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동암 교수
중국편.
숙소에 들어와서 TV를 보는데 휴대폰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 중국 출장은 언제 끝나? 거의 2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한국에는 언제쯤 오는 거야? 자기가 안 오니까 나도 힘들어. 보고 싶으니까 출장이 길어지면 한국에 한 번쯤 왔다가지 그래?” 요즘 갱년기가 왔나봐. 괜스레 몸에서 열이 나고 잠을 설쳐서 늘 피곤해.”
아내 설해의 전화였다. 평소의 쾌활한 소프라노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래? 여기 일을 간단히 처리하고 귀국하려고 했는데 점점 일이 복잡해지고 있어. 블랙홀에 자꾸 빠지는 느낌이야! 본사 감사팀까지 합류해서 출장이 더 길어질 것 같아.”
오 부장은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면서 대답했다.
“이번 주말에도 얼굴 못 보겠네. 자기 혼자서 회사 일 다 하는 것 같아. 알았어, 끊어.”
설해는 깨진 유리파편으로 모래알을 문지르는 파열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 부장은 그녀에게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를 기대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자기위주, 일방통행식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오 부장은 마누라의 일방적인 울부짖음에 사사건건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응을 안 한다기보다는 피하고 있었다. 결혼한 지 25년이 넘어가고 오 부장의 해외 출장이 잦아지면서 마누라와의 관계가 불규칙동사처럼 절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 통화를 끝내고 곱씹어보니 오 부장 자신도 회사일 이외의 가정사에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에는 벽난로처럼 서로에게 은근한 온기를 전해주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해도, 오 부장도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해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튼 날, 오 부장은 사무실에 앉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봄비는 한국에 있는 집에도 내리고 있겠지.’
어젯밤에 마누라 심기를 건드린 탓일까, 오 부장의 가슴에 생채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오 부장님,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김정미 과장이 오 부장 얼굴을 유심히 살피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젯밤에 집사람이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신경질을 내더라고. 갱년기 때문에 잠을 잘 못 잔다고. 그래서 위로를 받으려고 전화했는데 내가 잘 못해준 것 같아!”
“아! 그렇군요. 제 엄마도 몇 년 전에 갱년기 때문에 고생을 했어요. 우울증 때문에 매사 신경이 예민해져서 아빠도 힘들어 했죠. 귀국할 때 갱년기 약 하나 사가지고 가세요. 사모님께 따지지 마시고 최대한 비위를 맞춰 주시구요. 호호.”
오 부장은 김 과장에게 가정사를 얘기한 것을 약간 후회했다. 동료나 부하직원들 간에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로 지내야 하는데, 솔직하게 마누라 얘기까지 한 것이 창피했던 것이다.
“아! 오 부장님, 난통공장의 전체 물류 흐름도, 자재 조달 물류 및 완제품 수출/중국 내수, 입고부터 출고까지의 전체 물류 정보, 재무의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각 프로세스의 담당자, 주기, 방법, 시스템 등 프로세스의 상세 내용도 같이 정리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프로세스는 별도로 표시했습니다. 공장물류흐름은 ①자재입고, ②자재보관, ③자재투입, ④Line Feeding, ⑤완제품 포장, ⑥완제품 보관, ⑦완제품 출하의 단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원부자재 출고이며, 특히 공장라인 임시적치 공간(치장)에 이를 입고 할 때의 처리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 김정미 과장이 보고한 ‘공장물류 운영현황’
“김정미 과장, 원부자재 창고와 생산라인 앞의 임시 보관 공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군요. 원부자재를 출고할 때 전산처리(Goods Issue)를 하고 라인 보관 공간에서 입고처리(Goods Receipt)를 하면 되는데, 현재는 라인 보관 공간에서 입고와 출고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으니, 그 시간차 때문에 항상 원부자재 재고 불일치가 생길 것 같은데…. 맞나요?”
오 부장은 말하면서도 말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부장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으로 재고를 맞추다 보니 원부자재 재고 불일치 때문에 월말에 재고 조정을 매번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고 이동(Stock Transfer Order)을 할 때 출고 전산처리를 하고 라인 보관 공간에 입고할 때 입고처리를 하는 프로세스를 수립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전산 처리를 위한 시스템 개발에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김정미 과장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커지고 얼굴이 발그스레해졌다.
▲ 공장물류의 문제 상황
▲ 재고 이동을 통한 ‘원자재 라인 공급물류 운영절차’ 수립
“그렇다면 지금까지 재고 조정을 몇 번이나 했는지 파악되었나요? 그리고 3PL업체와 재고 조정 문제 등이 충분히 협의되었나요? 아! 그 이전에 각각의 프로세스에서 3PL업체와 당사 간 재고책임 등의 R&R(Role & Responsibility)은 정확히 정의되었나요?”
오 부장의 근심이 점점 깊어졌다.
“문제는 난통공장에서 ‘유리’ 자재가 전체 원부자재 중 35%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 ‘유리’ 자재의 재고 조정이 수차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맥스 구 부장이 지속적으로 유리 자재 부족분을 PO(Purchase Order) 했습니다. 지난번 바바라 짱 차장이 얘기한 ‘강서유리’를 통해서요.”
오 부장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별안간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곧 바바라 짱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오 부장에게 달려왔다. 오 부장은 뛰어 들어오는 바바라 짱 차장을 보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지?”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