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모빌리티'로 통합
소비자 접점의 데이터를 확보한 IT포식자가 모빌리티 시장 잡을 것
“플랫폼 관점에서 모빌리티는 꼭 ‘사람의 이동’이라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혁신은 언제나 고비용 구조의 시스템을 타파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어릴 적 뛰놀던 골목길 어딘가 있던 쌀집과 야채가게, 학교 앞 정든 친구들과 진을 치던 문방구, 아버지의 주말 핫플레이스 철물점, 어머니의 이웃사촌이던 세탁소, 쌀집, 야채과일집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골목에서 찾기 어렵거나 점점 사라지고 있는 동네 가게들입니다. 이들이 만든 시장은 이미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흡수됐거나, 모바일 시장으로 대체돼 각자의 살길을 찾고 있습니다. 2010년대 온라인 주문과 결제, 그리고 신속한 배달이 일상화된 소비환경이 지워낸 1980~1990년대 생활 풍속도인 셈입니다.
2020년을 목전에 둔 요즘 ‘모빌리티(Mobility)’라는 단어가 화두입니다. 지난 1월 폐막한 CES2018에서도 단연 으뜸인 주제는 ‘모빌리티’였습니다. 짐 해켓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운송모빌리티클라우드(Transportation Mobility Cloud)를 비롯한 새로운 공개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면서 “이 플랫폼은 자전거, 버스, 기차 등 공공 민간 운송 서비스와 개인차량을 차량 간 통신과 공유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개념”이라 밝혔습니다.
향후 포드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도미노피자, 리프트, 포스트메이츠 등의 기업들과 함께 운송수단이 필요한 사람이나 음식배달, 물류 등 이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사업영역을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전기차’, ‘자율주행차’, ‘공유자동차’를 이용해 사람과 화물의 이동이 자유로운 스마티시티(Smart City)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미래자동차 모빌리티 혁명>의 저자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플랫폼 관점에서 모빌리티는 꼭 ‘사람의 이동’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모빌리티 플랫폼 속에서는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빌리티와 결합되는 대표적인 서비스로 ‘물류’가 주목받습니다.
실례로 그 가치를 실현 중인 기업이 ‘우버(Uber)’입니다. 우버택시 기사가 생활용품 배달을 하는 서비스인 ‘코너스토어(Corner store)’가 적절한 적용 사례로 꼽힙니다. 모빌리티를 매개로 동네에서 사라지는 다양한 생활유통, 생활물류 비즈니스가 등장할 가능성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를 꺼낸 동네에서 사라지고, 잊혀지는 가게들을 부활시킬 봉합 지점은 모빌리티 서비스가 모이는 사거리가 될 공산이 높습니다. 그리고 모빌리티를 향한 도전은 물류가 아닌 IT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소비자 데이터를 폭넓게 확보할 수 있는, 소비자와 맞닿아있는 IT업체가 미래 모빌리티 패권을 움켜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물론 항간에는 일반소비자가 주요고객인 IT업체가 굳이 B2B가 중심이 되는 ‘물류시장’까지 진출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물류 자체로는 IT와 무관할 수 있으나 물류 서비스의 최종 수요는 ‘일반 소비자’임을 잊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즉, 물류에서 파생되는 데이터와 비즈니스 기회는 수요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IT업체에게도 중요하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사업의 핵심은 ‘매치 메이킹(Match making)’입니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접근성을 제공하면서, 수요와 공급을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모빌리티 역시 매치 메이킹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결되는 것이 ‘사람’이냐 ‘화물’이냐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매치 메이킹을 만드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총체적 경험’에서 비롯될 겁니다. 전자상거래는 결코 오프라인 영역을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예상이 비껴간 것처럼, 모빌리티 시대에 와서도 온라인을 맞이한 소비자의 ‘축적된 경험’이 또 다시 사업 성공의 관전 요소가 됩니다. 마치 택배 서비스의 문제가 판매회사(이커머스)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처럼, 모빌리티 서비스는 소비자 경험을 결정하는 요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혁신은 언제나 고비용 구조의 시스템을 타파하는 곳에서부터 먼저 시작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단가, 저임금 구조의 현재 물류업계에게 ‘모빌리티’는 먼 훗날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모빌리티가 당장 물류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에서 파괴적 격차를 만들 것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 ‘인간-석유차 시스템’의 가격 경쟁력으로 ‘무인-전기차 시스템’을 상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때가 되면, 물류업체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모빌리티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하게 될 겁니다. 이와 함께 택배 등 화물운송요금은 현재의 택시의 기본요금처럼 ‘규격화’된 시장을 벗어나, 동적가격조정(요금이 일정하지 않는 가격체계)으로 결정될 공산이 큽니다. 이는 곧, 과거 공급자 중심으로 결정되던 이동 시스템이 물류 서비스의 최종 수요자인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물과 여객의 경계가 사라지는 ‘모빌리티’ 시대가 이미 와 있습니다. 서비스를 공급하는 체계도, 이에 대한 가격을 지불하는 방식도, 나아가 기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조차도 또 다른 포식자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