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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보관함을 '플랫폼'으로 바라본다면

by 엄지용 기자

2018년 03월 04일

서울교통공사, 공항철도, 스마트박스 한데 뭉쳐... 지하철 물류 4월 시동

무인보관함의 한계 '확장성'과 '개방성', NB IoT 기반 플랫폼으로 확장

무인매장의 영역까지, '보관'을 넘는 새로운 관점

 

글. 엄지용 기자

 

Idea in Brief

택배의 새로운 거점으로 무인보관함이 주목받은 지는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났다. 아마존의 ‘아마존락커’, 라쿠텐의 ‘라쿠텐박스’,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박스’ 등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국내외 활용사례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뜬다는 무인보관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인보관함을 공급하는 사업자들은 서로 힘들어서 안달인 모습이다. 왜일까. 관점을 조금 틀어서 생각해본다면 뜬다는 무인보관함이 왜 뜨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빠르게 늘고 있는 해외 입출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민 해외여행객은 약 2,409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2%가 늘었다. 같은 기간 방한 외래관광객은 약 1,220만 명으로 한국에서 입출국한 관광객 숫자의 합은 약 3,629만 명이다. 그래서 이 시장의 물류를 공략하는 스타트업들이 나타났다. 여행객들의 두 손을 가볍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수하물 운송 및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참고1 : 짐캐리가 만드는 '핸즈프리' 부산여행] [참고2 : 베이팩스, 여행을 물류로 보다]

방한 외래관광객 수의 하락은 사드여파 등으로 인한 방한 중국관광객 감소로 나타난 결과다. 방한 중국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49.1% 줄었으며, 그 숫자는 약 369만 5,000명이다.

 

여기까지는 새로울 것이 없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다가오는 4월 이 수하물 운송 서비스를 대중교통(지하철)의 유휴 인프라를 활용하여 제공하는 첫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인천공항철도를 운영하는 ‘공항철도’, 그리고 무인보관함 업체 ‘스마트박스’가 뭉쳤다. 지하철과 공항철도의 대중교통망이 활용되며, 보관 및 중계거점에는 사람이 아닌 ‘무인보관함’이 비치된다. 지금껏 나타났던 수하물운송 스타트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비스의 연결에 ‘지하철’ 인프라 사업자가 직접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하여 공유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며, 사람이 맡아 보관하던 보관거점에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공유’와 ‘무인’이 키워드다.

 

구체적인 서비스 구상(가안)은 이렇다. 무인보관함 업체는 ‘스마트토스’라고 명명한 설비를 서울권역 제휴호텔에 설치한다. 수하물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은 스마트토스를 통해 수하물정보 코드가 기입된 ‘태그’와 ‘영수증’을 출력한다. 영수증은 본인이 보관하면 되고, 태그는 캐리어(짐가방)에 부착하면 된다. 고객 입장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출국시간까지 두 손 가벼운 여행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 있는 특정장소에서 짐을 찾고 출국하면 끝이다.

스마트토스 기기와 기기에 부착된 사용법

 

고객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은 이렇다. 태그를 부착한 캐리어는 호텔에 잠시 보관돼 있다가, 스마트박스 직원이 인근 지하철역의 무인보관함으로 이동시켜 보관한다. 무인보관함에 보관된 화물은 서울교통공사의 환경담당직원이 수거해 서울역에 있는 무인보관함까지 ‘지하철’을 활용해 배송한다. 이제 서울역부터 인천공항까지의 운송은 공항철도가 맡는다. 공항철도가 운영하고 있는 수하물운송 서비스 ‘세이펙스(SAFEX)’를 통해 인천공항의 특정장소로 전달되며, 그곳에 있는 무인보관함에 고객의 수하물은 보관된다. 그렇게 보관된 수하물을 고객이 찾아가면 모든 물류 프로세스가 종결된다.

