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 속도 싸움의 종말, 제품 '소유권 이전'이 불러온 결과
이제는 가시성 배송의 시대, 이커머스와 대형마트의 전략은?
글. 신승윤 기자
늘 중요했던 ‘빠른’ 속도
과거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며 전국 방방곡곡, 심지어 마라도까지 달려가 짜장면을 배달하던 휴대전화 TV 광고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배달 주문도 전화 통화만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졌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휴대폰 발신과 수신이 도서·산간지역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광고 카피가 다수 존재했다. ‘파워디지털017’이나 ‘스피드011’과 같이 통화품질을 힘과 속도로 강조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 빠른 속도를 강조한 파워디지털017(왼쪽)과 스피드011(오른쪽)
한 가지 주목해볼 점은 위 TV 광고가 제품의 통화 품질을 많고 많은 요소들 중 중국집 배달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집 전단지마다 적힌 ‘신속배달’, ‘총알배달’은 철가방이란 애칭을 가진 배달원들을 상징하는 표현이었고, 지금도 배달/배송에 있어 ‘어디든지 빠르게 가능해야 한다’는 명제는 통용되고 있다. 한층 활성화된 음식배달은 물론, 퀵서비스, 택배 등 라스트마일 배송(Last-mile Delivery) 전체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다양한 서비스로 등장한 ‘00배송’ 가운데서도 00은 기간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사례가 많다.
익일배송을 정착시킨 ‘소유권 이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규모는 100조 원을 넘어섰으며, 올해 말까지 13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이커머스 거래액은 113조 원이었는데, 이는 전년대비 22% 성장한 수치로 꾸준히 두 자리 수 성장세를 이어 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 물량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동반 성장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택배업계다.
택배 시장은 1992년 한진에서 국내 최초의 택배서비스 ‘파발마’를 출시한 이후 2018년에 이르러 물량 25억 개, 매출 규모 5조6000억 이상의 거대 규모로 발전했다. 현재는 우체국, 한진, CJ대한통운, 롯데, 로젠 등이 점유율 경쟁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계 각국 택배 시장이 그렇듯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비스를 이어오면서 업체마다 큰 변동 없이 일정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온라인 쇼핑, 그리고 온라인 쇼핑만큼이나 택배 시장 성장에 큰 기여를 한 TV 홈쇼핑은 소비자로 하여금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근심거리를 안겨줬다. 바로 ‘소유의 이전’ 문제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일어나는 기존 거래 방식의 경우 소비자가 금액을 지불함과 동시에 물건을 수령할 수 있었으니, 물건의 소유권이 거래와 동시에 즉각 소비자에게로 이전됐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이나 TV 홈쇼핑은 다르다. 소비자가 결제를 마친 후 물건을 직접 소유하기까지 배송시간이라는 간극이 생긴다.
▲ 소유의 이전 사이의 간극은 온라인 쇼핑 및 TV 홈쇼핑의 가장 큰 문제였다.
택배업계는 이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꾸준히 진화해 왔다. 기본적으로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배송을 진행하는 택배는 기본 3~4일 이상 걸리던 배송시간을 수도권은 다음날, 지방의 경우에도 도서·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이틀에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도록 정착된 상태다. 물론 그만큼 악명 높은 업무환경 및 노동자 처우 문제가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나, 이 또한 자동화 설비 도입, 생활물류법 개정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해결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로써 지금의 온라인 쇼핑 소비자들은 택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를 형성했다. 명절 등 특별한 기간이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적어도 2일 내에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온라인 쇼핑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택배가 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소유권 이전을 가능케 하면서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에 대한 고객경험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 전자상거래(e-Commerce)는 생활 가운데 누구나 간편히 이용하는 쇼핑 방식이자, 대형마트를 위협하는 가장 큰 경쟁자로 부상했다.
계속되는 속도전, ‘빠름’만이 답일까?
택배에서 끝이 아니다. 택배로부터 포문을 연 라스트마일의 시대는 조리음식부터 각종 공산품, 신선식품 배송으로 이어졌다. 이 서비스들은 저마다 가진 배송강점을 이름으로 내세웠는데, 자체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당일배송을 가능케 한 ‘로켓배송’, 당일 주문하면 소비자가 잠든 새벽 시간동안 배송을 마치는 ‘새벽배송’, 편의점이나 드러그스토어(Drugstore) 제품을 1시간 내 배달해주는 ‘편의점배달’, ‘3시간 퀵’ 등 빠른 속도를 강조했다.
▲ 대부분의 배송서비스들이 빠른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
소유권 이전의 관점에서 라스트마일 배송의 빠른 속도는 여전히 큰 장점이다. 그러나 소비자로 하여금 전자상거래는 더 이상 낯설거나 불안한 형태의 소비방식이 아니며, 때문에 소유권 이전에 대해서도 점차 ‘빠름’과는 또 다른 속도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바로 눈에 보이는 속도, 배송 가시성이다.
