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무는 고용구조와 치열한 시장경쟁, 불법파견이 만드는 지옥도
직접고용 전환이 정답일까 …인력수급과 기업가치 하락 우려 목소리도
글. 임예리 기자
1월 19일,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택배·물류업종 사업장 250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구 현대택배), KG로지스, 로젠택배, KGB 택배, 우체국택배 등을 포함한 대형 택배사의 물류센터 250개소 가운데 202개소에서 불법파견, 최저임금법 위반, 주휴수당 미지급 등 총 588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됐다.
▲ 고용노동부, 택배·물류업체 250개소 근로감독 결과 발표(1월 19일)
그곳은 어떻게 지옥이 되었나
즉 거의 모든 택배사가 추가수당 미지급과 불법파견 등의 문제를 지적받은 것이다. 한두 업체도 아니고 거의 모든 대형 택배사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택배업계의 고용 구조와 시장 환경을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택배사는 상하차 작업을 포함해 터미널 운영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도급사와 연 단위의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 금액은 보통 물량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즉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는 택배사가 아닌 도급업체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택배터미널 조업은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도급업체도 육체노동 위주의 조업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도급업체는 인력만 따로 모집해주는 업체에게 2차 하청을 주어 인력을 공급받는다. 이처럼 중간에 끼인 인력공급업체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줄어든다. 즉, 도급과 하청으로 복잡하게 꼬인 택배업계의 고용구조가 택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을 낮추는 것이다.
최근 경쟁이 심화된 택배시장 환경 역시 문제다. 택배업은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장치사업’이다. 인프라 확충을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란 이야기다. 그런데 인프라 확충을 위한 인건비나 운송비는 물가상승률이 증가함에 따라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는 택배업체들에게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근로자의 작업환경과 임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한편 택배시장에서 격화된 경쟁으로 택배단가는 낮아졌다. 2010년 2,500원 정도에 형성됐던 택배단가는 2016년 2,0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A택배업체 운영담당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 구매 물량이 늘어났지만, 택배단가가 낮아 물량이 늘어도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며 “많은 택배사가 난립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과점 형태로 재편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가격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택배사와 도급사 사이의 도급단가 역시 조금씩 낮아지는 분위기다. 도급 단가가 낮아지면 도급사는 투입 인력을 줄이거나,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는 별개로 택배사는 화주와 계약한 택배물량을 계약대로 처리해야만 한다. 결국 더 적은 사람이,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터미널 조업의 노동강도는 자연스레 올라가고, 법적으로 일정시간 이상 이수해야 하는 산업안전교육이나 의무 휴식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 조성된다.
지옥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근로자, 특히 일용직 근로자에게 택배터미널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노동 강도는 ‘막노동’만큼이나 힘들지만, 받는 돈은 대개 그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인력공급업체 관계자는 “일당으로 따지면, 공사장에서 하는 막노동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것보다 2~3만 원 정도 더 받는다”며 “일용직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물류센터가 막노동을 쉬는 날이나 일을 구하지 못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불법파견, 지옥불에 기름을 붓다
한편 추가수당 외에 문제로 지적된 것 중 하나가 불법파견(위장도급)이다. 고용부는 1월 근로감독에서 우체국택배와 KGB택배를 제외한 5개 택배사의 도급계약을 사실상 불법파견으로 규정했다. 불법파견이란,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상은 근로자 파견을 행한 것을 말한다. 현행법에서는 32개의 업무에서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적법한 사내 하도급을 판단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기준이 있다. 도급업체가 자사의 전문성, 기술성을 가지고 자본을 투자한 실질적인 사업체여야하고, 원청이 도급업체로부터 하루 단위로 보고를 받거나 직접 근로자에게 교육을 하는 등 업무수행 과정에서 관여를 하지 않아야 하며, 도급업체가 계약의 적격한 대상자로서 업무내용에 대한 기술성과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현행법상 택배터미널의 주요 업무인 분류 및 상하차 작업은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택배사는 하청업체(도급업체)와 물류센터 업무를 위탁하는 도급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1차 하청업체가 물류 상·하차 업무를 다시 2차 하청업체에 재위탁하는 과정에서 2차 하청업체는 상·하차 업무인력을 단순 모집만 한 후 현장 관리인 없이 물류센터에 공급하고, 1차 하청업체가 이들을 직접 지휘·감독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즉, 1차 하청업체와 2차 하청업체 사이에 ‘불법파견’이 일어났다.
▲ 고용노동부
이한노동법률사무소 이홍철 노무사는 이제껏 불법파견 문제는 제조업에서 주로 발생하는 문제였다고 전했다. 국내법상 제조업에서도 도급계약은 허용되지만 파견은 불허하고 있어 더욱 자주 논란이 일었다. 가령 올해 1월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 근로자의 작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사내 하청업체에 독자적인 결정 권한이 없었다고 판단,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근로자 159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 파견이 성립됨을 인정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불법파견이 적발되면 사용자는 직접고용의 의무가 생긴다. 고용노동부로부터 사업장에서 불법파견이 일어난 사실을 지적 받은 택배업체는 고용부에 고용구조개선계획을 제출했다. 고용부는 이를 토대로 도급업체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고용부는 직접고용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원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고용차별개선과 김재봉 사무관은 “우체국택배를 제외한 6개의 업체가 제출한 고용구조개선계획을 보면 총 6,000명 정도의 근로자를 직접고용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며 “6월 말까지 50%, 올해 말까지 100% 직접고용을 목표로 삼고, 시행규칙을 담당한 각 지자체와 협력해 택배사에 지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이슈가 기업가치 떨어뜨리나
고용부와 택배업계 모두 택배 터미널 근로환경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도급계약의 양 주체인 택배사와 도급사 중 원청인 택배사의 역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전제조건으로 원청이 도급업체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이다. 원청은 일의 결과에만 관여할 뿐, 도급사의 업무 수행 과정에 대해 일일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즉 실질적인 업무 수행 과정이 도급계약에 의한 것이라면, 원칙적으로 택배사는 하청과 2차 하청업체 사이의 불법파견에 대해 관리·감독할 의무와 책임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택배사에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까지 묻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노무사는 “택배사의 1차 하청업체는 원청과 연 단위의 계약을 맺으며, 계약업체가 바뀌기도 하는데 이러한 정황으로 봤을 때 이들 하청업체는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보다 사업체의 실질성이 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한 현재까지 택배사와 1차 하청업체가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므로 직접고용의 의무는 택배사가 아닌 1차 하청업체, 즉 도급사에게 있다”고 전했다.
