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노동문제를 둘러싼 근로자, 고용부, 택배사의 입장
택배사: 대안없는 제재 감행. 산업 활성화와 함께 제도 정립 이뤄져야
정부: 택배산업 법적인 재정비 필요해
Idea in Brief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택배·물류업종의 사업장 250개소에 대해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해서 화제다. 해당 감독결과에 따르면 국내 택배업계 물류센터의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노동관계법 위반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물류센터 근무자들의 노동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었지만, 이번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인해 해당 문제는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불합리를 표현하지 못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 이러한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정부, 정부의 근로감독이 달갑지만 않은 택배사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사정을 갖고 있기에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가 지난달 19일 택배·물 류업종 사업장 250개소(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 로벌로지스, 우체국택배, 로젠, KGB택배, KG로지스 등 7개 대형택배회사 물류센터 및 하청: 218개 소, 기타 중소 택배회사 물류센터: 32개소)에 대해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 터 12월까지 진행한 동조사에 따르면 250개소 중 202개소에서 총 558건의 노동관계법(근로기준법, 파견법 등) 위반이 적발됐다.
사실 물류센터 근무자들의 노동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높은 근무강도와 강제 연장 근무, 임금 미지급 등이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현실이다. 이번 고용부의 물류센터 근로감독 결과는 기존 존재했던 물류센터 노동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택배업계는 해당 발표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 서 일하고 있다는 것에는 택배업계 또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택배산업을 포괄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정부가 기업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대안 없는 제재’를 감행한다는 의견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불합리를 표현하지 못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 이러한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정부, 정부의 근로감독이 달갑지만 않은 택배사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사정을 갖고 있기에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노동자의 이야기 : 돈이라도 잘 줬으면
“열악하디 열악하다” 기자가 취재중 만난 이순일 (가명)씨가 8년간 3개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 을 한 마디로 축약한 말이다.
이씨에 따르면 물류센터는 ‘근무 환경’, ‘임금’ 모든 측면에서 열악하다. 이씨가 근무했던 물류센터는 모두 냉난방 설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으며,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기에 출퇴근 역시 불편했다. 이씨에 따르면 대중교통을 통해 일정 장소까지 이동하면 회사 차량을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물류센터에 도착한다. 대부분이 도심과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아르바이트 정보공유 사이트 안에서 ‘물류센터 알바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왕왕 나오는 이유다.
임금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택배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지영(가명)씨는 일당을 받지 못했다. 1주일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하루만 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노동법상 이런 경우 사측은 김씨의 하루분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김씨에 따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김씨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숫자도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용부가 발표한 택배 업체 물류센터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적발된 노동관계법 위반내용 중 서면근로계약 미체결(131 건) 다음으로 임금체불(117건)이 가장 많았다.
복수 택배 물류센터 근로자에 따르면 ‘서면근로계약 미체결’ 문제 이상으로 ‘임금체불’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물류센터 근로자 입장에서 4대 보험비를 부담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오랫동안 근속한 근로자들 중에서도 당일 임금을 현찰로 받아야만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 또한 있다.
이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자신 이름으로 급여를 받거나 근거 자료가 남지 않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신용불량자인 그들 입장에서는 급여에 대한 자료가 남아버리면 그것마저 압류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사실 근로자 입장에서 계약서 작성보 다 중요한 것은 ‘야근 수당’, ‘일당’만이라도 잘 챙겨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물류센터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근로환경개선 방안 및 정부측 답변내용(자료=국민신문고, 150402)
정부의 이야기: 법은 법이다
고용부는 지난 수년간 택배업체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민원을 받아왔다. 고용부는 날로 쌓이는 민원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인 실사를 검토했다는 설명이다. 고용부 조사 결과 물류센터 근로자 문제는 이전부터 전국 시군구 지자체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었다. 때문에 고용부는 각 지역 단위 조사가 아닌 전국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약 3개월간 국내 대형 택배업체의 물류센터 감사를 시작한 이유다.
