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성장세 속 공급과잉 발생한 국내 커피시장
벤딩머신, 로보틱스 등 무인 플랫폼으로 활로 개척한 업계
Idea in Brief
무심코 방문한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려던 찰나, 점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무인 편의점이었다. 점원이 없는 점포, 무인 매장이 어느새 우리 실생활 가까이 다가왔다. 편의점 업계는 물론이고, 교외에 주로 들어섰던 무인 모텔도 이제는 도심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마트에는 무인 셀프 계산대가 등장한 지 오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커피 전문점 업계에도 무인화 바람이 불어 닥쳤다. 학동점을 시작으로 강남점, 이대점 등 총 5곳에 매장을 오픈한 터치카페와 로봇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주는 플랫폼, ‘비트’를 출시한 달콤커피가 그 주인공이다.
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커피 열풍이다. 이미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하루의 시작이자 생활의 쉼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10조 원을 돌파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3조 원 대에 불과했던 시장이 벌써 3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커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두커피 시장도 2007년 9,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7조 8,500억 원대로 8배 넘게 커졌다.
이처럼 성장세를 거듭해 온 커피시장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커피 전문점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실제 2016년 매출 1조 원 시대를 연 스타벅스의 지난 5년간 매출은 매년 25% 안팎으로 뛰었다. 1999년 이대에 1호점을 연 스타벅스는 지난해 1,100호점까지 늘어나며 주요 상권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커피 전문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커피 전문점이 마냥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업계 내에서는 커피 공급이 수요 대비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상황이다. 할리스와 카페베네 등 내로라하는 커피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강훈 KH컴퍼니 대표의 몰락이 상징적인 사례다. 커피 전문점의 공급은 시장 수요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전국 9만여 개 이상 출점해 있는 커피 전문점은 식음료계의 블루오션에서 피터지게 경쟁해야하는 레드오션으로 평가 절하됐다. 업계 내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가격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저렴한 커피 가격을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이디야 커피와 빽다방의 성장세가 이를 방증한다.
이제 커피 전문점도 치킨 프랜차이즈나 편의점처럼 생존을 위한 다양한 방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때문일까. 커피 전문점 가운데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게임 체인저’가 등장했다. 터치카페와 달콤커피다. 이들 업체는 ‘무인화’를 통해 공급과잉의 커피시장을 뚫고 갈 활로를 찾고 있다.
무인이 만든 ‘가격’과 ‘회전율’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터치카페 본점을 직접 방문했다. 28㎡ 남짓한 넓이의 매장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벽면에 놓인 거대한 커피 벤딩머신(자판기)이다. 왼쪽에는 포장된 원두와 초콜릿 등을 판매하는 자판기가, 오른쪽으로는 커피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도록 컵홀더와 컵뚜껑 등이 정렬돼 있다. 매장 오른쪽 벽면에는 커피를 실내에서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입구 정면의 사이니지(Signage)에서는 가상의 장작불이 은은한 분위기를 만든다. 일반 커피 전문점처럼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온다.
▲터치카페 매장에 설치돼 있는 거대한 커피 머신. 21.5인치의 풀 HD 터치스크린이 눈에 띈다. 스크린을 통해 커피 주문과 결제가 이뤄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매장 외관이 터치카페의 본질은 아니다. 터치카페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저렴한 커피 가격과 높은 매장 회전율에 있다. 터치카페는 커피 벤딩머신을 숍 형태로 구성한 무인 카페다. 현재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커피 품목은 아메리카노를 비롯해 카페모카, 말차 그린티 라떼 등 모두 8개다. 가격도 착하다. 1,500원이라는 가격에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실 수 있고, 티(Tea) 상품군의 가격도 최대 2,300원을 넘지 않는다.
이 같은 가격이 실현 가능한 이유는 인건비 등 일반적으로 매장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지만, 공급 과정을 줄인 것도 크게 작용했다. 통상 커피의 핵심 원료인 원두는 동서식품 등 국내 커피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업체가 공급선을 꽉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원재료 공급과정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터치카페는 이를 절감하기 위해 원두 직수입을 택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원두 직수입을 위한 공급선을 구축했다. 직수입된 원두도 각 매장에 회사가 직접 공급하는 체계를 갖췄다. 때문에 소비자는 단돈 1,500원만 가지고 매장을 방문해도 프리미엄 원두로 만들어진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대기→주문→제조→서빙’이라는 기존 커피 전문점의 주문 과정을 벤딩머신 하나로 일원화시켰다는 데 있다. 커피 한 잔이 머신에서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15초. 높은 고객 회전율을 바탕으로 점포의 채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벤딩머신으로 운용되는 특성 덕분에 커피 제조 인력을 위한 동선 확보의 소요가 줄어든다는 장점은 덤으로 따라온다. 사실상 작은 규모로 매장을 운용할 수 있는 이유다.
이를 바탕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고객 대상의 풀도 넓다. 출근하는 아침 시간대 직장인이나 카페에서 긴 시간을 보내긴 힘들지만 커피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 주요 타깃이다. 현재 플래그십 매장인 터치카페 강남 본점을 기준으로 하루에 판매되는 커피는 약 300잔 이상이다. 1호점인 학동점도 200잔 이상씩 판매되고 있다.
