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예리의 물류찾아삼만리② 해상운송론(feat. 성결대)
한국해운업의 발전, 글로벌 5위권 도약의 이유
흔들리는 한국해운, ´건강한 해운 생태계´를 찾아서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는데, 왜 아이템은 못찾아오나 (편집자주)
때는 11월 초, 편집회의. 그 날도 기자들은 아이템 발제에 대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쏟아냈다. 왜 그럴까.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는 우리 매체의 모토고,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은 아무거나 가져와 봐라"가 필자의 편집방향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을 물류관점으로 쓴다면 아이템은 어디에든 굴러다니지 않겠느냐가 필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더라. 여타 물류를 전공한 CLO 기자들과 달리 우리의 신입기자는 물류를 따로 배우지는 않았었다. ´물류관점´이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물류로 글을 쓸 수 있겠나. 편집자의 실책이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기자 좋은 게 뭔가. 쟁쟁한 학계 인사들로부터 무료 과외가 가능하다. 과거 학창시절 필자는 80명 이상의 학생이 우글거리는 교실에서 한 명의 교수님께 수업을 들었다. 당연히 개인간 소통은 어렵다. 그런데 기자는 최소한 간담회가 아니라면 1:1 인터뷰가 원칙이다. 심지어 3:1, 4:1로 오시는 분들도 흔하다.(여기서 1은 기자다) 그래서 보냈다. 학계의 인사들을 찾아가서 "해당 분야에 대한 개론형식의 가르침을 달라"고 요청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들은 것을 물류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마찬가지로 물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 쉽게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필자도 물류학을 4년 배웠지만, 몇 가지 기초적인 정의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이럴 때는 부끄러운 마음에 조금은 아는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렁술렁 넘어가고 나중에 개념을 열심히 찾아본다.) 학창시절 배우지 못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술을 많이 먹어 알콜성 치매가 왔던 탓일까.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필자 또한 신입기자의 글을 통해 무엇인가 배워보고자 한다.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는데, 왜 아이템을 못찾을까 (필자주)
CLO에 정식으로 입사한지 2개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물류가 얼마나 많은 산업 영역과 연결될 수 있는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타나는지 하루하루 느끼는 중이다. 처음 선배는 "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이게 우리 매체에 써도 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넘치는 게임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고 발제했다가 까이기도 했다. (위에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다 가져와봐라는 이야기 중 ´아무거나´는 뻥인 것 같다.) 어찌됐든 물류는 참 어렵다. 어디에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도무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본연재를 시작했다. 최근 CLO 구독자 중에서도 이상하게 물류산업에 속하지 않은 분들이 많이 눈에 띈다. 얼마전에는 왜 SCM의 의미를 풀어주지 않느냐는 독자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래. 이거다. 세상에는 필자처럼 물류는 잘 모르지만 물류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은 꽤나 많을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물류 이야기를 조금은 쉽게, 어차피 필자도 잘 모르는 마당에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연재를 시작한다. 업계 고수분들의 신랄한 첨언은 언제든 달게 받도록 하겠다.
해상운송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리적 이점, 풍부한 인적자원, 자본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건강한 해운 생태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대체 건강한 해운생태계란 무엇일까요? 이번 편에서는 한종길 성결대학교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와 함께 해상운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한국 해운의 성장과 약점
한국은 처음부터 해운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미얀마나 필리핀처럼 값싼 임금으로 타국의 ´편의치적선´에 승선했던 것이 한국 해운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에 경제무역, 특히 수출무역을 강조했던 국가기조는 해운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이 됐습니다. 수출물량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자연히 해운선사가 처리하는 물량 역시 늘어나니까요. 무역업이 발달한 일본과 최근에는 주춤하지만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이점도 한국 해운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로 꼽힙니다.
편의치적선(FOC: Flag Of Convenience): 세금을 줄이고 값싼 외국인 선원을 승선시키기 위해 선주가 소유하게 된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제3국에 치적하는 것.
그렇게 한국은 수출무역 중심의 경제발전 정책을 중심으로 한국 해운업을 세계 5위권으로 올려 놓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수출을 중시´했기에 발생한 한계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출이 중요했던 우리나라 입장에서 조선사는 한진이나 현대상선과 같은 한국 선사와의 거래를 멀리 했습니다. 외국에 선박을 파는 것은 수출이 되지만, 한국 선사에 선박을 파는 것은 수출이 아니었으니까요.
한 교수는 “과도한 수출 위주의 성장이 지속되다보니 우리나라 선사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배를 사고 싶더라고,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해운과 조선이 서로 협력적인 관계를 갖추지 못한 것은 한국 해운업의 태생적인 약점이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상운송은 선박을 이용합니다. 따라서 해운을 이야기할 때 조선업과의 연계를 떼서 설명할 순 없습니다.
실제 해운업의 쇠퇴는 조선업의 쇠퇴와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말뫼의 눈물´ 사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2002년 스웨덴 말뫼의 조선업체 코쿰스(Kockums)가 문 닫으면서 그들이 만든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을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매각한 사건을 말합니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당시 크레인이 해체되어 떠나는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사실 스웨덴이 크레인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스웨덴의 조선업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스웨덴 해운업의 쇠퇴가 있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입니다.
흔들리는 한국해운, 돌파구는?
한 교수는 해운시장의 경쟁력은 결국 ‘건강한 해운 생태계’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국 해운사업에서 조선과 해운의 연관관계, 화주와 해운의 연관관계가 없었던 것이 얼마 전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밝혀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덧붙여 “자국내에서 조선·해운·선박금융 세 분야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해운시장이 가진 태생적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선박금융의 문제점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부가 선사를 대상으로 조성한 ‘선박펀드’의 이용자격은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설정했던 ´부채비율 200% 이하´였습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이런 수치를 맞추기 위해 선박 발주가 아닌 용선에 집중했고, 결국 두 회사는 고용선료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최근 정부는 선박 하나를 발주하면 선사의 부채비율은 순식간에 올라가는 점 등을 고려해 이 수치를 ´400% 이하´로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정책적으로 해운·조선·무역, 세 분야가 서로 다른 정부부처에서 논의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도 한국해운이 흔들리는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힙니다. 이 외에도 기업 간의 신뢰관계가 부족해 협력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삼성이 만든 제품을 그룹 경쟁사인 현대상선에 실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한 교수는 “기업 간 신뢰관계를 조정하는 것 역시 해운정책의 역할이지만, 이제까지는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모습이었다”며 “향후 국제경쟁 역학을 고려한 장기적인 정책 수립과 수행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