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글로벌 선사들: 장기불황에 대비하라
글. 남영수 밸류링크유 대표
해운 시황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2가지가 존재한다. 호황과 불황의 반복이 10년 주기로 발생한다는 단기 순환과, 주기가 이보다 더욱 장기적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필자는 장기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오늘의 해운 시황을 성숙기라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현 시황을 단기 순환 과정의 일부라 “해석”할 경우, 회복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감으로 시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릇된 현실에 대한 시각은 글로벌 경쟁사들의 전략적 방향을 왜곡하여 이해함으로서, 결국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본 기고에서는 현 해운시황이 장기순환상의 성숙기라는 가정하에 글로벌 선사들의 전략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 선사들의 미래 생존전략을 제안한다.
해운시황에 대한 엇갈린 판단: 회복기를 기다리는 저점기인가, 저점기로 다가가는 성숙기인가?
지난 20여년간 해운 시황의 변화를 단기적 순환 관점에서 살펴보면, 해운 시황은 1980년대 회복기와 정점기를 거쳐 1990년대에는 붕괴기와 저점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외환위기 사태가 회복되고 중국의 고속 성장으로 다시 한번 정점기를 지난 직후 맞이한 2009년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다시 한 번 해운시장을 저점기로 몰아넣게 되었다. 이러한 단기 순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현재는 저점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회복기가 시작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에 이견을 제시한 전문가들이 있으니, 라스 옌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8년 국내에 소개된 ‘Liner Shipping 2025, How to survive and thrive’를 통하여 그는 해운 경기의 사이클이 단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해운 산업을 하나의 커다란 사이클로 보고 지난 1956년 태동된 이후 2010년까지 급속한 성장기를 거친 후, 2010년을 기점으로 현재는 성장율이 둔화되는 성숙기로 접어들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예센의 말처럼 1990년 이후 2008년까지 약 20여년에 걸쳐 해운 수요는 연평균 7~10%대의 급속한 팽창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장에는 예기치 않은 큰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증가되는 수요에 대비하여 생산성이 과도하게 증대된 것이다. 제조산업 변천과정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이러한 생산성의 증대에 더하여 해운 연관 산업인 조선, 항만물류, 선박 금융의 활성화가 적정 수요 이상의 과도한 선박 투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 제조산업 변천과정 vs. 해운산업 변천과정 비교 (출처: 국내외 경영, 해운 관련 자료를 기반으로 저자 편집)
문제는 이러한 공급의 과잉 확대가 본격화되는 바로 그 시점부터 수요측면에서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9년부터 실질적인 해상 물동량 증가율이 감소되기 시작하였으며, 2010년이후 2020년까지의 수요 증가율은 5% 수준으로 낮아졌다. 물론 그나마 성장율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일지는 모르겠지만, 10% 이상의 고성장을 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시작된 것이다.
주도권 확보를 위한 싸움: 시장 독점을 원했던 성장기의 전략
글로벌 선사들은 장기적인 불황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지속된다는 관점에서 그동안 어떠한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왔던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장기 순환과정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8년까지의 전략과, 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숙기의 대응 전략을 분리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2008년 이전의 성장기에 글로벌 해운기업들이 추진한 대응 전략의 방향은 외형확충, 얼라이언스의 본격화, 서비스 차별화, 프로세스 및 IT 혁신의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M&A나 신규 선박 발주와 같은 외형 확충은 규모의 경제(Scale Merit)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 지난 20년간 Top 10 선사 Capacity 현황 (출처: Containerization International, Alphaliner, Drewry Report 발췌 후 저자 편집)
동 시기에 글로벌 해운기업들의 외형 확충 경쟁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 그 추진 방법은 해운기업별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Maersk의 경우에는 Sea-land, P&O Nedlloyd 등을 인수하여 약 10배로 선복을 확대한 반면, MSC의 경우 신규 선박의 발주로 덩치를 키워 외형적으로는 16배 이상을 성장시켰다. CMA-CGM의 경우 1999년 양사 합병으로 1차적인 성장을 달성한 이후, 신조 선박 확충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수합병 전략을 택했는데, 신조 선박을 활용할 경우 선박의 건조에 많은 리드타임이 필요하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수합병의 경우 기업의 조직 통합과 합리화를 통해 수익을 개선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당시 자금 여력이 있는 많은 글로벌 선사들은 M&A를 통해 우월적 지위를 확보해 나갔으며, 이 과정 중에 해운산업에서 상징적이고 역사적 의미를 갖는 많은 기업들이 피인수를 통해 사라져갔다.
