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Ma chine)의 습격, 디맨드플래너의 위기
글. 이병휘 켈로그 디맨드플래너
Idea in Brief
유통산업의 방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나아가면서 디맨드플래너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을 통해 디맨드플래너에 비해 즉각, 독립적이며 편향적이지 않은 분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통계모델을 통한 예측도 보편화되고, 각각의 모델도 고도화되면서 통계적 접근에 대한 진입장벽은 한 단계 더 낮아졌다. 아주 멀지 않은 미래에 디맨드플래너의 자리는 부장님이 새로 구입한 새로운 ‘시장분석 프로그램’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말이다.
수요 예측(Demand Forecasting) 업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2010년 샴푸제품 예측을 시작으로 배터리와 화장품을 거쳐 지금은 시리얼의 수요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아무래도 수요예측 담당자는 직접적으로 수요를 개척하거나 제품 판촉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서의 행동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통해 수동적으로 매출을 예측하는 것이 주요업무다. 때문인지 필자는 ‘수요를 바라본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직업적인 위기감을 몸으로 느낀 한해였다. 실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적용하고 있는 기업의 사례를 보며 생각보다 이 직업의 수명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사실 수요예측의 가장 큰 특징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과 경영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래도 안 맞는 건 안 맞는다. 첨언하자면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디맨드 플래너가 한국 생활용품에 대한 제품 단위 예측을 70% 이상 적중시킨다면 단언하건데 최고 수준의 인재임이 분명하다. 안 맞는다는 부분을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 수행해야 되는 것은 실제 현황의 모니터링과 그에 따른 변동폭의 반영과 원인분석이다. 바로 이곳에서 사람의 한계가 등장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사람의 능력만으로 반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메타데이터(Meta data)에서 개명하며 그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빅데이터 기반의 머신러닝은 어떨까.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가 얼마 전 강연을 들었던 한 업체는 퀵서비스 라이더의 배차루트를 짜는데 머신러닝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 업체는 운영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전체 서비스 운영의 기반 데이터가 됐다.
머신러닝 기술은 단기적으로는 빠른 반응이 필요한 서비스에 우선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도입되었던 MD(Missile Defence)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MD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위험수준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우선순위를 할당한다. 이러한 머신러닝기술은 기존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던 영역까지 잠식해나가고 있다.
기업은 머신러닝을 통해 단기간의 트렌드 분석을 바탕으로 과거 여러 사례와 비교하여 향후 진행 방향을 즉각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최초 예측 값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요예측 정확성에 대한 조기판단 및 방향조정 또한 가능할 것이다. 이미 수요예측 도구(Tool)들은 과거 엑셀을 활용했던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 고도화된 통계툴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SAP APO(Advanced Planner & Optimizer)에서는 이미 수요예측 도구에 대한 통합이 끝났다. 통계모델을 활용한 수요예측은 이미 어느 기업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도구로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통계모델은 각각의 사건(Event)들을 기반 정보(Base Input)로 쌓아간다. 그렇다면 통계모델의 운용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머신러닝이 된다면?
통계모델을 포함한 예측과 같은 경우에도 이제 예전과 같은 복잡한 이해와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기존 SPSS나 MatLab 등 전문적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부분도 이제 엑셀에서 단순하게 사용 가능하다. 올 10월 발매된 ‘물류인의 영원한 친구’ 엑셀 2016에는 예측(Forecasting)이라는 기능이 추가됐다. 지수평활법(Exponential Triple Smoothing model)을 사용하는 이 기능은 과거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통계적 접근에 대한 장벽을 한 단계 더 낮춰준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 계획에 대한 가감을 결정하는 것만으로 상대적으로 정교한 수요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여전히 독립된 디맨드플래너의 역할은 중요하다. 영업, 마케팅부서의 목표달성을 위한 목표치의 단순한 수치 전환이 아닌 실제 상황에 적용 가능한 정확한 접근을 통해 현 상황 및 실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서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런데 디맨드플래너는 결국 사람인지라 분석에 ‘주관’이 들어갈 수도 있다. 사람이 기계(Machine)보다 더 독립적이고 편향되지 않은 분석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온라인 유통분야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오프라인 유통 중심의 산업구조에 비해 소비자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더 크고 정확한 양으로 추적하게 만들어준다. 이미 온라인 쇼핑 상 고객 구매과정에 대한 추적 및 분석툴을 사용하는 업체는 많고, 점차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포털 사이트를 통한 검색 및 쇼핑몰 유입정보는 기존 검색어와 연관된 구매 루트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기존 거래선이나 카테고리별 예측이 아니 소비자 한명, 한명에 기반한 진정한 상향식예측(Bottom-up forecasting)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에서 주요지표는 ‘가격 경쟁력’ 및 ‘매출’이지만, 온라인 유통에서는 소비자의 구매패턴 및 빈도를 기반으로 한 판매 예측이 가능해질 것이며 여기에 더해 ‘배송지역’과 같은 데이터를 통해 지역별 소득수준 등을 고려한 예측까지 가능해질 것이다. 꿈같은 소리 같지만, 이미 아마존이 특허까지 취득해서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며 상대적으로 정보의 수집이 쉬운 우리나라에서는 더 빠른 속도로 적용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된 수요데이터는 지역, 구역을 기반으로 물류창고의 재고 운영 및 배송인력의 사전 배치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물류업체의 전체 인원 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머신러닝과 라스트마일배송과 관련된 역량을 키우고 있는 대형 물류업체, 전국에 물류센터를 확장하며 당일 배송권을 늘려가고 있는 온라인 유통업체는 이미 현실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디맨드플래너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 있다. 정년퇴임을 눈앞에 둔 부장님의 “나는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딱 그 정도 나가지 않을까?”라는 호언장담이 플래너가 며칠 공을 들여 만든 분석보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아주 멀지 않은 미래에, 디맨드플래너의 자리는 부장님이 새로 구입한 새로운 ‘시장분석 프로그램’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말이다.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6권(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병휘 SCM칼럼리스트는 생활용품, 전자제품, 식품, 화장품을 다루는 여러 제조·유통업체를 거치면서 SCM, 수요예측을 담당해왔다. 주요 관심사는 SCM프로세스와 정보 가시성(Information Visibility)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눈을 돌려 물류산업에서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한 주제가 오고갔지만 결국 페북에 중독된 평범한 월급쟁이다. (byunghw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