소유권 이전의 간극을 해결하는 ‘가시성’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는 속도를 원한다. 소유권이 빠르게 넘어오는 것만큼이나 예측 가능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물건을 수령하길 기대한다. 택배 위치 정보 시스템이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이나, 배송 날짜 및 시간 관련 문자 전송서비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통한 실시간 문의서비스 등의 발전은 소비자가 배송 가시성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택배업체들이 위치 정보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사이, 다른 라스트마일 배송 서비스들도 가시성 확보에 한창이다. 쿠팡은 배송 지연이 발생할 시 예상 배송시간을 기록한 문자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은 주문 접수와 함께 가맹음식점이 제공하는 예상도착시간 정보를 공유한다. 새벽배송 또한 배송시간이 빠르다는 것보다, 구매에 따라 제품을 수령할 수 있는 시간이 명확하다는 것에 강점이 있다.
▲ 제품 수령 시간이 명확히 보장되는 새벽배송 (사진: 쿠팡)
새벽배송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한다는 회사원 A씨는 “새벽배송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송 속도가 아닌 예측가능성”이라며 “새벽배송을 통해 주로 다음날 저녁 식사를 위한 신선식품을 구매한다. 아침 식사는 되도록 간단히 하는 편이라 아침에 수령한 식재료들은 빠르게 냉장고로 옮겨놓고서 출근하기 바쁘다. 퇴근 후에야 주문한 식품들을 활용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배송이 유용한 이유는 언제 식품이 도착할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중에 식품이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서 한 번이라도 마음 졸여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실제 새벽배송은 오전 2~3시 사이에 대부분 배송을 마친다. 오히려 소비자의 현관 앞에 놓인 채 아침까지 대기시간을 가진다. 즉 주문으로부터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은 충분히 빠르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수령시간이 따로 있기에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기까지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소비자가 이 같은 간극을 스스로 용인하는 이유는 가시성에 있다. 주문을 마친 다음날 현관문을 열면 정확히 물품이 배송돼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단순히 빠른 배송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배송시간 또는 스스로 선택한 배송시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존의 속도 : ‘빠름’에 ‘가시성’을 더하다
아마존의 배송 시스템은 위와 같은 소비자 특성을 아주 잘 파악해 반영하고 있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 고객으로 하여금 One-Day 또는 Two-Day Delivery 옵션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 외에 추가로 Scheduled Delivery를 제공하여, 이틀을 넘어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 하고 있다.
그런데 포브스(Forbes) 분석에 따르면 아마존의 모든 피킹·패킹·배송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Two-Day Delivery 옵션에 맞춰져 있으며, 그 이상의 Scheduled Delivery에 대해서는 주문처리 자체를 배송날짜 이틀 전에 진행한다. 즉 소비자가 7일 후 배송을 요청하면, 주문 처리를 의도적으로 5일이 지난 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문을 즉각 처리한 후에 발송을 늦추거나, 느린 배송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주문량에 맞춰 날짜별로 물량 및 인력을 조율하면서 여타 프로세스는 그대로 유지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아마존은 Scheduled Delivery를 통해 배송 가시성을 확보한다.
이 같은 아마존 배송 프로세스가 시사하는 바, 아마존은 이틀 내 모든 제품 배송을 마칠 능력을 이미 충분히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면서, 효율 자체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송 속도에 있어 신속성과 함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수령날짜를 제공하는 가시성을 두루 제공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의 도전, 예측 가능한 배송을 만들자
월마트(Walmart)의 ‘픽업(Pickup)’ 서비스와 함께 유통체인 타깃(Target)의 ‘드라이브업(Drive-Up)’ 서비스는 최근 미국 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두 서비스는 소비자가 온라인 또는 모바일로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 방문해 원하는 시간에 수령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옴니채널이란 이름으로 온·오프라인 간의 막힘없는 연결을 추구하는 기존 유통업체들이 주목한 것도 가시성이다. 소비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어디서든 간편히 주문과 결제를 마치고, 원하시는 시간에 계획적으로 물건을 수령함으로써 소유권 이전에 대한 부담을 떨친다. 마치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듯 말이다.
▲ 월마트의 픽업 서비스
국내 유통 공룡들도 가시성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롯데는 이미 2016년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원하는 매장에서 수령할 수 있는 ‘스마트픽’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2017년 기준 535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전년대비 69%의 성장률을 보인 스마트픽은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하이마트로 서비스 지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신세계는 쓱배송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소비자는 3시간 단위로 구분된 시간표에 따라 원하는 배송시간을 예약할 수 있고, 해당 시간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적절히 수령 장소를 조절할 수도 있다. 더불어 ‘쓱배송 투모로우’라는 옵션을 둬 익일배송과 더불어 무작위 시간에 배송하는 대신 페이백을 제공한다. 이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가시성임을 파악하고,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예약할 수 있는 쓱배송(쓱배송 홈페이지 캡처)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 7월 전국 140개 점포를 물류센터로 전환해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매장 내에서 온라인 주문에 따른 피킹과 패킹이 이뤄지고, 신선식품 배송 차량을 늘려 도심형 풀필먼트 센터로 운영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는 전국에 대형마트 142개, SSM 형태의 홈플러스 express 367개, 편의점 형태의 365 플러스 376개를 보유하고 있다. 타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울·경기지역 외 지방까지 고르게 매장을 보유하고 있어 익일배송을 보장받지 못하는 지방 거주자들에게 새로운 가시성 확보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홈플러스 풀필먼트 센터 (사진: 홈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