공항철도가 운영하는 수하물운송·보관 서비스 ‘세이펙스’(자료: 공항철도)

 

이 과정에서 ‘무인보관함’은 세 개의 협업 파트너를 연결하는 허브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인보관함이 아니다. 이 전체 물류 프로세스에서 흐르는 모든 정보를 원활하게 연결시키는 ‘시스템’이다. 고객이 과금한 ‘돈’의 흐름, 고객의 수하물을 별다른 직원의 도움 없이 찾을 수 있게 하는 ‘정보’의 흐름, 화물의 위치를 면밀히 파악하게 하고 이동시키는 ‘물자’의 흐름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동된다.

 

엄성환 스마트박스 이사는 “스마트박스 입장에서는 지하철에 이미 설치한 무인보관함의 공실율을 줄이면서 물류서비스를 위한 거점으로 동시 활용이 가능하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 수하물 운송과 다른 ‘비대면’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큰 강점을 가질 것”이라 말했다. 그는 또한 “동일한 서비스를 스마트박스의 일본 파트너사인 NEC(일본전기)와 거의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라며 “나리타공항에 무인보관함을 깔고, NEC와 연계된 호텔사업자 사이의 수하물 운송을 중개하는 방식”이라 밝혔다.

스마트박스의 무인보관함. 서울 지하철에 약 4,000여개가 설치돼 있으며, 이 외에도 일부 주거단지, 대학교에도 비치돼있다.

 

레퍼런스를 만들기까지

 

무인보관함 업체 ‘스마트박스’와 제휴하고 있는 사업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서울교통공사, 공항철도, NEC는 모두 국가 단위의 ‘인프라’를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신생기업 스마트박스가 이런 대형 사업자들과 관계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서울지하철 5, 6, 7, 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메트로와 합병 이후 서울교통공사)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스마트박스에게 가장 큰 숙제는 ‘레퍼런스’였다. 스마트박스의 기술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럼 레퍼런스는 있느냐고 묻는 수많은 질문에 봉착했다. 고민중 스마트박스가 초기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전략적으로 배팅한 곳은 ‘국제회의’였다. 2014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행사장에는 1,500개의 스마트박스 무인보관함이 설치됐고, 몇몇 언론을 통해서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개념의 무인보관함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나예룡 스마트박스 대표에 따르면 이 뉴스를 김태호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현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봤고, 그것이 계기가 돼 스마트박스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던 서울지하철 5, 6, 7, 8호선에 무인보관함을 공급하는 사업자가 될 수 있었다. 공공 인프라를 운영하는 회사와의 레퍼런스는 레퍼런스의 허들을 상당 부분 무너뜨렸다는 것이 스마트박스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했던 NEC와의 제휴를 통한 해외진출도 그렇게 만들어진 성과고, 스마트박스도 이를 공공기관과 벤처의 상생모델이 선순환 구조로 발전한 사례로 자체평가하고 있다.

 

나 대표는 “대기업이 IoT와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면 공신력이 있기에 별 문제 없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신생벤처는 다르다. 기술 좋은 건 알겠는데 레퍼런스를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따라 온다”며 “이 레퍼런스가 또 ‘동네빌라’에 무인보관함을 설치했다거나 하는 작은 레퍼런스면 안 된다. 큰 기관의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고, 스마트박스도 초반에는 레퍼런스 문제로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우체통'처럼 늘어나는 무인보관함

 

스마트박스가 강조하는 기술력은 ‘사물인터넷’에서 나온다. 기존 키오스크 방식을 사용하는 여타 무인보관함 업체와 차별되는 경쟁력은 거기에서 나온다는 게 스마트박스의 설명이다. 스마트박스에 따르면 키오스크 방식과 사물인터넷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확장성’이다. 전체 유선설치가 필요한 키오스크 방식과는 달리 중계기 하나만 설치하면 도어와 무선 통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에 보다 유연한 설치와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무인보관함에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고, 휴대전화로 결제를 진행하여 물건을 맡기고, 개인 휴대전화로 전송된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보관한 상품을 찾으면 된다.

스마트박스 무인보관함에 부착된 사용법

 

물론 스마트박스의 사물인터넷 방식도 중계기를 유선 연결해야 되기에 완전한 무선 환경을 구축한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존재했다. 중계기를 유선 연결하기 위해선 그를 위한 전원 설비가 필요했고, 이것이 무인보관함의 폭발적 설치, 확장에 있어서는 한계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스마트박스는 이 방식을 반 쪽(Half) IoT라 명명한다.

