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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로테르담항, 스타트업을 ‘찜’하다

by 김정현 기자

2017년 05월 12일

로테르담항이 세계 최고 항만으로 부상한 까닭은

스타트업, 보수적인 항만을 ‘언번들링’하다

선박, 해운

글. 김정현 기자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이 전통 물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2016년 4월 DHL이 발표한 ‘물류 트렌드 레이더(Logistics Trend Radar) 2016’ 보고서에 수록된 ‘마이크로 트렌드와 스타트업(Microtrends and Startups)’은 글로벌 스타트업이 기존 시장을 언번들링(Unbundling: 해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해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각국의 항구에서 스타트업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The Port of Rotterdam)이 있다. 로테르담항은 네덜란드 무역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유럽 최대 항구이자 글로벌 허브로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물동량 중 60% 이상이 로테르담항을 거친다.

 

현재 로테르담항을 포함한 네덜란드 항만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항만으로 평가된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작년에 발표한 ‘항만 인프라 발전 수준(Quality of port infrastructure)’에 따르면 네덜란드 항만은 7점 만점에 6.8점을 받았다. 이는 미국(5.7), 독일(5.6), 싱가포르(5.6), 캐나다(5.5), 일본(5.4), 한국(5.2)보다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항만은 7점 만점에 6.8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항만으로 평가된다.

 

세계 제일 항만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

 

그렇다면 네덜란드 항만이 최고 수준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네덜란드는 수십 년 전부터 노후 항만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가령 로테르담은 RDM 프로젝트를 통해 노후 항만과 잠수함을 만들던 부지를 연구·개발단지로 탈바꿈시켰으며, 항만 주위에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여기서 발전한 개념이 바로 로테르담의 ‘스마트포트(Smart-port)’이다.

 

로테르담항의 RDM 지역에는 드론을 날릴 수 있는 드론존, 해수를 이용하는 대형 실험실, 3D프린팅 실험실 등, 최신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실험할 수 있다.

 

또한 로테르담항은 스마트포트 개발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빌딩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로테르담항만청은 4천만 달러(한화 약 450억 원)의 자금을 초기 투자해 로테르담항 펀드(Rotterdam Port Fund)를 만들었고, 이를 스타트업 운용 펀드로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테르담항만청은 세계적인 해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PortXL의 핵심 파트너로 활동하며 스타트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언경 박사는 “스타트업과 연구에 대한 투자가 로테르담항을 세계 제일의 항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PortXL, 항만 해체를 꿈꾸다

 

로테르담항만청의 파트너인 PortXL은 세계 유일의 항만 액셀러레이터다. 액셀러레이터는 2005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지금껏 해운·항만에 특화된 액셀러레이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PortXL은 유일무이한 항만 특화 액셀러레이터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항만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물론 해양, 해안, 항구는 현재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여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과 협업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기존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래 스트레트먼스(Mare Straetmans) PortXL 상무이사는 앞으로 항만에서 스타트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래 이사는 “로테르담 항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PortXL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면 테스트를 거쳐 이를 개선한 뒤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PortXL은 스타트업의 발전을 위해 로테르담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마래 이사는 로테르담항을 FC바르셀로나 축구팀에 비교한다. 그는 “스포츠 스타트업이 FC바르셀로나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향후 비즈니스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FC바르셀로나의 인지도 때문이다”라며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로테르담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항만이었다. PortXL은 많은 스타트업이 로테르담에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며 좋은 이미지를 쌓은 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PortXL은 해운산업을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눠 각각의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선별한다. 운송과 물류(Transport & Logistics), 에너지(Energy), 화학과 정제(Chemicals & Refinery), 해사(Maritime)가 그 기준이다.

portXL이 분류한 4가지 분야의 스타트업▲ PortXL은 해운산업을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누어 스타트업을 선별하고 있다.

 

PortXL은 매년 3개월짜리(올해의 경우, 4월에서 6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PortXL은 먼저 7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모은 뒤 그 중 200개 기업을 선별해 스카이프콜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가운데 다시 20개 기업을 뽑아 로테르담으로 부른다. 20개 기업은 150~200명의 PortXL 멘토와 만나 비즈니스를 점검받으며, 이 멘토들이 10개의 기업을 최종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 10개 기업은 비즈니스 플래닝, 자금조달, 마케팅, 피칭(Pitching) 노하우 등 여러 방면에서 PortXL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적으로 비즈니스 설립까지 하게 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은 쉘(Shell)기업 CEO, 로테르담항만청 대표 등 50명의 C-레벨 인사를 포함한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사업모델 피칭을 하게 된다. 그리고 PortXL은 이 기업을 싱가포르, LA, 뉴욕, 리버풀 등 글로벌 네트워크에 소개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총 500명 이상의 해운업 관련 클라이언트와 만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향후 비즈니스를 하는 데 필요한 잠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마래 이사는, 이러한 기회가 과거 해운 쪽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회이며, 다른 액셀러레이터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기회라고 설명한다.