인력수급이 어려운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도급업체가 터미널 조업에 직접 인력을 조달하는 비율은 전체의 약 30%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나머지 70%의 인력은 2차 하청업체를 통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형태로 공급받는다. 그런데 도급업체가 한 번에 근무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한다면 도급업체는 당장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이는 도급업체는 물론 택배사에게도 커다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택배사가 근로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함에 따라 산재보험, 고용보험 이외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을 지금보다 더 부담하게 된다면, 택배사가 기존 인건비 지출 대비 약 25% 정도, 액수로는 연간 60~80억 원의 비용을 추가 지불해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모든 근로자에게 최저시급과, 주휴수당 등의 각종 부가수당, 4대 보험, 법정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그러나 대형 택배사의 영업이익 평균이 연 100억 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60~80억 원은 분명 커다란 출혈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을’의 입장인 택배사가 ‘갑’인 화주에게 택배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노동이슈에 대한 비용 부담이 현재시점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령 근로자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한 기업은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통상임금, 4대 보험, 퇴직 급여 등은 현금으로 지출될 가능성이 높아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즉 노동문제 자체가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지만, 미래에 돈이 나갈 가능성이 매각가액에 포함되어 기업 가치 하락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설립된 미국 홈클리닝 서비스 스타트업 홈조이(Homejoy)는 고객과 청소인력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약 4,000만 달러의 투자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나 홈조이를 상대로 파견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 등의 계약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소송이 벌어진 뒤, 정규직 전환에 따르는 비용 증가와 수익성 하락에 대한 우려로 추가 투자 확보에 실패한 홈조이는 결국 4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홈조이의 높은 수수료와 서비스 품질 관리 실패가 폐업의 요인으로 지목됐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은 노동이슈가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끼친 사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택배업체는 대개 개인사업자의 연합체 모델을 활용하는데, 파견법 이슈로 인해 기존 근로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많아져 회사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미지급금 지급을 모두 완료하고, 안전교육 미실시 등 일반적인 근로조건 위반 사항 역시 거의 시정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택배사들도, 직접고용에 대해서만큼은 개선 속도와 강도에 있어 고용부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택배사는 직접고용 비율을 순차적으로 늘리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인력을 100%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업의 비용 부담 증가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일부 근로자는 직접고용으로의 전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가 자사 터미널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중 40%는 직접고용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신용불량자 신분인 근로자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면 소득신고 의무가 생겨 생활에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나마 일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된다”며 “택배업계에는 이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무조건적으로 직접고용이 강행되면 그들의 생계뿐 아니라 택배사 인력수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사무관은 “도급업체와 만나 직접고용 진행에 대한 애로사항을 듣는 중에 인력의 30% 정도가 신용불량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그럼에도 근로자의 기본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직접고용 추진에 찬성하는 뜻을 내비쳤다.
상생, 천국으로 이르는 길
어지럽게 얽힌 택배업계의 고용 구조와 격화된 시장 경쟁이 만들어낸 지옥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며, 택배사와 근로자를 모두 힘들게 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택배사는 인력 투입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자동화 시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A택배업체 운영담당 관계자는 “자사는 상품이 집하되고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 네 곳의 터미널을 거치는데, 향후 허브터미널 개수를 줄여 경유 단계를 간소화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B택배업체 운영담당 임원은 “상·하차는 업무 특성상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분류나 스캔 업무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에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물류센터의 모든 작업이 자동화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결국 그곳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고용부는 고용구조 개선과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대기업 원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강도 높은 관리감독을 예고한 바 있다. 고용부는 택배사가 자체 수립한 고용구조개선계획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근로감독을 시행할 예정이다. 김 사무관은 “대형 택배사의 물류센터와 사업장을 합하면 전국에 약 700개 정도가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난번에 근로감독을 미처 실시하지 못한 사업장 역시 감독 대상이며, 개선이 보이지 않는 사업장은 형사처벌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홍철 노무사 역시 원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노무사는 “탄력적 시간 근무제 등을 통해 근무체계를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지원금 등을 활용해 장기근속이 가능한 업무 환경,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재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는 택배업계가 시장 존속을 위해 필요한 ‘장기근속 근로자’를 확보할 수 없고, 이는 곧 택배시장의 인력수급 상황을 나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노무사는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택배 단가가 하락하면서 대기업의 수익률이 떨어졌다지만, 사실 가장 큰 압박을 느끼는 것은 맨 아래에 있는 근로자들”이라며 “택배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계속 성장할 산업이다. 원청은 장기적 관점에서 하청과 상생의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이 그 기반을 다질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