로봇이 만드는 커피, 재고관리도 스마트하게
터치카페가 벤딩머신을 활용해 점포를 무인화하고 있다면 달콤커피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로봇’을 선택지로 삼았다. 결제전문기업 다날의 자회사인 달콤커피는 지난 1월 로봇카페 ‘b;eat’(비트)를 시장에 공개했다. 당시 지성원 달콤커피 대표는 “다날의 전자상거래시스템과 달콤커피의 운영 노하우를 접목한 업계 최초의 로봇카페”라고 비트를 소개했다.
비트는 직사각형의 본체 내부에 로봇과 커피머신이 설치된 커피 자판기다. 로봇 팔이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는 점이 일반적인 자판기와는 차별화된 요소다. 부스 면적은 최대 6.6㎡, 높이는 2m 정도다. 제조할 수 있는 커피는 시간당 90잔, 하루 2,160잔이다.
▲달콤커피가 출시한 로봇카페 비트. 비교적 작은 공간에도 플랫폼 설치만 가능하다면 높은 품질의 커피를 판매할 수 있다.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준다는 외형적 퍼포먼스만이 비트의 전부는 아니다. 비트가 가지는 강점은 재고관리의 효율화에 있다.
달콤커피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로보틱스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의 비트 매장은 하나의 서버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음료의 주문부터 제조, 보관, 픽업, 폐기 등 전반적인 서비스 운영을 본사나 내・외부 인원이 제어할 수 있다. 기기 관리인이 원두와 우유, 초코 등 원재료를 비트에 채우면 제조 가능한 음료의 총 수량이 사이니지에 표시된다. 해당 수치는 본사에서도 동시에 모니터링 할 수 있다. 기존 커피 벤딩머신처럼 굳이 기기를 열지 않고서도 원재료의 신선도는 물론 소진되는 물량과 유통기한 등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비트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동관과 서관에 출점한 상태다. 일일 주문량은 각각의 기기에서 400여잔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향후 회사는 공공기관과 기업, 백화점, 대형 마트 등 소규모의 공간만 있으면 비트를 설치할 수 있는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비트의 속내는 ‘결제 플랫폼’ 확대?
비트를 출시한 달콤커피의 속내는 단순히 무인 카페 활성화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결제 플랫폼 확대에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게 있어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은 일반화 된지 오래다. 특히 결제 플랫폼은 소비자와 대면 접촉이 많은 유통업체에게 있어 매력적인 분야로 여겨진다. 일례로 아마존은 2016년 출시한 ‘아마존 페이먼트’를 통해 결제 플랫폼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또한 이 기조는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데이터앤와이즈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상거래에서 이뤄지는 지급결제의 약 1.3% 정도가 아마존 페이먼트를 통해 이뤄진다. 결제액의 70%를 차지하는 페이팔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업체 순위는 지난해 14위에서 6위로 뛰었다. 결제 건수도 3,300만 건에 이르렀다.
비트 역시 모회사 다날의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품고 태어났다. 비트는 다날의 결제 기술과 달콤커피의 로봇 기술이 융합된 플랫폼이다. 다만, 달콤커피 측은 비트라는 플랫폼이 초기 단계인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테스트마케팅 기간인 만큼 비트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달콤커피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비트가 다날 매출에 크게 기여한다고 볼 순 없다”며 “향후 전국에서 비트가 수백 대 이상 진출한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시장진입 초기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공간 대신 ‘가성비’... 새로운 문화 만드나
현재 무인화된 커피 매장은 극복해야 할 여러 허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약점은 ‘공간의 부재’다. 각각의 업체들은 소규모의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커피를 사면 ‘장소’를 덤으로 제공하는 기존 커피 전문점에 비해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기존의 커피 전문점. 큰 매장 규모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인 카페는 이 같은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 전문점을 방문하는 고객 대다수도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개점 15주년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공식 페이스북 방문자 3만여 명 대상)에서 커피 전문점을 방문하는 이유로 ‘타인과의 만남 및 대화를 위해서’(28.7%)와 ‘개인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서’(18.2%)가 각각 2위, 3위에 랭크됐다. ‘커피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41.2%) 매장을 방문한다고 답한 사람의 수와 맞먹는 수치다.
이와 관련, 터치카페와 달콤카페 각 업체는 기존의 커피 전문점과 무인 카페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다.
터치카페 측은 “결국 소비자에게 와 닿는 부분은 가격일 것”이라며 “유통 과정의 비용과 인건비가 없어진 만큼 원자재에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품질 높은 커피를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커피 전문점과 비교해 무인 카페의 공간 활용도가 높은 만큼,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이 다르다는 견해도 나온다. 달콤커피 측은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서기 애매한 공간에도 비트와 같은 무인 카페는 입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인 카페에 대한 전망은 아직까지 밝다.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커피 전문점 창업을 염두에 둔 예비 가맹점주에게 있어 무인 카페는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평가된다.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물적, 질적 비용도 기존의 커피 전문점에 비하면 낮다. 점원과의 대면을 꺼려하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도 무인 카페의 성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임은성 커피에반하다 대표이사는 “(무인 카페, 자판기의 경우) 최소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고, 매장에 사람이 없어도 수익이 만들어지는 사업 모델”이라며 “편하게 커피를 즐기고 싶다는 고객 입장에서는 주인이 없는 게 부담이 적을 것”이라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