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와 ‘물류’ 합한 ACCA, 이커머스 전문 물류에 집중
판매율 따라 센터 내 상품 위치 조정하는 WCS, 수행은 로봇이
글. 박정훈 CJ미래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지난해 7월 말, 웹서핑을 하던 중 일본발 기사 하나가 필자의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GTM(Goods to Man) 피킹로봇이 상용 도입됐다는 소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에서 처음으로’는 아니다. 일본에서 ‘중국산 피킹로봇‘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다. GTM은 중국의 징동닷컴(JD.com)의 물류 운영에 사용되는 그것이다. AI물류로봇을 도입한 해당 회사는 업무 효율이 6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중국의 로봇기술 발전 속도를 한 번에 대변해주는 이 사건에 관심이 갔다.
여기서 잠깐, GTM(Goods to Man)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넘어가자. GTM은 일반적으로 창고에 보관된 물건이 로봇이나 설비에 의해 출하장 쪽에 있는 작업자에게 자동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설비형태 로봇시스템 GTM의 대표적인 예가 스위스로그社의 오토스토어(Autostore)이며, 피킹로봇 형태의 대표적인 예가 아마존의 키바(KIVA)다. GTM 방식의 물류 로봇은 현재 도입 초기단계에 있으며, 국내도 CJ대한통운이 GTM 방식의 피킹로봇을 개발하여 현장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최근 물류로봇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GTM로봇을 물류센터에 도입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해당 로봇을 도입하겠다고 하는 물류업체의 이름이었다. 아카인터네셔널(Acca International, 이하 아카)이라는 물류업체다. 개인적으로 이전까지 해당 업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대체 어떤 물류업체이길래 유명한 물류업체들을 제치고 AI물류로봇을 도입했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호기심에 이끌려 회사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와 ‘물류’를 함께 한다고?
찾아보니 아카社는 2006년 설립된 업체로, 현재 CEO는 카토 야마토가 맡고 있다. 10년의 업력을 가지고 있고, 푸마와 버켄스탁과 같은 브랜드 물량도 소화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아카가 자신들의 물류센터를 ‘공장’, 정확하게는 ‘EC팩토리(EC Factory)’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카의 본사는 도쿄의 미나토구에 위치해 있고, 공장의 경우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 2개, 지바현에 1개를 보유하고 있어 총 3개의 공장이 존재한다.
살펴보니 아카社의 업무는 크게 ‘스튜디오’와 ‘물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스튜디오 업무는 말 그대로 ‘상품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이다. 상품 촬영서부터 이미지 보정까지 그래픽 작업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든 촬영 작업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토탈 스튜디오개념과 비슷하다. 또 하나 특징은 화주사의 물량에 관계없이 촬영 부문만 아웃소싱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외에 잡지나 블로그 관리도 대행한다고 하니 어쩐지 스튜디오를 하다가 ‘물류업무’까지 확장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의 물류 부문 서비스 역시 스튜디오 업무처럼, 토탈 물류 솔루션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재고 위탁은 최소 5평 이상이면 가능한데, 보관 공간은 유연하게 조절 가능하다. 또한, 물류시스템을 고객의 판매시스템과 연동시킬 수 있고, 출고시 상품 외관확인부터 수지검침 서비스까지 가능하다. 반품 관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물류업무를 수행하기 힘든 이커머스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전형적인 물류 모델이었다.
세 시스템을 통합한 플랫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카社는 이커머스 전문 물류대행이 주 업무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 물류업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카社는 아직까지 그리 크지 않은 물동량 규모에도 불구하고 ‘물류로봇’까지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이커머스 물류대행과는 차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아카社의 비즈니스모델을 살펴보자.
