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반짝거린다

by 천동암

2017년 08월 20일

별, 밤

글. 천동암 교수

 

중국편.

 

중국 공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시나브로 중국 프로젝트는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난통공장에서 사계절을 보낸 오 부장. 그 1년의 시간이 매번 눈부신 것은 아니었다.

 

TF의 지적으로 중국 공장에 본사 감사팀이 투입됐고, 조사 중에 발생한 맥스 구 부장의 자살 소식은 오 부장과 TF 팀원들의 가슴 한편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 사건은 오 부장에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했다.

 

지난밤에는 폭우가 몰아쳤다. 폭우가 지난 뒤 이른 아침의 푸른 하늘은 수평선 같았다. 가없이 펼쳐진 푸른 가을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오 부장. 푸른 하늘이 파란 멍처럼 오 부장의 가슴과 얼굴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요란스런 어젯밤의 비 울음소리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늘이 할 말을 하다가 맞은 듯했다. 하늘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파란 하늘 사이에 머무는 하얀 구름은 바람과 치정관계이다. 간밤에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할퀴고 싸우다 가을 하늘에 파란 멍울자국을 만들어냈다. 첩싸움에 산신령처럼 참다가 마침내 단풍나무 회초리를 들었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붉은 선혈이 뿌려지고 울긋불긋 하얀 뺨에 빨간 사과가 아롱다롱 매달려 있다.’

 

오 부장은 생각나는 대로 적어댔다. 무의식은 오 부장이 내면에 쓴 가면을 무참히 부서뜨리고 그 민낯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불현듯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성난 파도에 굴하지 않고 파란 멍이 들더라도 매사에 감사하여 하얀 뭉게구름 같은 미소를 짓는 내공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오 부장은 후 보충 시행 결과를 두고 팀원들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 공장에서 일본 판매 법인으로 후 보충하는 것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 법인인데, 실제 후 보충 시행 후 일본 법인이 당초 예상했던 효과를 봤나?” 오 부장은 우울했던 생각을 떨쳐버리고,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나 과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눈에 확 띄는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일본 재고가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후 보충 시행 전에 산정했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토대로 확인해본 결과 대개 중국 공장은 일본 판매 법인이 요청한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다만 일본 법인이 고객의 주문 관리를 더 세밀하게 밀착관리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나 과장은 분석한 데이터 내용을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재고감축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15년 1월부터 16년 3월까지의 일본 법인 판매량과 재고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봤습니다. 재고에는 ‘총 재고’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총 재고는 공급사슬상 재고의 위치를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 총 재고는 일본 창고에 있는 재고, 일본 수입항 CY(Container Yard)와 중국항만 CY에 있는 재고, 중국 창고에 보관중인 일본향(向) 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상 운송 중인 재고를 모두 포함합니다. 재고를 이렇게 세부적으로 구분한 이유는 재고를 줄일 때 일본에서의 판매량을 감안하여 총 재고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쪽 재고를 줄였는데 다른 쪽 재고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면 이는 재고가 준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나 과장, 아주 탁월한 분석이네. 부분 최적화가 아니라 전체 최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군요. 즉 KPI를 위한 KPI는 물류혁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네요. 그런데 김정미 과장, 재고가 줄어드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인데, 비용 절감 측면은 어떤가요?” 오 부장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김 정미 과장을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김 과장도 그에 옅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오 부장님,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창고 단가 차이로 인해 보관료 절감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일본향 물량은 중국 창고에 우선 보관해두었다가 고객 납기에 맞춰 선적했습니다. 중국 창고에서 일본향 재고일수가 7일 증가했으나 중국 창고의 보관료는 일본 창고 대비 8배 저렴해서 월 평균 십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5년 10월부터 16년 3월까지 5개월간 창고비용으로 50만 달러를 절감했습니다.

 

“김 과장, 후 보충은 당초 세운 목적을 나름대로 달성했다고 보이는데, 김 과장 생각은 어떤가?” 오전에 파란 하늘이 비춘 오 부장 가슴 한편의 멍울이 후 보충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결과로 조금 아무는 듯했다.

 

“예, 그런 셈이지요. 후 보충 프로젝트의 당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일하는 방법과 체질을 바꾼 것이 보이지 않는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생각보다 절대적인 비용 절감은 크지 않았습니다.” 비용 절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김 과장의 목소리는 전보다 작아졌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김 과장이 얘기했듯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여기 중국 공장 운영업무의 체질을 변화시킨 것은 큰 성과야! 후 보충 프로젝트는 중국 공장 직원들과 일본 법인 직원들, 그리고 TF에 있는 한국 인력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과를 낸 거야!”창고 보관료 절감


 

대화를 이어가는 데 갑자기 김 필립 차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눈치였다. “오 부장님, 후 보충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TF에서 엑셀로 템플릿(Template)을 만들고 중국과 일본 직원들이 매일 업무를 체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5개월 동안 엑셀을 통해 수작업으로 이를 진행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데이터를 잘못 입력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데이터를 입력할 때 시간도 많이 걸렸고 직원들의 불만도 상당했습니다. 현재 수작업으로 돌아가는 운영을 서둘러 시스템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차장이 열정적으로 말하는 동안 그가 쓰고 있는 안경이 들썩거렸다.

후 보충 후 요청사항

 

김 차장은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후 보충 운영이 시스템화 되면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기에 성과지표 활동을 해서 공급사슬 중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즉각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했어요, 김 차장. 당초 나도 수작업으로 업무를 진행하다가 시스템화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국제 후 보충 프로젝트는 처음 시도한 것이고, 더구나 중국 직원과 일본 직원 사이에 언어 소통이 원활치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TF가 프로젝트를 주도해야겠다 싶어 표준 템플릿을 만들고 이를 안정화한 뒤 시스템에 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밀어붙이지는 마세요, 하하!” 오 부장은 김 차장을 진정시키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후보충시스템

 

중국 공장 프로젝트는 거의 1년 동안이나 진행한 ‘메가 프로젝트(Mega Project)’였다. 오 부장은 TF 직원 및 중국 공장 임원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만조 공장장이 오 부장과 TF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1년 동안 고생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깊은 허전함도 같이 몰려왔다. 술기운이 그 공허함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마누라와 새끼들도 가슴 시리게 보고 싶었다. 오 부장은 저녁식사 뒤 장기간 머물렀던 호텔 숙소 창가에서 깜깜한 중국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다.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은 야외 수영장 옆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을 흔들어댔다. 짙은 어둠 속에서 바람이 징징 울고 있었다. 오 부장은 혼잣말을 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는 법. 마찬가지로 물류현장에 어두운 구석이 많을수록 물류혁신 성과라는 ‘별’은 더욱 반짝거리는 게 아닐까? 어둡고 풀기 힘든 문제를 푸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밥그릇, 나의 고객이 아닐까?’

 

칠흑 같은 어둠, 하늘에 박혀 있는 별이 더욱 반짝거렸다. 별들은 오 부장을 내려다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중국편 끝.

다음 호부터는 <미국편>이 연재됩니다.



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