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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시장의 역사, 진입규제를 중심으로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8월 13일

화물운송시장

글. 임예리 기자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에는 1)화물자동차 운송사업 2)화물자동차 운송주선사업 3)화물자동차 운송가맹사업이 있다. 우선,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이하 운송사업)은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하여 화물자동차를 사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사업을 말한다. 다음, 화물자동차 운송주선사업(이하 운송주선사업)은 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채 화주로부터 의뢰받은 화물을 운송업체 또는 화물차주에게 연결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끝으로, 화물자동차 운송가맹사업(이하 운송가맹사업)은 운송주선사업이 확대된 개념이다.

 

국내 화물운송시장에는 운송사업과 운송주선사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운송사업은 다양한 톤급과 종류의 화물자동차를 보유하여 운송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운송사업 종사자들은 운송주선사업자나 운송가맹사업자보다 법적 규제에 더 민감하다. 이 말은 곧 사업 환경 개선의 여지가 다른 사업에 비해 더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면허제에서 등록제, 다시 허가제로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일반 승용차와 달리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서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영업용 노란색 번호판이 필요하다. 화물도 마찬가지다. 돈을 받고 타인의 화물을 운송하려면 화물차에 노란색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즉, 노란색 번호판은 차주나 운송사업자가 합법적으로 화물운송시장에 진입했는지 판단하는 일종의 기준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면허제와 등록제를 거쳐 현재의 허가제까지 시대환경에 따라 변해왔다.

화물운송시장 진입규제 변화

 

1961년 12월, 국내 자동차 운수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제정됐다. 이후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화물자동차운송사업’이 큰 틀에서 함께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그러다 1997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화운법)’이 정식 제정됐다. 화운법의 근간이 되는 내용은 기존 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화운법이 제정됨에 따라 여객과 화물은 그 특성에 맞게 구분되어 법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당시 화물운송시장의 진입규제는 ‘면허제’였다. 면허제는 시장진입제도 중에서 규제의 강도가 가장 세다. 동시에 다른 시장진입제도보다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반영하기 좋은 제도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입제의 폐단을 없애고 운송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화물운송시장을 기업화, 직영화하는 정책을 폈다.

 

그 시절 화물운송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종류와 노선, 구역에 따라 교통부 장관의 면허를 얻어야 했다. 운전면허 시험처럼 특정 시험이나 자격 검증을 통해 ‘이 사람은 면허를 줄 만한 요건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운송사업권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직영화, 규모화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 했다. 운송사업 업종별로 회사 소유 차량을 최소 10대에서 많게는 30대까지 보유하게 하거나, 업종별로 5천만 원에서 30억 원에 이르는 최소자본금을 확보하도록 한 당시의 기준은 화물운송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지입제의 문제 역시 해소하지 못 했다.

 

이후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규제완화 바람이 불어 닥쳤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정부는 운송사업의 규제를 완화해 화물운송사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일례로 정부는 1987년 당시 운송사업 업종 중 하나였던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을 등록제로 전환했다. 1993년에는 컨테이너화물차와 렉카도 등록제로 전환했다. 이 가운데 컨테이너는 주로 수출입물량만을 담당했기 때문에 비교적 운임이 정형화되어 있어 다른 차종에 비해 쉽게 등록제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우루과이 라운드: 1986년 9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합이 열린 이래 여러 차례 협상을 거쳐 1993년 12월에 타결, 1995년 발효됐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과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이후 세계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화운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운송사업 등록 기준 역시 완화됐다. 우선 화물운송사업 업종이 ‘일반’화물자동차운송사업, ‘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 ‘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으로 개편됐다. 운송사업자의 최소 차량보유 대수 기준도 업종에 따라 1대 혹은 5대로 줄었고, 최저자본금 기준 또한 업종에 따라 없어지거나 최대 1억 원으로 낮아졌다. 이태형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시장연구센터장은 “업종의 단순화도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풀이되지만, 그보다 화물차의 최소 보유 대수가 낮아진 것이 (당시) 규제완화의 핵심이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1999년 정부는 규제를 완화해 화물운송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전면 등록제를 시행했다. 이후 화물운송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가 사람들의 화물운송시장 진입을 더욱 부추겼다. 그 결과 1997년 약 20만 대였던 영업용 화물자동차는 2004년 약 35만 대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물동량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변화는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벌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차주가 가격을 덤핑하지 않으면 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003년 5월,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파업이 일어났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출입물량을 담당하던 화물차주였고, 이로 인해 한국은 물류대란을 맞게 됐다. 그때의 파업으로 인해 업계 추산 약 11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2004년부터 화물운송시장의 진입제도를 허가제로 전환했다.

 

현재까지도 국내 화물운송시장은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허가제의 핵심은 화물차 수급조절에 있다. 그리고 정부는 화물자동차의 공급과 화물운송 수요의 균형을 고려한다는 명목 아래, 현재까지 화물자동차 신규 공급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그런데 작년 8월 30일, 국토교통부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화물운송시장의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이하 830발전방안)을 발표하며, 12년 만에 업종개편을 단행했다. 톤급 구분에 따른 업종구분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 기존 용달/개별/일반화물자동차운송사업을 개인/일반화물자동차운송사업으로 재편한 것이다.

 

830발전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부가 택배 물동량 증가에 따른 소형화물차의 수요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해당 방안에서 정부는 개인(소형) 업종의 택배용 화물차(‘배’ 번호판)에 대해 수급조절제를 폐지하고 신규 허가를 허용했다. 즉, 택배용으로 사용되는 자가용 화물자동차를 영업용 화물자동차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830발전방안만으로는 일반 업종의 규제까지 완화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업체 규모화와 전문화를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화물차 최소 보유대수 기준은 1대에서 20대로 오히려 상향조정했다. 또한 일반 업종의 소형화물차의 수급조절제는 폐지했지만, 지입 경영 확산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양도 금지, 톤급 상향 금지 등의 비교적 강력한 허가 조건을 내걸었다.

 

한편 화물운송의 운임과 요금 규제는 화물자동차운송사업의 진입규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왔다. 면허제 시기 ‘인가제’였던 것이 1987년 일부 운송사업자(실질적으로는 구역화물자동차운송사업자에 한정)에 한정하여 운송사업자가 자체적으로 계산한 방식에 의거해 운임을 산정하고 정부에 신고하는 ‘신고제’로 전환됐다. 1993년에는 모든 운송사업자에게로 신고제가 확대됐다. 등록제 시기에는 특수자동차와 컨테이너운송차량을 이용하는 운송사업자에만 신고제를 유지하고, 나머지의 운임과 요금은 대부분 자유화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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