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이사
2002년, 온라인 신발 유통업체로 시작한 자포스(Zappos)의 CEO였던 토니 쉐이(Tony Hsieh)가 휴가 중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된다. “토니, 자포스의 신발을 옮기던 트럭이 전복됐어요. 아무래도 한 켤레도 건지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당시 트럭에 있던 신발은 무려 8,000켤레로, 소매가로는 50만 달러, 자포스가 보유한 전체 재고의 20%에 이르는 양이었다. 하지만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도 그 이후 토니 쉐이가 맞이하게 될 악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체 자포스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드랍쉬핑에서 3PL로
원래 자포스는 드랍쉬핑(Drop Shipping) 방식의 SCM 체계를 고수하고 있었다. 즉, 고객이 자포스 홈페이지에서 신발을 구매하고 자포스가 그 주문내역을 자포스에 입점한 신발업체에게 전달하면, 신발업체가 제품을 고객에게 직접 배송했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자포스는 주문이행(Order Fulfillment)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고객에게 와우(Wow) 경험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비전에 비해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험은 형편없었다. 우선, 재고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고객이 주문한 이후 재고 부족으로 주문을 취소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배송 정보를 각 신발업체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자포스가 고객에게 배송 정보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기가 많은 브랜드의 제품이나 최신 상품은 신발업체에서 직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포스에서 판매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2001년 토니 쉐이는 중대 결단을 내린다. 재고를 직접 사입하여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자산을 헐값에 팔아 자금을 마련한 뒤, 백화점이었다가 버려진 건물을 사들였다. 그곳을 보관 공간 삼아 자포스는 재고 보유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전략은 보기 좋기 먹혀드는 듯했다. 2000년 160만 달러였던 자포스의 매출은 2001년 무려 860만 달러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문제도 생겨났다.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신발을 더 많이 매입하기 위한 자본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신발을 보관하고 관리할 공간과 인력에 대한 고정비 지출 때문에 적자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로지스틱스(eLogistics)라는 물류업체가 자포스에 물류 아웃소싱(3PL)을 제안한다. 자포스는 이로지스틱스가 UPS 월드포스트 허브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배송비가 저렴할 것이고, 재고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로지스틱스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결국 자포스는 이로지스틱스에 물류를 아웃소싱하기에 이른다. 4만 켤레의 신발을 캘리포니아에서 캔터키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도로에서 트럭이 전복되어 8,000켤레의 신발을 잃게 된 것을 제외하면.
이커머스를 몰라서 생긴 비극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로지스틱스는 주로 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운영하는 유통·제조업체의 물건을 다루던 물류업체였다. 즉, 이로지스틱스는 자포스처럼 브랜드부터 스타일, 사이즈, 신발 너비까지 모두 제각각의 방식으로 관리돼야 하는 이커머스의 물류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앙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온라인 유통 비즈니스 모델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어마어마한 수의 SKU가 SCM의 물류 단계에서는 엄청난 복잡성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아직 이커머스가 발달하기 전인 2000년대 초로, 이와 같은 사실을 자포스도 이로지스틱스도 알지 못 했다.
2009년 기준, 자포스는 약 1,200개 이상의 신발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판매하는 스타일은 SKU 기준 20만 개, 사이즈와 색상까지 구분하면 약 90만 개 이상에 이르렀다. 재고 숫자는 400만 개 이상이었다. 월마트의 매장별 평균 SKU가 4만 5,000개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자.* 그 20배가 넘는 자포스의 SKU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며, 이 정도 SKU를 취급해야 하는 물류는 기존 물류와 달라도 한참은 달라야만 했다.
예를 들어 소품종 대량생산 제조업체들은 진열보다는 보관을 위한 공간을 더 필요로 한다. 반면 이커머스 업체의 재고관리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고객의 주문에 맞게 피킹(Picking)을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진열 시스템이 요구된다. 진열 랙에 한 번에 적재할 수 없는 SKU는 별도의 보관 공간을 만들어 재고를 이원화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이커머스 물류의 특성을 간과한 채 수많은 SKU를 구분하지 않고 팔레트(Pallet) 단위로 집화·재적한다면, 날마다 발생하는 이커머스 주문에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이와 같은 재고 진열 및 관리에 관한 노하우가 없었던 이로지스틱스의 오배송률은 5%로 치솟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개발자 출신의 CEO, 토니 쉐이는 결국 직접 나서 이커머스 물류에 적합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포스의 풀필먼트 센터를 열었다.
물류에 관한 그릇된 전제조건들
많은 화주사가 3자 물류, 즉 아웃소싱 업체를 찾을 때 ‘가격’을 최우선순위로 고려한다. 기업이 이러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가 감춰져 있다. 첫째, 물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다. 즉, 물류 업무에는 보관과 배송만 있을 뿐이어서 업체마다 서비스 품질의 차이는 크지 않다. 둘째, 첫 번째 전제에 따르면 어디에 물류를 아웃소싱해도 비슷한 결과가 기대되기 때문에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비용뿐이다. 셋째, 물류는 SCM 전반에서 가장 하위 업무로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파트다.
그러나 적어도 이커머스에서 만큼은, 이러한 전제가 수정돼야 한다. 자포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과거 단순 보관과 배송의 실행(Execution)만을 하던 물류업체는 이제 이커머스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비정형성에 대응하기 위해 예측(Projection)과 기획(Planning)까지 업무 반경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온라인 위주의 물류 대행 서비스가 풀필먼트(Fulfillment)라는 고유의 이름으로 분화되었다.
자포스가 풀필먼트에 집착한 것은 물류가 ‘고객의 와우 경험’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풀필먼트가 없었다면 자포스의 재고 보유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재고 보유가 불가능했다면 그들은 과거 드랍쉬핑 모델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풀필먼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포스도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자포스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물류에 대한 기존 전제를 떨치고, 그것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무역 및 외국어를 전공하였으며, 2012년부터 두손컴퍼니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5년 풀필먼트 서비스 '품고(poomgo)'를 런칭하여, 지금까지 100곳 이상의 이커머스 셀러들, 15,000종 이상의 제품들에 대한 물류를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