCM 최적화, 물류 및 유통 혁신, 위치 기반 서비스 및 네비게이션 최적화 등이 있다.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