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회색빛 벽돌 아래에 조그만 화단이 있었다. 모란꽃은 꽃봉오리를 열어 봄 햇살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울타리 밑에 갇혀 말없이 떠받치고 있는 벽돌처럼 침묵 속에서 피어난 모란꽃의 젖무덤 꽃향기가 간지럽게 오 부장의 오뚝한 콧날에 미끄러져 땅속으로 다시 스며들고 있었다.
오 부장은 회색빛 근심을 머금은 채 피어있는 모란꽃을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꽃은 추운 겨울 고난을 이기고 와신상담 시간을 필연적으로 보내야 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피어나는 꽃은 시든다는 것을 예약한 채 향기를 내 뿜는다. 시든 것은 다시 피어나는 소생의 운명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꽃은 피어나서 지면 다시 어두운 땅속에서 스며들다가 하디스의 신부가 되고 다시 햇빛을 잉태하여 빛은 발할 때 제우스가 꽂을 땅 밖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진정 하디스의 어둠은 어둠인 것인가? 물감을 계속해서 섞다보면 결국 검정색인 것처럼 하디스의 어둠에 굴복하게 되는 것인가? 하디스는 진정 나쁜 것인가. 제우스만 좋은 것인가? 천국과 지옥, 흑과 백, 하디스와 제우스, 남과여, 어둠과 밝음, 주인공과 대적자, 양측의 갈등과 대립이 있어야만 반대쪽이 더욱 명확해지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두움에 별이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지금 중국공장에서 추진하고 있는 물류 프로세스 상에 있는 병목현상(Bottle Neck)이 흑이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백이다. 오 부장은 흑과 백이 어우러져 정반합(正反合)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오 부장은 SAP상에 있는 원부자재 제품 코드와 수량을 확인하고 현장 재고를 확인했으나 실사와 시스템 재고가 맞지 않은 것은 이유를 시급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MRP(Material Resource Planning)에 정의하고 있는 기준 정보(Master Data)가 시의 적절하게 관리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점검 할 사항은 첫째, MRP에 기준 정보는 정의하고 있으나 최초 Master Data에 입력된 리드타임과 실제 리드타임 간의 차이가 어떤지에 대한 점검을 하는 것이다. 둘째, Master Data 1회 입력 후 변경 사항 발생 시 갱신(Update)한 프로세스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갱신한 프로세스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언제 갱신됐는지, 그리고 무엇을 갱신했는지를 파악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2주간 생산계획을 가지고 MRP를 돌려도 공급업체의 자재발주 리드타임이 맞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완제품 생산 계획에 따른 자재 소요량이 틀려서 다시 엑셀 수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실제 평균 리드타임과 최소(Min), 최대(Max) 리드타임의 표준편자가 어떤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확인 결과 최초 설계된 공급업체 Master Data의 리드타임이 120일로 설정되어 있었다. 실제로 주문과 제품 입고 시기, 그리고 리드타임은 각 제품 별로 보면 4일~16일 정도이다. 엉망으로 관리하고 있던 것이다. 바바라 짱을 통해 생산관리 팀장인 김태윤 부장과 미팅 요청을 했다. 김 부장은 중국 공장에서 현지 채용한 인물이고 오 부장과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진= 장표)
“김 부장님, 수고가 많습니다. 여기 이 장표는 제가 MRP정보를 엑셀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혹시 MRP 기준정보는 언제 수정한 것입니까? 그리고 마스터 데이터를 갱신하는 프로세스는 정립 되어있습니까?”
오 부장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김 부장을 빤히 쳐다보면서 질문을 했다.
“오 부장님, MRP가 있는 것은 아는데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죄송하지만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글로벌 S&OP;회의를 통해서 나온 중국생산계획을 제 밑에 있는 중국직원에게 주면 이들이 자원점검을 합니다. 대부분 이 직원들이 엑셀로 계획을 만들어서 SAP상의 원부자재 재고를 확인합니다. 생산계획에 맞춘 BOM(Bill of Material/원부자재)이 있으면 생산계획을 확정하지만 BOM이 없으면 구매팀에게 구매의뢰를 합니다.”
“김 부장님, MRP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MRP에 있는 BOM의 기준정보이고 둘째는 MRP에서 생산계획을 기준으로 현재 BOM의 재고점검을 하는 것입니다. BOM재고가 없으면 MRP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PO을 생성하고 공급업체에게 자재 공급요청을 합니다. 자재 요청 시 MRP 시스템 내부에 있는 리드타임을 계산하여 언제 BOM이 공장에 도착하는지를 자동적으로 알려주게 됩니다. 이 경우 MRP는 BOM 제품 도착일을 감안하여 생산계획을 다시 계산하여 수립하고 생산계획 플래너는 MRP 결과값을 가지고 관련 부서와 재협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게 되면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고 적시에 생산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됩니다.”
문득 김 태윤 부장이 성 전무에게 변명했던 말들이 생각이 났다.
「말씀하신대로 생산계획을 수립할 때 자원점검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SAP상에 있는 원부자재 재고와 실물 차이가 워낙 커서 필요한 원부자재 재고가 없어 생산라인에 자원투입을 하지 못해서....., 그만 라인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오 부장은 한국을 떠나기 전 성 전무가 얘기 했던 말을 점차 이해 할 수 있었다. 오 부장은 생산팀장인 김 부장이 공장운영을 회사 관점에서 넓게 보고 진행해야 하나, 생산부문에만 집중하여 생산부문의 효율성만 강조하고 다른 지원업무에 대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판단하였다.
오 부장은 원부자재 창고와 관련하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관련 책임자를 만나고 싶었다. 바바라 짱은 창고운영 부장인 도널드 진을 소개했다. 도널드 진은 머리는 아주 짧고 두툼한 입술은 정글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표독한 모양이었다, 아랫배는 산 봉오리처럼 불쑥 올라와 있었고 앉은키와 서있는 키가 구분이 안 되는 작은 키였다. 그는 중국 공장에서 원자재 창고와 완제품 창고를 담당하는 관리자였다. 얼굴 모양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듯 단순 무식해 보였지만 윗사람에게는 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업무를 추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 부장이 원부자재 창고를 자세히 살피는 가운데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창고에서 무엇인가를 하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도널드, 저기 있는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저 직원들은 In-coming QA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도널드 진의 대답을 듣고 오 부장은 불현 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In-coming QA를 하게 되는 원부자재 재고는 불가용 재고로 전환이 되고 총 재고는 있으나 가용 재고가 없기 때문에 다시 주문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오 부장은 즉시 도널드에게 관련 내용을 파악 하도록 했다. 그가 헐레벌떡 오 부장이 있는 TF사무실로 와서 얘기를 했다.
“오 부장님,In-coming QA를 하게 되는 원부자재 재고는 불가용 재고 aging을 조사해 보니 Holding 기간이 상당합니다. 장표를 봐주세요.”
오 부장은 QA Holding기간을 막상 확인 해 보니, 혹시 중국 생산관리 Planner가 원부자재 가용재고를 기반으로 생산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 총재고로 생산계획을 수립한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