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 '노쇼'를 바라보며 SCM을 반성하다

by 설창민

2018년 01월 04일

공급망을 망가뜨리는 것은 제약을 고려하지 않는 계획

우리 신년회의 규칙(Rule)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공급망 혁신을 논하기 전, 노쇼(No show)를 당연히 여기는 습관부터 반성해야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매해 이맘 때 즈음이면, 한 가지 걱정이 앞선던 것 같다. 그 말인즉, 신년회(송년회) 장소를 찾을 때가 됐다.

 

일단, ‘공식적인 신년회’는 준비 과정부터 다르다. 근무시간을 쪼개 수많은 제약조건을 따져 가면서 적당한 장소 명단을 좁혀 나간다. 참석자들이 못 먹는 것, 또는 싫어하는 음식은 물론 피해야 한다. 시끄러운 곳, 분위기 누추한 곳, 맛없는 곳도 당연히 안 된다. 대화나 잔 돌리기는 신년회의 기본이다. 자리배치가 어려우면 또 안 된다. 건배사 몇 개쯤 준비해두는 것은 요즘 세상에 기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석자 전원이 열외 1명 없이 참석 가능한 일정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정성들여 잡은 신년회 당일에는 모두가 미리 이동한다. 늦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거나 변경되면 그것도 미리 해둬야 된다. 예약 받은 식당도 미리 취소와 변경을 요구하고, 추진하는 담당자도 그것을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문득 생각이 났다. 신년회를 준비하는 정성으로 판매와 생산계획을 짜면 정말 건전한 공급망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보통 공급망을 망가뜨리는 것은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 때문이 아니던가. 시장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공장의 생산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부서의 개발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용한 설비와 물류 처리능력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공급망은 실패한다. 단언컨대 우리가 신년회를 계획할 때 고려하는 제약조건만큼이나 시장의 ‘니즈’, 그리고 계획 대비 실행을 고민한다면 누군가의 노래가사만큼 세상은 진정 아름다울 것이다.

 

이제 조금은 가볍게 주변 친구들과의 신년회를 생각해보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추진하는 사람의 마음은 즐겁다. 하지만 신년회 당일이 되면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타들어간다.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본인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쇼(No Show)다.

 

이미 공지 다 했는데, 또 전화를 하고 카톡을 날린다. 그때서야 참가자들을 이야기한다. “갑자기 일이 생겼어”, “보고서 하나만 보내고 바로 나갈게”, ‘“가고 있는데 차가 막히네”, “지금 회사 나왔어. 지하철 타러 가” 친구들과 신년회는 줄서서 기다리는 맛집을 예약하고 갈 때도 있다. 당연히 식당은 모든 사람이 제 시간에 오길 바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참석자들이 노쇼요정이 된다면? 식당도 손실이며,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마 이를 갈 것이다.

 

혹시 개인적인 신년회는 조금 늦게 가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 늦게 가야 본인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줄 거라고 보는 것일까. 물론 예정 없는 상사의 지시를 받아서 늦을 수는 있다. 인정한다. 잠깐, 열 명중 예약자 빼고 아홉 명이 그렇다고? 아홉명 모두가 신년회 하려는 당일 저녁 퇴근시간 직전에 갑작스런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그리고 그 업무 지시를 내린 사람이 “약속 있다”는 사정을 듣고서도 퇴근 전에 하고 가라고 지시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갈 길이 먼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 뭔가 하나라도 더 끝내고 가려는 일 욕심에 늦춘 거라면 이건 그야말로 ‘종특’이다.

 

계획을 세우고 규칙(Rule)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공급망 관리의 본질이다. 그런데 과연 식당 예약도 ‘노쇼’는 당연하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공급망 관리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식당에서 밥 먹는 약속도 안 지키는데 기업간 약속과 규칙을 지키려 할까. 공급망 관리를 통해 지금 이 상태보다 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할까.

 

기왕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 노쇼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습관도 이제는 바꿔 보자. 주문과 납품을 제 때 하는 것도 약속이지만, 여럿이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약속이다. 약속의 기본기가 없으면서 월드컵 축구 때마다 한국축구의 기본기를 탓하는 것은 모순이다.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이 관리자라면 식사 약속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이 실무자라면 약속시간 받아놓고 너무 일 욕심 부리지 말고, 혹시라도 지시를 받았다면 그 사정을 당당히 얘기하자. 그것도 아니면 미리 연락하는 습관을 들이자. 물론 필자가 이런 글을 썼다고, 평소 약속을 엄청 잘 지킨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도 이제 되도록 약속을 잘 지켜보겠다. 그러니 같이 한번 해보자는 뜻이다. 우리 모두 다같이 신년회 약속 잘 잡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기분 좋게 희망찬 새해를 맞으시기를 바란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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