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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은, 시대를 담지 못한 ‘화운법’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8월 14일

타이어, 화물운송시장

 

글. 임예리 기자

 

지입제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

 

국내 화물운송시장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화운법)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이해관계자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몇 번이나 개정되었음에도 화물운송시장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830발전방안(‘화물운송시장의 역사, 진입규제를 중심으로’ 참고) 역시 50차례 이상 관계자 협의를 거쳐 발표되었으나, 발표 이후 화물연대가 이에 반발,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특히 화운법 제정 당시부터 개선하고자 했으나 현재까지도 이해관계자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란 속에서 고착화된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지입제다. 지입제는 1960년대부터 국내에 있어왔다. 시장진입규제가 영업용 번호판의 가치를 올린 배경이었다면, 지입제는 현재 화물운송시장의 운임하락을 초래하는 ‘다단계 운송구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화물자동차는 소유하지 않고 번호판만을 가진 운송주선업체가 다단계 알선을 하면, 결국 지입차주에게 돌아가는 운임은 낮아지는 것이다.

지입제: 판례(대법원 2007.1.25. 2006다61055 판결)에 따르면, 지입계약이란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와 실질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차주 간의 계약이고, 지입이란 외부적으로는 자동차를 사업자 명의로 등록해서 운송사업자에게 귀속시키고 내부적으로는 각 차주들이 독립된 관리 및 계산으로 영업을 하면서 운송사업자에게 지입료를 지불하는 운송사업 형태를 말한다.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지입제는 차주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운송/운송주선업체가 영업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지입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차주로부터 높은 지입료를 받거나 차주의 번호판을 차주의 동의 없이 회수하는 악덕 운송업체가 생겼고, 화물차는 보유하지 않고 영업용 번호판을 이용해 차주로부터 받는 지입료만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60년대부터 각종 규제를 도입해 이러한 지입제의 폐해를 줄이고자 했다. 최근에는 실적신고제, 직접운송의무제, 최소운송의무제를 핵심으로 하는 화물운송시장 선진화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제도는 관리감독 부족 탓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연히 지입제의 폐단 역시 여전하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관리감독이 강화되면 지입제의 폐단이 사라질까. 지입제가 국내 화물운송시장의 다단계 구조를 형성한 근간이라면, 그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지입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입제가 입법을 통해 도입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입제는 어떻게 현재의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인지 우선 살펴보자. 지입제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타인의 명의를 빌려(명의신탁) 운송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법은 ‘이름(명의)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금융거래나 부동산거래 등 타 산업에서는 실명제를 도입해 명의신탁을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 화운법에도 명의대여 금지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대법원 판결을 거치면서 지입제는, 법률상 명의대여 금지 규정이 ‘떡하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대법원은 ‘타인의 이름으로 운송사업을 할 수 없다’에서 ‘타인’을 해석함에 있어, 지입차주를 타인으로 보지 않았다. 지입차주를 화물차를 현물출자하여 회사의 주주가 된 사람인 동시에 지입회사로부터 일괄적인 지시·감독을 받는 사람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화운법 개정 당시, 운송사업자는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필요하면 타인(운송사업자를 제외한 개인)에게 차량과 그 경영의 일부를 위탁하거나 차량을 현물출자한 사람에게 경영의 일부를 위탁할 수 있다고 정함으로써, 지입제는 완전히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지입제는 도입된 제도라기보다 시장에 이미 존재하던 것을 판결과 판례의 해석을 통해 합법의 영역으로 집어넣은 경우다. 지입제는 시장진입제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국내 화물운송시장에서 더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됐다. 규제에 따라 운송사업자는 일정 수 이상의 화물차를 보유해야 했고, 지입제를 활용해 허가 기준을 맞추고자 했다. 그리고 화운법 제정 이후, 잠깐 동안의 등록제 기간 이외에는 화물운송시장에서 신규 영업용 번호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 결과 일종의 자격에 지나지 않는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의 희소가치는 높아져 ‘가격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한편 화물운송을 하려는 차주들은 늘어났고, 그들은 물량을 얻기 위해 회사와 지입계약을 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운송회사 중 80~90%가 업무에 지입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지입제가 만연하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모든 운송회사가 악질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걸핏하면 화주에게 '절감 대상'이 되는 물류비는 운송회사에게 직영차량을 보유할 정도의 여유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양한 규제와 정책을 도입하며 지입제의 폐단을 완화하고자 했다. 특히 작년 10월, 지입차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지입제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지입제의 부작용만을 완화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화물운송시장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김천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제 논의를 할 때, 가령 ‘다른 산업과 달리 화물운송시장에서만 명의신탁을 허용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있는지’와 같은 고민처럼 관련 정부부처의 태도와 입장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문제를 인식했으면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한데, 이제는 지입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소용돌이는 잠잠해질까

 

이처럼 복잡하게 형성된 구조는 화물운송시장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기존 화물운송시장 참여자가 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물론, 새로 화물운송시장에 진입하려는 이들 역시 그 소용돌이를 보며 머뭇거리거나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830발전방안 발표 당시 국토부는 해당 방안을 통해 혁신기업의 시장진입과 IT 기반 물류스타트업의 창업을 유도하여 한국 물류시장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즉 시장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것인데, 이는 이제껏 시장진입장벽이 높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다시 말하면 아직까지 화물운송시장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화물운송시장 진입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가령 라스트마일 배송을 위해 영업용 화물차가 필요한 스타트업의 경우, 현재 허가제 아래에서는 새로 영업용 번호판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스타트업은 약 3~4천만 원을 들여 시장에 있는 기존 영업용 번호판을 구매해야만 한다. 하지만 막 성장하는 이들에게 이 정도 가격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들은 렌트카를 이용해 불법 배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용진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현 정부의 가장 주된 아젠다는 일자리 창출이고, 일자리 창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진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규제는 기존 화물운송시장에 자리 잡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 진입하고자 하는 제조, 유통, 외국계 기업, 스타트업을 역차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한편 우리가 화물운송시장의 진입장벽과 규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4차 산업혁명과 그것이 이끄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공유경제 비즈니스’를 꼽았다. 공유경제의 대표격인 우버(Uber)는 유휴 자가용을 활용해 여객을 운송한다. 그리고 우버는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공유경제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 중 하나”라며 “화물시장에서는 ‘수송’이 공유경제의 타깃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가용 화물차로 우버와 같은 모델을 운영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령 현재 국내에서 자가용 화물자동차의 유상운송 영업은 불법이다. 김 교수가 말한 ‘자가용 화물차 공유’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자가용 영업문제, 화물자동차의 렌트카 시장 진입 장벽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김 교수는 “공유경제라는 큰 흐름에서 본다면, 자가용을 활용한 화물운송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지금의 화물차 수급조절이나 증차, 시장진입제도 문제 역시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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