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비용과 품질의 트레이드오프 관계 깨고 새 비즈니스 창출한다
‘파편화’되는 화물운송시장, 최후의 승자는 누구
글. 신광섭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모든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부분의 산업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디지털화’가 있습니다. 디지털화란 모든 사물의 상태가 측정되어 데이터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지털화가 진행됨에 따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데이터의 양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전과 데이터 처리 능력 및 속도의 발전이 결합되며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과연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중일까요. 특히 본지의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화물운송시장은 어떨까요. 이번 호에서는 ‘빅데이터’가 화물운송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으며, 또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피트니보우스(Pitney Bowe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입니다. 피트니보우스의 주요 고객은 타겟(Target), 해롯(Harrods), 메이시(Macy's) 등의 유통회사입니다. 피트니보우스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을 활용해서 화물 운송비, 세금, 관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고객사에 가장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피트니보우스는 고객 측면에서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이나 기계학습 방법을 사용합니다.
피트니보우스의 최고혁신책임자인 로저 필크(Roger Pilc) 부사장은 피트니보우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축적된 데이터’를 꼽습니다. 그는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방법을 활용하여 정확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화물운송서비스의 핵심가치와 보조가치
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빅데이터와 가치의 상관관계입니다. 화물운송서비스는 그 형태, 범위, 그리고 방법에 있어서 천차만별이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거의 같습니다. 화물운송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화주(Shipper), 운송업자(Carrier), 수하인(Consignee)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즉, 화물운송서비스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화물을 가진 화주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화물을 원하는 장소로 옮겨달라는 화주의 요구가 있어야 합니다. 운송업자는 이러한 화주의 요구를 해결해줍니다. 그 과정에서 화물이 가지는 ‘시간적 가치’와 ‘공간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 화물운송서비스의 ‘핵심가치’일 것입니다. 그 외에 화물 추적서비스를 통해 화물운송 과정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은 화물운송서비스의 핵심가치에 ‘보조적 가치’를 더하는 것입니다. 한편 온라인이나 모바일 채널을 통해 고객이 서비스를 쉽게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화물운송서비스의 핵심가치와 보조적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 서비스의 가치 전달 방식
그렇다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기계학습이 어떻게 화물운송서비스의 핵심가치와 보조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요.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물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고객이 느끼는 서비스의 만족도와 품질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화물운송서비스의 고객 만족도 및 품질 수준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비용(Cost), 시간(Lead-time), 접근성(Accessibility), 안전성(Safety, Security), 신뢰성(Reliability) 등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기계학습이 이 다섯 가지 요인에 가치를 더하는지 살펴봅시다.
기술이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깨다
일반적으로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비용을 더 투입해야 합니다. 접근성을 높이는 데도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안정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고객 만족도와 품질 수준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 요인 가운데 비용은 나머지 네 요인과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용을 줄이면서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다행히 답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가령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 덕분에 우리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게 됐습니다.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수준도 상당히 향상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피트니보우스는 기술을 통해 다양한 예측의 정확도를 평균 25% 향상시켰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술을 통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비용을 줄이면서도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택배배송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기술은 실시간으로 교통량을 측정해 앞으로의 교통상황을 예측하고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택배를 배송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접근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객 접근성을 높이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 혹은 고객 접점(채널)을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더욱 많이 설치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는 상당한 비용이 투입됩니다. 그러나 만약 고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제한된 자원으로도 충분히 고객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알기 위해 고객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객의 잠재적 욕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고객의 무의식에 잠재돼 있는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인터넷쇼핑몰에서도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의견을 묻습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고객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합니다. 이 모든 게 데이터입니다. 결국 이러한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전보다 더 정교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제한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고객 접근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신뢰성을 살펴봅시다. 신뢰성을 조금 쉽게 표현하면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약속된 시간에 상품을 집하하고, 약속된 시간에 배송을 하는 것이 신뢰성을 높이는 일입니다. 약속된 시간과의 오차 범위가 작을수록 더 좋은 서비스라 평가받습니다. 즉,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가령 택배배송 기사의 배송 시간이 들쭉날쭉 하다면 어떨까요? 고객은 ‘고객님의 상품이 금일 오후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더 이상 믿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많은 배송업체가 배송시간을 잘 준수합니다. 신뢰성이 고객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기 때문이며, 상당수 배송업체가 배송시간 준수 여부를 배송기사의 성과와 연계하여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배송업체가 배송시간을 잘 준수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빅데이터와 분석기법의 발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양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더 빠른 시간 안에 분석할 수 있게 되면, ‘고객님의 상품은 금일 오후 6시 15분경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를 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서비스 제공자도 배송시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고객 역시 메시지의 정보를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화물운송업체가 빅데이터 기반의 분석결과를 활용해서 고객(화주)이 원하는 핵심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실시간 화물 추적서비스를 통해 운송과정의 가시성을 확보하여 고객에게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고객 참여를 높여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화물운송업자가 기술을 활용해 본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거나 선별된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기술이 새 가치와 비즈니스모델을 만든다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기계학습이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음 그림은 CB인사이트(CB Insights)에서 2016년 발표한 ‘물류의 붕괴: 페덱스와 UPS를 분해하는 스타트업들(Disrupting Logistics: The Startups That Are Unbundling FedEx & UPS)’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함께 실린 이미지입니다. 해당 이미지에는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인 페덱스와 UPS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열돼 있고, 그 각각의 서비스를 대체하고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매칭돼 있습니다.
▲ 물류의 붕괴: 페덱스와 UPS를 분해하는 스타트업들(자료: https://www.cbinsights.com/blog/startups-unbundling-fedex/)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정말 많은 기업이 등장해 기존의 물류기업이 제공하던 서비스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대형물류기업이 여전히 그 나름대로의 비즈니스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스타트업은 자신만의 서비스와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그들이 함께 죽지 않고, 각자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요. 빅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분석기법을 활용해 특정 고객 집단이 요구하는 바를 확인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아닐까요.
요컨대 빅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분석기법은 화물시장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제목에서 붕괴(Disrupting)라는 단어와 함께 분해(Unbundling)라는 표현이 쓰인 이유도 이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화물운송시장은 더 세분화될 것입니다. 다양한 업체와 서비스가 등장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물론 어떤 서비스가 나타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화물운송시장에서는 운송서비스 업체의 효율성 향상, 서비스 수준 강화와 함께 고객 입장에서의 효율성 향상, 비용 절감 등이 더 강조될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마존이 공개한 ‘예측배송 후 고객이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서비스’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서비스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으로부터 데이터를 더 빠르게 확보하여 더 정확히 분석해낼 수 있는 기업에게만 미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빅데이터’가 될 거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