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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견학기] 일본 물류센터에서 배운 것

by 엄지용 기자

2017년 10월 12일

토요타 물류센터 갈 줄 알았다가 방문한 일본의 이름모를 물류센터 

3정5S의 '병적 깔끔함', 일본의 물류센터에서도 보이다

3정5S보다 중요한 것 : 디테일과 근로환경, 그리고 창고를 바라보는 인식

▲ 일본 요코하마 물류단지(사진왼쪽)와 사가미하라 물류센터 옥상의 태양열판(사진오른쪽)

 

Idea in Brief

토요타의 3정 5S라 했던가.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까지. 토요타의 생산관리시스템은 유독 ‘깔끔함’이라는 키워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생산관리 교과서에 나오는 토요타만의 이야기라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토요타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깔끔함’이라는 키워드는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일본 물류센터에서도 나타났다. 주구장창 ‘깔끔함’을 이야기했지만, 실상 우리가 일본 물류센터에서 그들의 ‘병적인 깔끔함’을 무조건 배우자는 말을 하기는 싫다. 정작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때는 유례없는 폭염이 쏟아지던 지난 7월. 회사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던 중 편집장이 한 마디를 건넸다. “13일 목요일부터 시간 괜찮나? 일본 한 번 가야겠다.” 나는 덤덤한 말투로 “그러지요”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14일 금요일부터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신나게 심야영화를 볼 계획이었지만, 그런 것이 무엇이 중하랴. 일본이란다. 해외출장이다. 기회는 다가올 때 잡는 것이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한 업체로부터 일본 물류센터를 함께 견학하자는 제안이 왔다고 한다. 어떤 물류센터를 가냐고 물어보니 무려 ‘토요타’가 포함돼 있다. 다른 업체의 이름은 사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JIT(Just-In-Time)’와 ‘린생산’을 자랑하는 그 토요타다. ‘칸반’, ‘지도카’, ‘카이젠’... 생산관리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용어를 만든 그 업체의 시스템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사실 나에게 있어 토요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키워드는 토요타의 생산관리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인 ‘3정(正) 5S’였다. 물류를 전공하던 학창시절 토요타의 3정 5S를 배우면서 ‘얘네들은 왜 이렇게 병적으로 깔끔한 것에 집착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았기 때문인지라.

 

그도 그럴 것이 5S 중 ‘정리(整理, Seiri)’, ‘정돈(整頓, Seiton)’, ‘청소(淸掃, Seiso)’, ‘청결(淸潔, Seiketsu)’, 네 가지 요소는 모두 ‘깔끔함’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돼 있다. 하나 남은 S인 ‘습관화(しつけ, Shitsuke)’ 또한 앞서 언급한 4개의 요소를 지킬 수 있는 현장 규율을 만들고, 작업자에 습관에 내재화시키자는 내용이다. 심지어 3정(정품, 정량, 정위치) 또한 5S의 하나인 ‘정돈’을 지원하는 표준화 방법론이다. 즉, 토요타의 3정 5S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깔끔함의 습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오랜 의문을 풀고 제대로 된 토요타 기사를 써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일본어 질문을 만들고, 김포에서 일본 도쿄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카페에서 열심히 노트북을 만지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도착했다. 토요타 방문 일정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토요타 대신 들어온 일정은 난생 처음 보는 생소한 이름의 물류센터 두 개. 하나는 항구도시 ‘요코하마’에, 또 다른 하나는 도쿄 남서쪽에 있는 ‘사가미하라’라는 동네에 있다고 한다. 밤을 새며 준비한 질문들은 그렇게 무용지물이 되는가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물류센터, 그리고 배운 것

 

일본에 도착하고 다음날, 본격적인 현장 방문 일정이 시작됐다. 전날 담당자에게 해당 물류센터의 소개서를 받아 봤지만, 일본어로 작성된 소개서의 압박과 전날 밤 음주로 인해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가면 뭔가 보이겠지’라는 마음은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돌발 상황에서의 질문은 이미 많이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렸다. ‘요코하마’에 도착해서 본 물류센터의 모습은 얼마 전 서울 장지동에서 본 ‘서울복합물류’의 그 모습과 흡사했다. 한국과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그냥 물류센터다. 더욱이 수십년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는 요코하마의 그 물류센터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고풍스럽기까지 했다. 첨단장비? 그런 게 있을 리가.

▲ 물류센터에 진입하는 모습과 물류센터 내부 전경. 해풍에 쓸린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까지 왔는데, 먹고 마시고 놀다 돌아왔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열심히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대놓고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해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장 전 열심히 공부했던 나의 토요타는 떠나갔지만, 내가 ‘병적인 깔끔함’이라 평했던 토요타의 3정 5S는 요코하마의 그 물류센터에도 녹아있었다.