고용부 조사결과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긴 근무시간’과 ‘짧은 휴식시간’, 그리고 ‘산업안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법에 따르면 물류센터 근로자들은 8시간 근무 기준 의무적으로 1시간의 휴식시간을 지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용부의 현장조사 결과 물류센터 근로자들은 별도 휴게시간 없이 11~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에 따르면 택배업체측은 현재 근무자들의 식사 및 간식 시간, 그리고 화장실·흡연 등으로 자체적으로 휴식시간을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법상 생리적인 현상은 별도의 휴식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게 고용부의 입장이다.
고용부는 근로자와 택배사간 노동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17조’에 따르면 근로조건은 서면에 명시하게 되어있다. 계약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사항으로는 ‘근로계약기간’, ‘근로시간·휴게’, ‘임금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방법’, ‘휴일·휴가’,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 시간’등이 있다. 동조항에 따르면 하루, 일주일, 심지어 단 몇시간만 일하는 단기근로자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양식은 이미 보급되어 있고 시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택배사 측은 모든 근로자에 대한 계약서 작성은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개 대형 택배사외 기타 중소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도 7개소 40명의 불법파견이 조사되어 4개 사업장은 사법처리, 근로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토록 시정 명령했다.(자료= 고용노동부)
▲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17조에 명기된 사항
익명을 요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용직 근로자 중에는 외국인, 신용불량자 등 신분노출을 꺼려 하는 사람이 많고, 수백명이나 되는 근로자에 대해 매번 계약서를 받으면 관리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게 택배사의 입장”이라며 “그러나 이는 엄연히 불법이며 법이 개개 업체사정을 봐줄 수는 없다. 기업들이 조금만 연구한다면 계약서 작성 과정은 쉽 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계약서 미작성에 따른 임금 미지급에 대한 문제도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법상 근로자가 단 몇 시간을 일하더라도 노동에 대한 대가는 지불돼야 한다. 그러나 물류센터 안에서는 연장, 휴일, 야간 근로가산수당, 연차수당 미지급은 물론 임금체 불문제도 심각한 것이 고용부의 조사 결과 밝혀 졌다.
대표적으로 물류센터 근로자에 대한 OT수당(Overtime Charge, 시간외 근무수당)이 제대로 계산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야간 근로는 저녁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다. 이 시간 동안은 통상 지급임금의 1.5배를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고용부는 야간근무에 대한 사항은 이제 대부분 대형 택배사들이 인지하고 있지만 그 후에 발생하는 추가 노동에 대한 임금 지급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고용부에 접수된 실제 신고 사례에 따르면 모택배사 물류센터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오후 6시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근무했다. 김모씨는 3시간 연장근무로 새벽 5시까지 근무했지만 추가 수당을 받지 못했다. 야간근무인 8시간에 대해서는 1.5배 임금을 지급해야하고 추가적인 3시간은 추가 50% 수당을 지급해 기본 임금에 2.0배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측은 실제로 야간수당외 추가수당에 대한 부분이 관행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자료=고용노동부)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처음 시행된 물류센터 감독은 감독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사업주들이 자율적으로 고용구조를 개선하게끔 하려는 것” 이라며 “택배업체들도 이제는 법을 몰라서 노동법을 위반했다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적발시 가중처벌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고용부는 앞으로도 대형 택배업체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것이며, 그래야 중소기업들도 따라서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택배사의 이야기: 어려운 건 알지만
택배사측 역시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이 나오지 않는 현시점, 사실상 법에 부합하는 모든 조건들을 맞추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택배업체의 한 관계자는 “법안을 그대로 수용 하기에는 현실에서 부딪치는 부분이 많다”며 “먼저 택배업이라는 생태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법적 규제로 인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말했다.