두번째 전략 방향은 얼라이언스를 통한 운송 네트워크의 유기적 확대인데, 이는 항공 얼라이언스보다 몇 년 앞서 도입된 전략이다.
▲ 지난 20년간 Global Alliance 변화 (출처: Alphaliner, Drewry Report, KMI 자료 발췌 후 저자 편집)
해운 얼라이언스는 선사가 독립적으로 노선을 운영하던 방식과 비교하면 서비스 다양성 및 기항지 확대가 용이하고 선적 물량의 확보가 손수워진다. 아울러 대형 선사와의 마케팅, 영업, 고객서비스 경쟁력을 추가적인 자본투자없이 향상시킬 수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3대 얼라이언스라 할 수 있는 Grand Alliance, New World Alliance, CKYH Alliance 등이 독자 운항을 유지하고 있었던 Maersk, Evergreen, CMA-CGM, CSAV 등과 대등한 경쟁을 하며 마켓 내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독자 노선을 운영하던 선사들마저 점차 얼라이언스로 편입되면서 글로벌 얼라이언스의 지형에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세번째 주요 흐름은 항만 터미널 투자를 통한 서비스 차별화이다. 자사 터미널을 통한 운송 서비스 개선과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등의 목적으로 많은 해운기업들은 주요 기항지에 자사 터미널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 예로 Maersk의 P&O Nedlloyd 터미널 인수, COSCO와 CHINA SHIPPING이 중국, 미국, 유럽 등의 주요터미널을 공격적으로 인수한 사례, 한진해운 및 현대상선이 주요 기항지의 터미널을 확보한 것 등이 있다. 또한 CMA CGM, YANG MING, MOL 등도 터미널 관련 사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당시 항만 터미널 사업의 경우 서비스 개선 차원에서는 효과적인 사업 모델로 인식이 되었지만,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차원에서는 대부분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지막 네번째의 전력적 방향성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프로세스 혁신과 IT 인프라 확충이다. 글로벌 선사들은 Maersk를 시발점으로 하여 대대적인 프로세스 혁신 (Process Innov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대고객 서비스 개선, 수익관리 경영 도입, 비용 경쟁력 제고 및 경영 관리 체계 도입 등과 같은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이를 운영하기 위한 IT 인프라를 확대하였다.
장기 순환과정상의 성장기인 2008년 이전까지, 글로벌 대형 선사들의 전략적 방향성과 대응 방식은 한마디로 절대적인 시장 내 주도권 확보를 통해 수익을 독점하기 위함이다. 기업 외형과 항만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독자적인 글로벌 해운서비스 제공 기반을 구축하는 등 경영 효율성을 제고를 통해 글로벌 경영 체계를 확립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기 주도권 확보를 위한 그들의 전략은 2010년 이후 성숙기로 도래한 현 시점에서 어떠한 변화를 거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들의 변화된 전략은 지금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무너져가는 우리 해운산업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이 내용은 다음 편인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의 전환: 성장에서 생존으로“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해운업계에서 만 25년 근무한 해운, 물류, IT 전문가다. 한진해운 마켓리서치 파트장과, TMO 프로젝트 팀장을 담당했고, 한진로지스틱스 코리아 사업개발 팀장을 거쳤다. 아하파트너즈 해운물류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는 해운물류 플랫폼업체 밸류링크유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