 

깔끔함의 대치점

 

그래. 그 물류센터는 이상하리만치 깔끔했다. ‘서울복합물류’를 포함한 한국 물류센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은 여기서 나타났다. 국내 물류센터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테이프, 박스와 같은 부자재, 핸드카트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남은 것은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해있는 ‘박스’와 ‘파렛트’의 군단이었다.

▲ 일본에서 촬영한 물류센터의 전경 사진들. 물론 한국 물류센터도 작업 안할 땐 깔끔하다. 그래서 작업 사진(가장 아래사진)도 끼워놨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화물차에서 나타났다. 한 때 인천북항에서 약 20일 간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최소한 그 기간 동안 화물차 하나만큼은 지겹도록 본 기억이 있다. 잔뜩 먼지를 뒤집어쓰고,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진. 가끔은 화물칸을 삐져나온 과적화물로 도로 위의 공포가 되는 존재가 내가 느낀 한국 화물차의 모습이다.

 

일본은? 물류센터 안팎을 오가는 화물차는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옵티머스프라임’과 같은 느낌의 반짝거림을 자랑했다. 생각해보니 일본 거리와 도로에서 만난 대부분의 화물차가 이랬다. 놀라서 SNS에 관련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일본 현지에서 근무하거나 살고 있는 지인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한국에 비하면 일본은 트럭 관리를 병적으로 한다”거나 “도쿄에서 후쿠오카 사이의 야간 고속도로 주행하다가 너무 깨끗한 화물차 뒤에 가면 전조등이 반사돼 운전하기 힘들다”거나 하는 이야기다.

일본 물류센터와 거리에서 만난 화물차들. 물론 모든 화물차가 깨끗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화물차 비율이 매우 높았다. 그것도 그냥 깨끗한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깨끗했다.

 

복지·안전을 위한 디테일

 

요코하마의 물류센터에 이어 방문한 ‘사가미하라’의 물류센터는 나에게 더 큰 놀라움을 전달해줬다. 근로자의 ‘복지’와 ‘안전’을 위한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놀라움은 ‘개인 샤워부스’다. 100엔(한화= 약 1000원) 동전을 넣으면 5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물류센터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장거리 주행을 마친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땀을 씻기 위해 이용한다고 한다.

사가미하라에서 만난 코인샤워부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녀 샤워부스가 따로 있다.

 

사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땀이 온 몸을 적신다. 최소한 내가 가본 한국 물류센터 중에는 ‘에어컨’이 있는 곳이 없었고, 그냥 거대한 선풍기 몇 대 놓고 굴리는 정돈데 여름에는 이걸로 더위가 감당될 리가 없다. 물류센터에서 8시간 정도 알바를 끝마치고 퇴근 수속을 밟고 나면 “아, 그냥 집에가서 씻고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샤워장? 내 경험 안에서 한국에 그런 물류센터는 없다.

 

또 놀란 것은 근무자를 위한 카페테라스다. 식당이 없는 이 물류센터에 구조상, 이곳은 현장 근로자들의 쉼터라고 한다. 자판기의 나라인 일본답게 근로자들의 먹거리를 챙길 수 있는 자판기 수대가 놓여있다. 역시 굉장히 깔끔하다.

사가미하라에서 만난 카페테라스. 자판기도 보인다.

 

또 한 가지 재밌는 게 보인다. 자판기의 코드를 연결하는 콘센트가 자판기 상단에 노출돼 있다. 콘센트 주변도 매우 깔끔하다. 기기 내부에 쌓이는 먼지로 인한 합선 및 화재 방지 측면의 노력으로 추측된다. 문득 한국에서 매년 여름이면 보도되는 먼지로 인한 에어컨과 선풍기 화재 사고 보도가 생각났다. 디테일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콘센트의 디테일을 주목하라!

 

마지막으로 눈에 뜨인 것은 층마다 하나씩 비치된 ‘흡연장’과 ‘양철 재떨이’였다. 심지어 실내 ‘흡연실’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옥상 한 편이나 지상 1층에 달랑 한두개의 흡연장을 운영하는 한국 물류센터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서울복합물류만해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담배 한 대 태우고 오면 15분 가까이 지났던 생각이 났다. 15분이 어떤 시간이냐고? 왔다갔다만 해도 휴식시간 끝이다.