스마트박스 무인보관함에 부착된 중계기. NB IoT 도입으로 이 중계기는 이제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스마트박스는 이 문제를 ‘협대역 사물인터넷(NB IoT)’으로 풀었다. 스마트박스는 2월부터 KT의 NB IoT 시범도입을 통해 전원을 연결하는 코드 하나 없이 독립적으로 통신할 수 있는 무인보관함 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설치된 무인보관함의 모듈 또한 전면 NB IoT 방식으로 교체된다. 이제 마치 ‘우체통’처럼 스마트박스가 원하는 모든 공간에 무인보관함 망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박스는 이를 진정한(True) IoT라 부른다.

 

나 대표는 “그간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인보관함 서비스가 빠르게 확장하지 못한 이유는 키오스크 방식의 확장성의 한계와 다른 이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폐쇄성 때문이었다”며 “키오스크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한 고객만을 위해 구축해주는 방식이라면, 사물인터넷 방식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 생태계로 필요한 고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또한 “스마트박스는 개방형 플랫폼을 추구하며, 니즈가 있는 모든 고객은 우리의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다”며 “현재 진행되거나 논의되고 있는 커머스 택배보관, 수하물 배송 서비스뿐만 아니라 O2O, 라스트마일 배송업체들 역시 필요하다면 스마트박스의 인프라를 공유하여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관’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

 

스마트박스가 NB IoT 기술 기반 인프라 확장의 전초로 여기는 것은 ‘공중전화 부스’다. 전국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는 모바일 생태계의 확산으로 고대의 유물처럼 남았지만, 그것이 설치될 당시 대중 접점에 위치시킨 입지와 부동산(토지)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는 것이 스마트박스의 설명이다. 공중전화를 설치, 관리하는 사업자인 KT링커스 입장에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 부스의 ‘입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마트박스는 그런 공간에 무인보관함을 결합시킨다면 택배수발함 등 ‘생활물류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봤으며, 그렇게 KT링커스와 관련 제휴를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NB IoT는 스마트박스의 새로운 비즈니스인 ‘스마트코이너’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보관함에 카카오페이, SSG페이 등 ‘결제(Payment)’ 기술을 연동시킨 솔루션이며 이것은 기존 동전이나 지폐식 자동판매기, 코인세탁기 등에 설치돼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 전망이다. 당장 스마트박스는 지난 1월부터 이 기술을 연동시킨 가챠(캡슐자판기, 속칭 ‘뽑기’), 코인세탁소, 위생용품 자판기를 제휴업체 및 기관과 함께 확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 ‘동전’이나 ‘지폐’를 넣어서만 결제 가능했던 자판기를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스마트코이너를 적용한 가챠와 여성 위생용품 자판기. 위생용품 자판기는 현재 스마트박스 사내 화장실에 실제 설치돼있다.

 

엄 이사는 “캡슐자판기(가챠)와 같은 경우 기존 동전 두 개 정도가 들어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소액상품밖에 팔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며 “스마트코이너를 통해 고가의 상품도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전망”이라 밝혔다. 그는 또한 “소진되지 않아 골치 아팠던 공공기관이나 쇼핑몰의 ‘포인트’로 자판기 음료수를 사고, 세탁소를 이용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도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스마트박스는 NB IoT를 통해 무인보관함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궁극적으로 ‘공유물류’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공항과 호텔을 오가는 방식으로 제공될 예정인 ‘수하물 배송’ 서비스는 네트워크가 더욱 늘어난다면 누군가의 택배수발거점, 누군가의 배송거점, 누군가의 소분거점, 반품거점으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일반인’이 배송직원이 돼 각 지역 네트워크에 보관된 화물을 처리하는 공유물류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나 대표는 “온라인쇼핑몰과 같은 곳은 당연히 스마트박스와 협업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외에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생활거점에서 편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플랫폼 업체와 향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가령 메신저나 인공지능스피커로 상품을 구매하고 맘에 안 들면 스마트박스로 반품접수를 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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