 

현재(2017년 4월 기준) PortXL은 총 11개 파트너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EY, 반오드(Van Oord), ECE(Erasmus Centre for Entrepreneurship), RPF(Rotterdam Port Fund), 라보뱅크(Rabobank), 보팍(Vopak), 유니퍼(Uniper), 이노베이션 쿼터(Innovation Quarter)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프로그램 진행 중에 스타트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PortXL과 함께 스타트업이 고객을 찾고 비즈니스를 전개해나가는 것을 돕는다. 실제 이들은 스타트업과 많은 협업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기도 한다.

portXL의 파트너사▲ PortXL의 파트너사

 

게임체인저를 찾아서

 

해운·항만 분야의 스타트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편이다. 가령 피자를 주문하기 위해 배달 어플 및 플랫폼을 찾고자 한다면 순식간에 수십 개의 업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운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아직 PortXL은 스타트업을 먼저 발굴한 뒤, 해당 스타트업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스타트업을 매칭해주고 있다. 하지만 해운 스타트업의 수가 늘어나면 지금의 액셀러레이팅 방식을 변화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항만이나 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정해두고 펀딩을 받아 기술 개발에 착수하는 식이다.

 

마래 이사는 “언젠가 PortXL이 3천 개 이상의 해운·항만 스타트업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산업과 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먼저 정한 다음 이에 적합한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해운·항만 스타트업은 이제 막 태동기이다. PortXL은 해운산업 분야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해운 시장의 발전을 이끌어나가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 PortXL은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체인저(Game Changer)를 찾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체인저의 자질을 보이는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다.

 

마래 대표는 일례로 수심(Dept of the waterway)을 측정하는 스타트업을 든다. 아직까지 로테르담을 포함한 항만청에서는 수심을 물어보는 질문에 20~30년도 더 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답변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 스타트업은 매일 달라지는 수심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가령 로테르담 강의 일반적인 수심은 40m인데, 새로 측정한 결과 값이 40.3m로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하찮아 보이는 30cm가, 어떤 회사에게는 매년 2,500만 유로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수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래 이사는 “해운 및 항만 분야는 미래에 가능성이 많은 산업이다. 더 이상 스타트업이 배달 어플을 개발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해운 산업에 관심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해운과 스타트업의 상관관계

 

“스타트업이 뭐냐? 내가 왜 스타트업을 찾으러 다녀야 하느냐?” 마래 이사가 세계 각지에서 정부 관계자와 항만 관계자를 만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4~5년 전까지만 해도 로테르담 또한 스타트업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래 이사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로테르담 항만 관계자들에게 스타트업을 왜 발전시켜야 하는지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해운 스타트업은 클라이언트를 찾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다른 산업의 대기업은 최대한 다양한 스타트업과 만나려고 하지만 해운 산업은 그 보수적인 특성 때문에 그렇지 않다.

 

PortXL은 스타트업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힘써왔다. 대표적으로 PortXL은 4년 전부터 해운 관련 기업의 CEO 30~40명을 모아 최신 기술 동향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그러자 CEO들은 “우리가 모르는 기술이 많다. 이 중에서는 분명 우리 사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마래 이사에 따르면 해운업은 매우 분절(Disconnected)돼 있다. 그는 “로테르담에서 산업 간, 각 플레이어 간 연결하려는 시도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더 빨리 실현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며 “현재 로테르담에서는 정부관계자와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심지어 다른 기업에게 소개하는 단계까지 와있다”고 설명했다.

 

PortXL뿐 아니라 로테르담항만청 역시 자체적으로 스타트업과 산업을 연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가령 로테르담항만청은 로테르담 물류 연구소(Rotterdam Logistics Lab)를 만들어 항만과 물류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디지털 기술 및 솔루션을 찾는 데 힘쓰고 있다.

 

PortXL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면 로테르담항만청은 조금 더 물질적인(Physical)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듯 로테르담에는 연구시설부터, 액셀러레이터, PortXL까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불과 3~4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고 있다. PortXL은 2년간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작년에는 12개, 올해는 현재(2017년 4월 기준)까지 11개의 스타트업과 함께 하고 있다. 작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은 모두 현재까지 살아남아 비즈니스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 중 한 스타트업은 최근 몇몇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작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12개 기업 가운데 절반은 로테르담에 남아있고, 나머지 절반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그 중 4/5 이상이 투자자를 찾았으며, 작년 3개월 동안 12개 중 5개 스타트업이 클라이언트와 실제 계약을 성사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마래 이사는 “더 많은 글로벌 기업이 해운·항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길 바라며 더 많은 스타트업이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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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엑셀러레이팅 과정에 선정된 스타트업 관계자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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