 

흡연장 설치는 단순히 복지 차원을 넘어 화재 예방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함께 현장을 견학한 물류인프라 컨설팅업체 디오로지텍 관계자는 “물류센터에 제대로 된 흡연장만 만들더라도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상당 부분 감소한다”며 “국내 물류센터 같은 경우 흡연장에 쓰레기통 같은 것을 대충 두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런 것이 화재로 연결되는 요인”이라 밝혔다.

 

업계의 눈, 인식이 만드는 차이

 

이즘에서 현업의 이야기를 안 들어볼 수 없다. 그들은 업계 밖 관찰자인 기자의 눈과는 분명히 다른 시각으로 현장을 바라봤을 것이다. 마침 그 날 현장에는 기자뿐만 아니라 건축사무소, 물류인프라 컨설팅업체, 자산운용사 등 물류인프라 설비와 관련된 관계자들이 함께 방문했었다. 실제로 이들 업계 관계자들은 토요타 생각만 주구장창 하고 있던 기자와는 달리 ‘바닥 재질’, ‘천장 높이’와 같은 실제 물류센터 설비에 필요한 요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중 물류인프라 전문컨설팅 업체인 ‘디오로지텍’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디오로지텍은 2008년 6월 설립한 물류인프라 전문 컨설팅업체다. 물류센터 입지분석, 부지선정부터 물류센터 설계, 운영설비와 시스템, 화주유치까지 물류인프라와 관련된 ‘토탈 솔루션’을 기업 규모에 맞춰 제공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고맙게도 이번 일본 물류센터 견학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해준 업체이기도 하다.

 

손병석 디오로지텍 물류컨설팅본부장에 따르면 현시점 일본 물류센터와 국내 물류센터의 물류 인프라의 격차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 물류센터 대부분이 랙과 같은 설비를 대부분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수입하며, 단가경쟁에만 매몰돼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일본 물류센터가 한국에 비해 갖는 결정적 우위, 그리고 한국이 일본 물류센터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물류센터를 바라보는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손 본부장의 강조사항이다. 일본은 물류센터를 공급망의 전반적인 기능과 여타 산업을 지원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 인프라’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한국은 그저 평당 얼마씩 ‘창고 보관료’를 받으며 단가경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물류센터를 ‘산업 인프라’로 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아워홈과 같은 일부 제조·유통기업이 대표적이다. 가령 손 본부장에 따르면 롯데마트 김포 물류센터는 평당 600만 원 이상의 지가를 받는 땅에 지어졌는데, 물류센터를 ‘창고’로만 바라본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 볼 수 있다는 평가다. 일반적으로 ‘창고’는 평당 50만원 미만의 땅에 지어지는 것이 업계 상식선의 생각이다.

 

손 본부장은 “애초에 보관료 하나로만 수익을 만드는 창고 개념으로 물류센터를 본다면 ‘아마존’이나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기업은 모두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미친 짓을 하기 위해선 ‘취급물량’이 기반이 되고,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 되는데 한국의 영세 창고기업은 그런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디오로지텍에 따르면 일본 물류센터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근로자의 복지’와 ‘안전설계’에 대한 고민이다. 한국은 물류센터 인프라 건립에 자산운용사, 투자사, 물류센터 임대사, 인력도급업체 등 다양한 주체가 연결되는데, 이 중 센터 근로자를 위한 투자에 굳이 나서는 업체는 없다. 안전관리의 주체를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한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안전관리를 신경 쓰며 ‘돈’을 쓰는 주체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결국 센터 근로자의 근무환경 악화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손 본부장은 “저단가 경쟁이 일반화된 한국의 상황은 물류센터 노동자의 근로환경 악화로 이어진다”며 “최저임금 수준의 고용이 아니면 기업이 생존할 수 없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동화나 근로환경 개선에 투자할 여건 또한 당연히 없어지는 것”이라 밝혔다.

▲ 한국에서 촬영한 서로 다른 물류센터의 전경 사진들.

 

이즘에서 생각해 보자. 물류센터 근무인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많은 물류센터가 인력난을 겪는 것은 업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왜 근로자들이 국내 물류센터 근무를 기피할까. 최저 수준의 임금에 에어컨 하나 없는 근무환경,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현장 까대기. 택배 상하차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이유는 많다.

 

이즘에서 고민해 보자. 앞서 일본 물류센터는 충분히 본 것 같다. 우리나라 물류센터의 환경은 지금 어떠한가.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어떠한가. 그리고 물류센터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최소한 노동자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과연 인력도급업체와 창고업체는 돈을 많이 벌고 있을까.

 

물류 부동산이 뜬다고 하는 지금, 조금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일본에서 배울 것은 교과서에 이미 충분히 소개된 ‘3정 5S’뿐만은 아닌 것 같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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