택배업계가 제기하는 대표적인 문제는 배송지 밀집지역에 ‘물류센터’자체를 건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커머스가 성장하면서 국내 택배 물동량은 증가했고, 물동량 또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밀집돼있다. 때문에 배송지 밀접지역 인근에 물류센터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서울에 물류센터를 짓는 것은 어렵다. 물류센터는 지역 주민에게 ‘혐오시설’ 로 인식되고 있으며, 주민 반발로 물류센터 설립자 체가 어렵다는 게 택배사측 설명이다. 실례로 국내 한택배사는 서울 도심에 물류센터 구축을 위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실제 시공에 들어갔지만 도중 주민반발로 인해 상당한 매몰비용을 껴안고 계획을 접었다.
A택배사 물류센터 관리자 박씨는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사람들에게 당일택배가 당연해져버렸고 ,택배를 빨리 받고자 하는 수요는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핵심 역할인 물류센터가 자신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헌법상으로 문제없이 물류센터 설립을 진행하다가도 실무 단계에서 시조례, 구조례에 걸리는 항목으로 영업에 지장이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덧붙여, “물류센터가 외곽에 위치한 경우 인력소싱이 어렵고, 근로자들 또한 출퇴근에 어려움을 겼는다”고 설명했다.
택배사측은 현장인력 수급에 대한 근본적인 어려움 역시 호소하고 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구분되는 산업 특성상 모든 근무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에는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택배사들은 명절과 같이 물량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아르바이트, 현장지원을 통해 추가로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 인력 고용에 대한 리스크 역시 상당하다고 전했다. 주로 기간제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현장 인력들 중에는 하루 일당만 받고 일을 나오지 않거나, 몇 시간 근무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택배 사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들을 기업 차원에서 끌어 안고 있다는 것이다.
A택배사의 또 다른 관계자 김씨는 “필요한 인력을 예측해서 충원해도 갑작스럽게 인력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이 경우 하루 처리해야 할 양이 정해진 상황에서 즉각적인 인력 충원이 어렵기 때문에 남아있는 근무자의 연장근무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물량이 집중되는 성수기는 인력 공급 자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추석기간에는 택배사들의 인력공급 문제로 택배대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택배사들은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행법상 불법인 외국인 노동자를 충원했고, 몇몇 업체는 현장에서 적발돼 벌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실상 택배사들은 오래전부터 물류현장 인력공급 문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별다른 답변은 없다는 것이 택배사측 설명이다.
A택배업체 물류센터 관계자 강씨는 “고객 접점의 서비스를 처리하는 택배기사를 외국인 노동자로 고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고객신뢰형성 차원에서 이해가 된다”며 “그러나 고객접점이 아닌 물류 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 채용이 허가되지 않는 실정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저단가 경쟁속, 노동환경 개선의 향방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사상 최대의 실적(20억 개)을 기록했다. 그러나 평균 택배단가는 2318원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년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올해 최저 임금은 7.3% 인상됐다. 올라야 할 택배단가는 오히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B택배사의 한 관계자는 “택배사가 화주들에게 제시하는 단가는 1400원~1700원대까지 내려가며 구매력을 가진 대형화주일수록 저단가 비딩은 더욱 심각한 상태”라며 “심지어 화주사에 리베이트 개념의 백마진을 제공하며 영업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택배업이기에 물량이 늘어 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택배사들의 실적은 만년 제자리 걸음이라고 한다. 현장에서는 적자를 면하고자 편법, 불법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된 물류센터 노동문제 역시 택배사가 자행하는 수많은 불법영업 중 하나다.
국내 대형택배사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택배업체들이 현재 정해져 있는 법의 테두리를 규정대로 따르게 된다면 비용 문제로 인해 모든 택배사가 문을 닫아야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택배산업을 위한 제도 정립이 우선되고, 이와 함께 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것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고용부 관계자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택배업체들이 저단가 경쟁을 펼치면서 업계가 치킨게임 판이 됐다”며 “택배업체들은 이제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법 테두리안에서 자체적인 정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