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생존경쟁의 새로운 장, ‘플랫폼과 디지털’ ① 해운∙물류 플랫폼과 채널 시프트

by 남영수

2019년 11월 07일

글. 남영수 밸류링크유 대표

 

▲ 머스크의 물류자회사 담코 Damco 가 운영하는 디지털 포워딩 플랫폼 트윌(Twill)

 

유통업계에선 오프라인을 넘어 O2O와 O4O로의 채널 시프트 전쟁이 한창이다.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오프라인 영업 위주였던 해운∙물류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랫폼 모델’의 도입이다. ‘생존’이라는 눈 앞의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해운∙물류업계 입장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자칫 먼 미래의 일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 서비스와 채널 시프트의 확산 추세는 이미 시작됐으며, 보편화의 단계를 거쳐 국내 시장에도 불어닥칠 것이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누군가에겐 위기가 될 디지털화(Digitalization)의 바람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모든 제품은 플랫폼이다

 

200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발표된 논문 ‘모든 제품은 플랫폼이다(Every Product’s a Platform)’에 따르면, 무엇이든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정의는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 중에서도 ‘솔루션 기반의 플랫폼’에 대한 설명이었다. 즉, 우리 생활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MS오피스, iOS 같은 시스템(소프트웨어)부터 갤럭시, 아이폰 같은 디바이스 혹은 인프라까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나 환경을 가리켰다.

 

이와 달리 최근 플랫폼 서비스가 다양한 산업계에서 주목받는 것은 ‘마켓 관점에서의 플랫폼’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거래를 일으키고, 정보공유를 가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매치메이커스(Matchmakers)*’ 방식의 서비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였다.

* 직역하면 ‘결혼 등을 중매하는 사람’으로, 산업계에선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매칭하고, 또 다양한 고객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현실의 플랫폼 혹은 가상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 가리킨다.

 

마켓 관점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중시되는 이유는 단연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기술을 통해 플랫폼 참여자가 교류하고, 해당 교류로 다수의 더 많은 주체가 연결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 페이스북나 카카오톡 사용자가 친구를 추천해 사용자를 늘리고, 해당 사용자가 더 많은 사용자를 플랫폼 안으로 끌어 들이며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매치메이커스 방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서비스를 단순한 이커머스 서비스 형태로 오해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매치메이커스 방식의 플랫폼에 대하여 마켓에서 요구하는 구성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 성공적인 매치매이커스 플랫폼의 비즈니스 구조와 비즈니스 사상

 

위와 같은 구조와 사상이 잘 갖추어졌을 때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는 극대화되며 진정한 형태의 시장형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 배경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생활 속에서 접하는 플랫폼들을 떠올려 보자. 어쩐지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플랫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왜일까.

 

그 이유를 폴 티머스가 제시한 11가지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유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전자상점형'이나 '전자구매형'에 속한다. 즉, 인터넷을 통해 재화나 용역을 거래하는 비교적 낮은 정도의 혁신과 단순한 기능 통합의 형태다. 

▲ 폴 티머스의 가치사슬에 의한 11가지 비즈니스 모델

 

반면에 요즘 플랫폼 비즈니스 신드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 유튜브,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기업들은 보면 그래프 상의 1사분면에 해당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기업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소비자 편의성에 대해 고민하며 고객경험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강력한 가치사슬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해운∙물류 플랫폼 비즈니스의 현 주소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해운∙물류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약 50여 개에 이른다. 머스크(MSK), CMA-CGM, 코스코(COSCO)등의 글로벌 대형선사부터 삼성SDS, 판토스, K&N 등의 물류업체, 아마존(Amazon)이나 알리바바 (Alibaba)등의 리테일 기업들과 같이 현존 사업자 주도 플랫폼 서비스를 구축한 사례와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제3자형 플랫폼 서비스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플랫폼 서비스들 모두 앞서 제시된 가치사슬 그래프 중 3사분면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평가다.

