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제조업 물류, 혁신의 단초는 어디에
스마트팩토리의 성공, 스마트 로지스틱스 도입을 위한 선제조건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새로운 물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첨단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고 물류를 둘러싼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진다. 물류가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제조업 물류 쪽으로도 분다. 하지만 문제는 제조업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제조업체의 물류는 스마트폰으로 기저귀 한두 팩 주문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손으로 나르고, 액셀로 작업을 해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제조업체 물류는 주문준비 프로세스가 엄청나게 복잡하고, 대량화물이 왔다갔다 한다. 제조업체에게 물류는 실물의 가치를 완성하는 공정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다른 제조업 물류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스마트팩토리의 탄생
제조업체의 가장 큰 숙제는 아마 비용절감일 것이다. 즉 제조과정 전반에 걸친 ‘낭비’를 줄여야 한다. 사실 공장이라는 곳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낭비가 발생한다. 토요타는 과잉생산, 재고, 공정, 운반, 대기시간, 작업결함, 동작 등의 ‘7대 낭비’를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고, 기계에 센서를 부착하여 사람의 능력과 결합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이른바 ‘스마트팩토리’다.
스마트팩토리는 단순한 공장자동화와는 구분돼야 한다. 스마트팩토리는 앞서 말한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낭비 요소’를 스마트하게 제거한다. 가령 과잉생산과 재고 문제는 ‘소로트화’(로트는 생산계획단위로 보통 수량으로 나타내는데, 이 값이 작을수록 유연 생산이 가능해진다)를 통해 해결한다. 생산라인 일체를 미리 시뮬레이션해 봄으로써 공정과 운반, 대기시간에서 발생하는 낭비를 줄인다. 작업결함은 장비 간의 온라인 연결을 통해 잡아내고, 동작의 낭비는 자동화를 통해 줄인다.
물류의 낭비는 어떻게 줄이나
물류도 앞서 언급한 ‘7가지 낭비’에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인터넷을 조금만 봐도 물류 현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솔루션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솔루션은 이를 테면 다음과 같다.
1)주문 및 생산계획을 관리하는 부서와 끊임없이 온라인으로 소통함으로써 설비 및 인력의 과잉을 줄인다. 2)재고 배치를 합리화하고 작업 동선을 줄이는 것을 넘어 아예 그 작업 동선을 무선조종 차량이 이동하도록 함으로써, 재고, 공정, 운반의 낭비를 막는다. 3)정해진 도크에서 신속하게 준비과정(Staging)을 처리하기 위해 로봇을 사용한다. 4)가상현실 장비와 인공지능 카메라를 장착한 카트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작업결함(오피킹)과 동작의 낭비를 줄인다.
제조업체 물류가 가야할 길이 여기에 있다. 요컨대 지금까지 물류 현장에서 진행된 개선활동들에 첨단의 ICT기술을 접목하는 것, 즉 ‘스마트 로지스틱스’를 구축하는 것이 제조업체 물류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갈 길 먼 스마트로지스틱스
물론 스마트 로지스틱스를 구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제조업체가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생산현장에서의 낭비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스마트 로지스틱스에 투자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마트팩토리도 이제 막 시작했다. 그마저도 자사 사업장을 먼저 합리화한 뒤에야 협력사로 확산된 것이었다. 아직 스마트팩토리로 한 걸음도 못 나아간 기업이 많다. 생산현장에서도 스마트팩토리의 도입 효과를 볼까 말까한 상항에서, 기업이 스마트 로지스틱스에 투자한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은 것일까?
게다가 물류는 과거에 비해 더 ‘아웃소싱’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현재 물류 현장에서는 숙련되지 않은 인력들이 업무를 주도한다. 같은 제조업체 내의 계획부서와 물류부서 사이에도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데, 제조업체가 아웃소싱 물류업체에 주문 정보를 공유하고 미리 차량 수배 등을 챙기도록 돕는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게다가 숙련되지 않은 작업자가 초래하는 시행착오와 각종 낭비는 어차피 아웃소싱 업체에게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이러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낭비는 (분명 제거돼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미숙련자를 혹독하게 다루면 결국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따금씩 등장하는 스마트팩토리의 사례와 다르게 스마트 로지스틱스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이 이런데 플랫폼이 등장한다 한들, 누가 그 플랫폼을 이용하겠는가. 플랫폼은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자사 물류 수준을 뻔히 아는 제조업체로서는 잘 알지도 못 하는 남의 것을 믿고 일을 맡길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스마트 로지스틱스의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스마트팩토리의 성공 사례가 먼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깨달을 것이다. 공장이 스마트해지려면, 공장 앞뒤의 프로세스가 스마트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사내 물류가 스마트해지면, 그 다음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플랫폼으로 향하게 돼있다.
SMART에도 순서가 있다
슈투트가르트 응용과학기술대학의 디터 우켈만 교수(Dieter Uckelmann)가 2008년 ‘A Definition Approach to Smart Logistics’라는 글을 썼다. 아이폰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그 해에 ‘Smart’라는 말을 물류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 글에서 우켈만 교수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와 함께 컴퓨터 과학의 양대 산맥이던 마크 와이저의 말을 인용하며, 스마트라는 말 자체는 시간에 따라 바뀐다고 했다.
가령 1935년 당시 스마트하우스는 모든 방에 전깃불이 켜지는 집이었다. 하지만 1955년 스마트하우스의 개념은 방마다 TV와 전화기가 놓인 집으로 바뀌었다. 2017년의 스마트하우스는 어떨까. 아마 스마트폰으로 가스레인지와 TV를 켜고 끌 수 있으며, 에너지 소비량이 태블릿PC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집일 것이다.
우켈만 교수의 말을 잘 곱씹어 보자. 스마트해지려면 순서를 밟아 나가야 한다. 즉, 정석을 따라야 한다. 변화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제조업체 물류가 ‘정석대로’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길 바란다.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