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농간은 한 끝 차이... 위기의 김 차장

by 천동암

2018년 05월 31일

오 부장 미국에 가다⑧

농간은 한 끝 차이... 위기의 김 차장

오 부장 미국에가다 물류소설 물류에세이

 

오 부장은 주말에 혼자 차를 몰고 조슈아트리(Joshua Tree) 국립공원으로 갔다. 이번 북미 판매법인 문제가 예상외로 복잡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넓고 큰 무덤을 생전처음 보았다. 호기심에 공동묘지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서 있는 사람보다 누워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이곳에서 서 있는 것이 죄스럽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폭우가 내렸는데도 가뭄이 있었던 탓인지 땅은 축축하게 젖어 있지 않았다. 오 부장은 큰 나무 아래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였다.

 

산기슭에 파란 하늘이 누워있는 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간밤에 요란스런 울음소리, 할 말을 하다가 맞은 것 같았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산자락을 따라 파란 멍 자국이 구석구석 묻어 있었다. 이윽고 시퍼런 멍 자국 표시가 끝난 곳에 어떤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누워있었다. 단풍나무 사이에 울긋불긋 선홍색을 뽐내고 있었다. 피를 뿌리며 가을이 각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그는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 새파란 하늘에 햇살이 얼굴을 빠금히 내밀었다. 시간이 한참 흘렀는지 햇살은 방향을 틀어 차 문을 연 채 망중한의 토막잠에 취한 오 부장을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 부장님, 주말에 쉬시는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급하게 아셔야 할 내용이 있어서요. LCC 리처드 김 사장이 본사 회장님 비서실의 송사장님에게 오 부장님과 팀원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LCC의 리처드 김 사장은 우리 회사 미주 법인과 25년 동안 거래해서인지 본사의 주요경영진들과 인맥형성이 잘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특히 회장 비서실 임원진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번 북미 물류업체에서 탈락될 것을 우려해서 미리 회장님 비서실의 송 사장에게 선 조치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본사 회장실의 인력담당 인원들이 오늘 갑자기 북미법인에 출장 왔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저희 TF인력을 대상으로 조사 같은 면담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LCC물류업체를 왜 바꾸려고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LCC업체와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로, 이해가 안 되지만 상식 밖의 면담을 했습니다.

 

저희들 면담내용은 모두 비서실 송 사장님에게 보고가 된 것 같습니다. 하여간 좋지 않은 거시기 한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비서실 인사팀에서 면담내용은 절대로 부장님에게 사전에 얘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어젯밤에 고민을 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부장님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모시지 못해서요. 저희들은 적극적으로 오 부장님의 변호를 했습니다만 인사팀에서 오 부장님에 대한 아주 안 좋은 사안을 얘기한 것 같습니다. 지금 TF 사무실 민심이 흉흉합니다.”

 

김 필립 차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회장님 비서실의 송 사장님이! 왜?”

 

오 부장은 차 안에서 마시고 있던 콜라 캔을 차장 밖으로 내던졌다. 가슴에 커다란 심장파고가 일면서 손이 부르르 떨렸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LCC업체를 너무 몰아세운 것 같습니다. 이번에 북미물류업체 입찰을 할 예정인데 똑바로 안하면 떨어질 것 같다는 충고를 한 것이 화근인 것 같습니다. LCC업체에게 똑바로 하라고 한 것 때문에...... 아마도 죽기 살기로 들이덤빌 것 같습니다.”

 

“김 차장, 그게 무슨 말이야! 왜 LCC에게 그런 말을 했어! 무르익기 전에는 적에게 총을 쏘지 말아야지! 음~ 너무 걱정 하지 마라! TF팀장인 내가 해결해야지! 우리는 같은 부서에 있는 동지이고 전우들이야! 수많은 프로젝트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이 하면서 전투를 경험한 동지들이잖아”

 

오 부장은 김 차장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는 했지만 LCC같이 오랜 기간 동안 파트너로 일한 물류업체를 바꾸는 일에는 쾌도난마(快刀亂麻) 같은 결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프로젝트가 꼬이기 전에 싹을 자르는 방법이 필요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땅거미가 숲이 우거진 수풀부터 차례로 햇빛을 살라먹었다. 얼바인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 고독보다 더 고독한 무거운 침묵이 오 부장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차고 아름다웠다. 한국 땅에도 똑같은 별들이 떠있겠지.

 

‘이런 젠장! 질풍노도처럼 달려왔는데 회장 비서실에서 발목을 잡네. 마누라도 보고 싶고 새끼들도 보고 싶네. 무엇이 문제인가? 회장 비서실이 관여 한다는 것은 회사 그룹 차원에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불현듯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 부장은 ‘벌집을 잘못 건드린 것이 아닌지?’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북미법인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성전무의 컨퍼런스콜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오 부장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나운 성전무의 고함소리가 오 부장을 삼킬 듯이 덤벼들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그의 고함 발길이 오 부장을 내치고 있었다.

 

“오 부장, 너 시발 왜 LCC업체를 겁박했어? 요즘 갑질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착한 물류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상생협력! 너 보따리 싸고 싶어? 그리고 미국 TF인력들 전부 업무 관련하여 조사할 예정이야! 무슨 낌새를 챘는지 회장실의 송 사장 지시야!