▲ 해운 및 물류 플랫폼 비즈니스 서비스 및 비즈니스 모델 구분

 

위 표는 앞서 언급된 업체들이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 구조를 형태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크게 해상운송과 복합운송으로 나뉘며, 물류 서비스 제공업체가 플랫폼을 소유했는지 공유했는지에 따라 거래 구조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 구조의 경우, 대부분의 해운∙물류 플랫폼은 판매자가 제공하는 운임(자체 마진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에 플랫폼 운영사의 마진을 수수료나 서비스 요금 형태로 더해지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사실 이는 전통적인 이커머스의 그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기본 부가 서비스에 속하는 온라인 고객응대 서비스와 카고 트랙킹(화물 추적) 서비스가 제공되고, EDI*의 경우엔 유료로 제공되며 국제물류 거래에서 접하는 고객들의 요구와는 상당한 갭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 Electronic Data Interchange, 전자문서교환. 표준화된 상거래서식 또는 공공서식을 서로 합의된 통신 표준에 따라 컴퓨터 간에 교환하는 정보전달방식

 

해운물류 플랫폼이 가진 물음표들

 

위와 같은 서비스 모델과 구조를 가진 해운∙물류 플랫폼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플랫폼의 ‘중립성’ 확보 문제다. 하나의 플랫폼이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중립성이다. 그런데 해운기업이나 물류기업 등과 같이 시장 참여자가 직접 플랫폼을 소유했을 때 네트워크 효과가 충분히 발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가령 한 해운업체가 직접 해상운송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경쟁관계에 있는 해운기업이나 물류기업은 해당 플랫폼에 들어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거래 참여자가 줄어들면 네트워크 효과 역시 축소되고, 종국에는 자사 고객만을 위한 서비스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전세계 1위 기업인 머스크가 자체 온라인 포워딩 서비스 트윌(Twill)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프레이트허브(FreightHub)에 거액을 투자하거나 기타 공용 플랫폼에 들어가 있는 것, 삼성SDS의 첼로스퀘어가 다양한 기능과 편의성을 갖췄음에도 현재까지 마켓 내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다.

 

두 번째, 플랫폼이 창출하는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성공적으로 성장한 플랫폼을 보면 참여자들 간의 연결을 만들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때 한층 더 빠르게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현재 해운∙물류 시장에 있는 플랫폼을 보면 연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 그 가치를 다시 플랫폼 참여자들과 공유하는 모습은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는 미래형 해운∙물류 플랫폼은 연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물류 서비스 제공자가 플랫폼을 소유하기보다 공유 형태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플랫폼 운영자는 역시 판매자와 구매자 어느 한 축에 기울어지지 않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상호 균형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플랫폼 참여자들이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의 거래와 같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상호 가치를 공유하며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행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거래와 마진 구조다. 플랫폼 비즈니스 거래의 장점은 온라인을 통해 거래 비용을 낮추고 해당 비용만큼 플랫폼 참여자들이 이득을 본 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해운∙물류 플랫폼을 보면 운영 주체가 단순히 서비스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판매에 개입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가령, 플랫폼 운영업체가 자사의 더 많은 매출과 마진을 위해 물류 서비스 판매자가 제공하는 요율을 인하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물류 서비스 판매자는 해당 압력을 거부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결국 판매자의 수익률은 낮아진다. 이와 동시에 절감된 비용이 고객이 아닌 플랫폼 운영자에게 넘어가게 되면서 결국 플랫폼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보다 단순 ‘온라인 포워딩’의 역할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운영 주체의 구성에서도 장애물은 존재한다. 플랫폼 운영자의 낮은 산업 이해도가 바로 그것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해서 IT전문가들로만 플랫폼을 운영하게 된다면 해운∙물류 산업 생태계 참여자들의 필요로 하는 가치나 부가 서비스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 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물류 생태계는 물류 서비스 판매자인 해운기업과 물류기업, 구매자인 제조기업과 유통기업이 다양한 주체가 섞여 있다. 이 주체들의 특성과 성격, 플랫폼 이용 목적이 다르기에 플랫폼의 등장만으론 앞서 언급된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기는 어렵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치사슬 통합형’에 속하는 해운∙물류 플랫폼이 아직 탄생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현재의 플랫폼이 마주한 한계를 들여다보고 산업 생태계와 거래 참여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해운∙물류 플랫폼이 탄생할 수 있을 될 것이라 기대한다. 



남영수

해운업계에서 만 25년 근무한 해운, 물류, IT 전문가다. 한진해운 마켓리서치 파트장과, TMO 프로젝트 팀장을 담당했고, 한진로지스틱스 코리아 사업개발 팀장을 거쳤다. 아하파트너즈 해운물류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는 해운물류 플랫폼업체 밸류링크유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