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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와 풀필먼트로 보는 혁신 방법론

by 김철민 편집장

2017년 09월 21일

혁신, 카카오뱅크

 

신카이 마카토 감독의 영화 <너의 이름은>에는 “타키, 타키, 타키…”라며 주인공의 이름을 연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몸이 뒤바뀐 시골소녀 미츠하와 도시소년 타키, 영화는 두 사람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혼란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두 청춘의 애틋한 러브라인도 중요하지만요.

 

서로의 몸이 바뀐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한 단어에서 의미와 문자가 분리되는 현상을 ‘게슈탈트 붕괴’라 합니다. 게슈탈트 붕괴란 이름에 집중하다가 그 대상에 대한 기억이나 개념을 잊어버리는 것으로, ‘의미 과포화’라 풀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이 휙휙 바뀌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게슈탈트 붕괴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고, 빠른 변화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치매’입니다. 전통적인 은행산업에 강력하게 한 방 먹인 카카오뱅크가 좋은 예일 겁니다. 오랜 기간 은행은 정부의 규제와 보호 속에서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은행의 대(對)고객 서비스는 대동소이했고, 따라서 고객도 어떤 은행을 선택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그런데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은행산업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광고의 내용처럼 “그게 진짜 가능해?”, “공인인증서 필요없어”, “상대방 계좌번호 몰라도 돼” 등등 말입니다. 사용자경험 측면에서 혁신을 이루려는 카카오뱅크의 멋진 도전은 기존 은행에게 기존의 틀, 기존의 정의를 벗어던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9월호에서 다룬 풀필먼트(Fulfillment)도 그렇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문이 발생하면 직원이 상품을 계산하고 종이가방에 넣어줍니다. 그런데 전자상거래는 주문이 발생하면 창고에 입고된 상품을 꺼내고 포장해서 고객까지 배송해야 합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주문을 처리하는 일련의 ‘주문처리’ 과정을 바로 풀필먼트의 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 물류시장에서 풀필먼트 서비스를 놓고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풀필먼트 서비스 업체인 곳이 풀필먼트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부정하고, 풀필먼트와 거리가 먼 업체는 오히려 스스로 풀필먼트 사업자라고 주장합니다. 풀필먼트로 ‘글로벌’을 공략하기 시작한 크로스보더 물류업체 ‘디맨드쉽’, 갑작스레 셀러들을 위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하는 블로그마켓 마켓플레이스 ‘브랜디’가 대표적인 업체일 겁니다.

 

“풀필먼트? 요새 다들 마케팅 슬로건처럼 외치는데, 사실 그거 예전에도 있었던 거야”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심지어 풀필먼트이라는 용어가 ‘빅데이터’처럼 마케팅 슬로건처럼 오남용된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국내 물류시장에 문자와 의미가 분리되는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찾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8월엔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물류센터며 화물차가 정말 깨끗하고 관리가 잘 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창고는 얼마만큼의 창고 보관료를 받으며 단가 경쟁을 벌이는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게 창고에 대한 우리의 정의나 다름없죠. 반면 일본은 물류센터를 공급망의 전반적인 기능과 여타 산업을 지원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 인프라’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의 정의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카카오뱅크와 일본 물류센터의 사례에서 보듯, 정의에 얽매이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9월호에 실린 송상화 교수의 글처럼, 린 스타트업이든 디자인 사고든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할 때이죠.

 

이번 주 토요일(9월 23일) 본지 주최로 열리는 CLO캠퍼스의 두 번째 프로젝트 <청년물류캠프>는 물류를 책으로 배운 학생들과 현장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러니까 학생들이 물류 현장에 들어왔을 때 느낄 수 있는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새 시대를 준비하는 물류 꿈나무들끼리 다양한 방법론이 오고가길 바랍니다.



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김철민의 SCL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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