 

우리끼리 얘기지만 송 사장 앞에서 우리 회사 사장님도 꼼짝 못해, 알지? 그런 분위기! 우선 오 부장을 포함한 TF팀 인력들 전부 업무 진단할 예정이고 혹시 출장 중에 부적절한 일들이 있는지 개인 비리 조사도 병행할 거야! 너도 너지만 팀원들도 잘 챙겨. 알았지!”

 

레이저 광선검을 휘두르듯이 질문을 던지고 성 전무는 전화너머로 오 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 전무 눈알이 튀어나와 오 부장을 불태울 것 같은 기세였다. 오 부장은 바로 TF인력 회의를 소집했다.

 

“회장실의 송 사장에게 북미법인 물류업체인 LCC가 민원을 제기 했습니다. 내용은 일방적으로 LCC업체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하겠다는 혐의 때문에 시작이 되었는데 우리들 각자 개인 비리혐의가 있는지도 감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입조심하고 특히 거래업체들과 외부에서 만나는 것도 당분간 금지합니다.”

 

회장 비서실의 인사 담당인 손 상무가 오 부장 자리로 왔다.

 

“오 부장, 얘기 좀 합시다.”

 

평상시에 누군가가 ‘얘기 좀 하자’라는 불쑥 던지는 말 한마디의 무게감의 밀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오늘 손 상무가 던지는 ‘얘기 좀 하자’ 라는 말 한마디 무게는 쇳덩이처럼 오 부장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가슴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멀미하듯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오 부장, 김 필립 차장 일인데 아주 민감한 사안이야. 김 차장이 인사위원회를 열어서 공개적으로 조사를 요청할 수도 있어. 그런데 만약에 인사위원회에서 해고 결정을 받게 되면 당사자 진술을 해야 하고 일이 복잡해져.

 

그리고 김 차장이 회사를 조용히 나가게 되면 다른 직장을 찾아서 이직하는데 문제가 없어. 그러나 여기서 인사위원회 열리고 소문나면 사안이 얽혀서 나중에 김 차장 이직하는데 문제가 많아.

 

우선 김 차장은 크게 두 가지 사안이야. 첫째 다른 물류업체들의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혐의가 있고, 둘째는 현재 물류업체를 특정한 이유 없이 계약해지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LCC라는 회사가 우리 회사를 이미 검찰에 고발했어.

 

특히, 두 번째 사안은 해고사유에 해당 할 수 있어. 아주 머리가 아파. 인사부서 입장에서 이를 소홀히 할 수도 없고, 언론에라도 이 내용이 흘러가봐! 아주 끔직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잖아!

 

김 차장이 성실근면하게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 알고 있어. 사장님도 알고 임원들도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많이 안타까워. 3개월 동안 회사에 적을 두고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 부장이 부서장이니 김 차장과 관련된 사항을 면담해줘.”

 

손 상무와 협의를 한 오 부장은 마음이 착잡했다.

 

“오 부장님, 맞습니다. 업체들과 골프를 쳤습니다. 그러나 부적절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골프비용이 아주 저렴합니다. 업체에서 골프 그린피 비용을 대고 제가 개인 비용으로 저녁을 샀습니다. 그리고 골프는 주말에 했습니다. 제가 LCC라는 회사를 겁박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 부장님, 저는 그런 양아치 같은 일은 절대 안합니다.”

 

“어떻게 할래?”

 

“저는 이 회사에서 19년 동안 휴가도 못가고 코에 단내 나도록 일을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사실관계 조사를 해주세요. 억울합니다. 오 부장님 생각은요? 현명한 판단을 해주세요.”

 

“......,”

 

어색한 침묵이 한참 동안 흘렀다.

 

“다른 일자리 알아 봐라!”

 

“......,”

 

김 차장은 즉답을 할 수가 없었다. 깊은 우물 안이라도 그 곳이 피난처가 될 때에는 따스함이 묻어나 추운 겨울에도 화롯가 같은 곳이 된다. 음지의 우물 안이라도 개구리가 하늘은 쳐다보면서 나가지 않으려고 ‘쾍쾍’ 소리친 것처럼, 김 차장은 잠시라도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숙인 채 사무실에 미적거리고 있었다. 아니 허우적거리며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물 안에서 추방강제집행을 당하고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추운 골목길에 내동댕이치고 침묵과 고독 속에 구인해버렸다. 마누라에게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금년부터 회사에서 지원하는 대학생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애들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

 

김 차장은 우물 안을 보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우물문은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그는 우물 밖에 있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를 위해 누군가가 무엇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으나 흩어지기 시작한 그의 동료들은 그에게 점차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동안의 성과를 깡그리 몰아내고 걷잡을 수 없이 질풍노도처럼 그를 빗질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선명한 그림자가 아니다. 흐리고 뿌연 아침 안개 같은 두려움이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차장에겐 이런 해고위기 상황을 완전히 일소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 LCC 창고 전수 재고 조사해서 이 회사의 무능함을 파헤치고 궁극적으로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자’

 

김 차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물류센터 재고 실사 결과 3곳의 데이터가 서로 맞지 않았다. 재고 실사 실물 재고량, 당사 전산재고, 물류업체 전산 재고까지... 맞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김 차장은 이번 LCC 물류업체의 무능함을 철저히 밝혀 해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만들고 싶었다.

오 부장 미국에 가다 물류소설 물류에세이▲ 김 차장이 살펴본 LCC창고 재고실사 결과



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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