아카社 비즈니스모델의 프레임워크(Framework)는 EC팩토리(EC Factory), ALIS, ONE,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EC팩토리는 제품 배치와 고객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물류 거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ALIS는 EC의 데이터를 중앙 관리하는 체계로, 일종의 ‘재고관리 연계 시스템’이다. 마지막으로 ONE은 B2B, B2C 재고를 중앙에서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형 창고관리 시스템’으로, 바로 여기서 GTM 방식의 로봇이 활용된다. 시스템을 기반으로 로봇을 활용해 상품을 적치, 출하하는 것이다.
▲ 아카인터네셔널 소개 영상 중 원(ONE)에 관련된 부분. (위쪽 사진) 붉은색 네모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에 키바(KIVA) 같은 물류로봇이 숨어있다. 해당 로봇이 선반을 옮긴다. 아래쪽 사진은 아카社에서 실제 사용되는 물류로봇 EVE.
① EC팩토리 : 스튜디오를 품은 물류센터
앞서 언급된 스튜디오 업무는 EC팩토리에서 수행한다. 고객사는 화물을 EC팩토리에 보냄으로써, 제품 판매를 위한 준비를 한 번에 마칠 수 있다. 아카社는 고객으로부터 제품을 받아 물류센터에 입고, 적치한다. 그 뒤 샘플 상품을 꺼내어 모델과 함께 고객사 요구에 맞게 촬영 후에 판매에 사용될 수 있는 제품설명 이미지 제작하여 고객에게 제공한다. 촬영을 끝낸 샘플은 다시 치수측정, 마스터데이터화(제품사진, 사이즈, 수량 등 SKU 단위 정보화) 과정을 거쳐 재포장되어 재고로 보관된다.
아카社가 여타 물류업체들과 다른 점은 단연 ‘스튜디오’ 기능이다. 실제로 이들은 물류업체임에도 불구하고, 패션제품을 잘 팔리게 만드는 역량을 자사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그 중심에 ‘스튜디오’가 있다. 회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카社의 촬영 스튜디오는 150개 정도의 촬영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크기로 따지면 1만 평 이상의 규모다. 사실상 대형 스튜디오 사업자라고 해도 되는 수준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제품만 보내면 촬영부터 이미지 가공, 카피문구 삽입, 콜센터, 상품 DB작성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심지어 모델과 디자이너가 상주하고 있어, 고객의 긴급 요청에도 대응이 가능하다.
물류 관점에서 스튜디오를 보자면, 아카社는 물류업무에 ‘고객제공가치’를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스튜디오 업무를 통해서 전체 고객가치를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가치사슬(Value Chain)을 확대한 것이다.
▲ 물류거점과 스튜디오의 역할을 모두 가진 EC팩토리(사진= ACCA 홈페이지)
② ALIS : 한 화면에서 실시간 재고 관리
기존, 많은 쇼핑몰들이 어려움을 겪는 물류관리 업무 중 하나가 ‘실시간 재고 관리’다. 실제 물류업체에 위탁하는 경우, 재고의 가시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카社의 고객은 ALIS를 통해 하나의 화면 시스템에서 제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객은 실제 판매 역량을 높일 수 있으며, 불필요한 재고이동을 최소화함으로써 물류비 절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아카社는 자체 재고배치 엔진에 기반하여 각 판매채널의 상품 판매상황을 모니터링한다. 이후 그 결과를 통해 채널별 가용재고의 분배를 자동으로 실시한다. 이러한 물류운영은 ALIS의 구매데이터 분석과 연계하여 SKU별 보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KPI분석 기능을 통해 운영수준 향상을 지원할 수도 있다.
③ ONE : 클라우드를 만난 물류로봇
아카社는 고객사의 판매정보에 따라 상품을 피킹(Picking), 포장, 출고한다. ‘출하’ 단계에서는 점포 배송, 거점 배송, 택배배송 등 모든 배송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국제배송까지 대응이 가능하다. 물론 배송 업무는 아카社가 직접수행하는 것이 아닌 택배사 등 외주업체를 이용하지만, 당입 입고와 출고 지원이 가능하며, 반품 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이커머스 물류의 특성상 물류센터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입출고가 발생한다. 다양한 배송 옵션과 당일 입출고까지 지원하는 아카社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때 앞서 언급된 것처럼 ‘불필요한 재고이동의 최소화’가 물류비 절감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ONE과 물류로봇은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일까.
