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직결되는 의약품, 식료품보다 포장 기준 훨씬 까다로워
일회용에서 재사용으로, 구매에서 렌탈로…어떻게 포장비용 줄일 것인가
전체 콜드체인 위해 필요한 것은 ‘전문성’과 ‘협업’
포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커머스 신선식품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온도조절포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본지도 지난 8월호에 신선식품 배송 3사의 포장을 비교한 바 있다.([실험] ‘포장의 미학’, 신선식품 새벽배송 3사 비교) 많은 업체가 스티로폼(EPS)과 드라이아이스의 대체재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료품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식료품보다 더 절실하게 온도조절포장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바로 의약품이다. 의약품의 적정 온도 유지는 그야말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의약품 업계에서 콜드체인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의약품 콜드체인은 식료품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물류비 절감을 외치는 의약품 유통업계가 고도의 포장기술을 도입하는 데서 상충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임재홍 펠리컨바이오써멀(Pelican BioThermal) 동북아지역 대표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임재홍 펠리컨바이오써멀(Pelican BioThermal) 동북아지역 대표
Q1. 펠리컨바이오써멀은 어떤 회사인가.
A1. 우선 펠리컨(Pelican)이라는 회사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펠리컨은 주로 산업용(Industrial) 케이스를 제작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카메라 케이스 같은 하드패키징을 많이 만든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바이오패키징(Bio-packaging)과 온도조절포장솔루션(Temperature Controlled Packaging Solution, 이하 TCP)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현재는 전 세계에서 상품 가짓수가 가장 많은 TCP 제작 업체로 도약했다.
펠리컨바이오써멀은 TCP 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펠리컨의 비즈니스 분야로서, 바이오파마(Biopharma: 생물의약품), 백신, 인슐린, 혈액 등의 온도를 48~168시간 동안 유지해주는 패키징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TCP와 관련된 컨설팅과 검증보고서(Qualification Report) 작성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자사의 주요 고객사인 대형 글로벌 제약사에게 자산 관리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여기에는 제품이 언제 출하되어, 언제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트래킹 기능도 포함돼 있다.
Q2. 의약품 콜드체인 시장 현황이 궁금하다.
A2. 의약품 콜드체인은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짜 의약품 문제가 심각하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친환경 패키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즉 의약품 시장에서 GDP(Good Distribution Practice)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약품의 운송과 보관 전반에 관한 R&D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의약품 콜드체인 시장의 성장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Generic Medicine)이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의약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국민에게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거대 제약회사가 만드는 오리지널 의약품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그리고 특허(Patent)가 그 가격을 보호한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2015년부터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만료시키고, 바이오시밀러를 만들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후 인도와 이스라엘, 한국 등의 국가에서 기술력만 있으면 진품은 아니더라도 약효는 거의 동일한 복제약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바이오시밀러의 보관 및 운송에는 99% 콜드체인이 필요하다. 즉 TCP가 필요하다. 바이오시밀러와 의약품 콜드체인 시장 성장의 상관관계가 이러하다.
Q3. 현재 국내 온도조절포장은 식료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약품의 패키징은 식료품과 어떻게 다른가?
A3. 국내에서도 신선식품의 포장과 배송이 이슈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식료품의 경우 주로 0~10도 사이의 온도를 24~48시간만 유지하면 된다. 또한 고객에게 상품이 도달하면 포장은 대개 버려진다. 그러니 물류 관점에서 봤을 때 식료품 포장은 비용일 뿐, 투자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의약품은 식료품보다 훨씬 엄격하고 보수적인 규제(Regulation)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 의약품의 온도 유지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엔드유저(환자)에게 의약품이 도달할 때까지 패키징과 보관(Storage)에 관한 관리 및 감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가령 전 세계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회사가 있다고 해보자. TCP만 가지고는 전 세계로 제품을 공급할 수 없다. 의약품을 보관할 특수 컨테이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컨테이너는 몇몇 글로벌 회사가 공급을 독점하고 있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의약업계에서는 쓸 수밖에 없다.
컨테이너 규모가 아니라 비교적 작은 파슬(Parcel) 사이즈로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사이즈가 작다고 해서 식료품처럼 스티로폼 박스에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어 의약품을 수송할 수는 없다. 드라이아이스는 불안전한 위험물이다. 또 항공기에 실릴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대체재로 개발된 기술이 PCM(Phase Change Material)이다. 그런데 문제는 PCM이 드라이아이스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PCM는 의약품 업계에서만 특수하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Q4. 의약품 유통 분야에서 콜드체인 이슈와 함께 유통비 절감의 이슈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콜드체인 역량 강화와 유통비 절감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A4.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의약품 콜드체인은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에서 콜드체인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최근 의약업계의 트렌드중 하나는 일회용(Single Use) 패키징보다 재사용가능(Reusable) 패키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재사용가능 제품이 일회용 제품보다 비싸다. 그런데도 왜 재사용가능 제품을 쓰는 걸까. 일회용 제품은 한두 번 쓰고 버려야 한다. 그런데 재사용가능 제품은 말 그대로 어려 번 쓸 수 있으니 총소유비용(Total Cost of Ownership) 관점에서는 이득이다.
의약업계의 중요한 트렌드가 또 하나 있다. 과거 패키징을 ‘구매’하던 것에서 최근에는 ‘대여(Rental)’하는 것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패키징을 구매하면 자산이 된다. 자산은 곧 비용이다. 유지·관리비용 뿐 아니라 보관비용도 든다. 그러니 구매하는 대신 대여하는 거다. 이러한 트렌드는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면서 콜드체인을 강화하려는 업계의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Q5. 전체 콜드체인 중 패키징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국내 현실을 보면 포장된 제품이 창고에 보관되고 운송되는 과정에서 콜드체인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까?
A5. 전문성과 분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패키징 단독으로는 제품을 엔드유저에게까지 전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류업체도 패키징이 없으면 엔드유저에게까지 갈 수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이 선택과 집중이다.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왜 페덱스(FedEx)와 UPS가 패키징을 직접 안 할까. 그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물류를 하는 거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하는 거다. 이렇게 국제적 분업이 일어난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인 동시에 당연한 현상이다.
즉,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물류도 그렇다. 식료품을 취급한다면 식료품에만, 의약품을 취급한다면 의약품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콜드체인을 구성하는 각각의 단계에서 전문성을 쌓고 분업과 협업을 통해 전체 콜드체인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내에서도 의약품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콜드체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일을 혼자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패키징은 전문 패키징 회사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물류도 식료품 중심인지 의약품 중심인지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니치마켓(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그래야만 산업이 전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