ONE은 클라우드형 창고관리시스템과 로봇이 합쳐진 첨단 물류운영 체계를 의미한다. 클라우드형 창고관리시스템이란, 여러 창고에 분산된 SKU를 클라우드에서 통합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커머스 물류의 경우, 주문 후 빠른 납품을 위해서 보관거점을 지역별로 분산 배치할 필요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각 거점별 재고에 대한 일원화된 관리가 쉽지 않다.
이때, 클라우드 방식의 창고관리 시스템을 사용하면 여러 곳에서 분산된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수요지별 출하예상물량에 대해서도 각 거점 가용재고량에 근거하여 최적의 출하거점을 유연하게 지정해줄 수 있다. 즉, 물리적으로 여러 개의 거점을 가지는 데 따른 지리적 분산의 효용과 하나의 거점에서 누릴 수 있는 일원화된 재고관리의 이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아카社의 물류로봇은 ONE과 연계하여 B2C 물류에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을 수행한다. 아카社가 사용하는 물류로봇은 키바형의 피킹로봇인 EVE(Electric Vehicle)다. EVE는 30분 충전으로 10시간 가동이 가능하며 EV500 모델의 경우 최대 500kg의 가반하중을 감당할 수 있다. 기존 수작업에 의한 피킹 작업이 시간당 50~100개의 피킹이 가능했던 반면, 로봇을 활용한 GTM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시간당 300~600개의 피킹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카社 측의 설명이다. 사람이 아닌 로봇을 활용했기에, 24시간 멈추지 않는 피킹운영 또한 가능해졌다. EVE의 제조사가 바로 중국의 물류로봇 및 시스템 전문 스타트업 ‘GEEK+’다.
▲ (본 기사는 지난해 12월호에 실린 것으로, 위에 언급된 '올해'는 모두 2017년입니다.)
물류로봇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렇다면 EVE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물류로봇을 조종하기 위해선 WCS(Warehouse Control System)가 필요하다. WCS는 물류센터 내에서 컨베이어 시스템, 분류기, 회전 장치 등과 같은 장비의 실시간 활동을 지시하는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을 말한다. 마치 창고 내 ‘교통경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 아카社는 GEEK+라는 물류로봇의 운영 솔루션을 자사에 맞게 개편하는 방식으로 WCS를 운영하고 있다. 이 WCS는 기본적인 재고관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류로봇의 작업을 계획, 통제,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림1]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 [그림1] 아카社의 WCS
가령, 창고 내에 기본 적치되어 있는 상품 중에는 온라인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림에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것이 매출이 높은 제품이 있는 진열대라고 가정해보자. 작은 공간에 판매율이 서로 다른 제품이 섞여 있다면 그것을 찾기 위해 작업자는 물류센터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아카社의 시스템은 매출이 높은 오렌지색 제품을 작업자가 있는 출하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로봇은 명령에 따라 오렌지색 상품이 실린 선반 자체를 출하장 가까이 위치시킨다. 아카社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물류 출하대응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아카社는 창고바닥을 바둑판과 같이 나눴다. [그림2]의 바닥에 있는 사각형 한 칸, 한 칸이 선반 하나가 차지하는 자리이자 저장 위치가 된다. 그리고 피킹로봇들이 선반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적치와 피킹의 역할을 수행한다.
▲ [그림2]
이때 WCS는 로봇들의 거대한 두뇌역할을 하며 한 대 한 대의 로봇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운영상황을 관리한다. 또한, 여러 대의 로봇이 창고를 돌아다니면서 동선이 꼬이거나 막히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통제하기도 한다. 마치 작업자에게 일을 분배하고, 제대로 일하는지 업무 진행 상황을 관리하는 창고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