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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의 어둠, ‘외국인 노동자’

by 김태영 기자

2018년 05월 14일

공공연한 비밀 된 물류센터 외노자 고용 "만성적 인력난 때문"

고용노동부 "외노자 규제 해소,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

물류센터 외국인노동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이하 외노자)를 만났다. 그는 모국의 가족을 생각하며 힘든 나날을 버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노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213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불법체류자는 약 24만 6,000명으로 전체의 10%에 달한다.

 

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제조업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법체류자만 아니라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종이나 서비스업종도 마찬가지다. 직군 내에서 일부 채용을 제한하는 부분은 있지만 비자 등 조건이 맞다면 노동자 신분은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물류센터는 상황이 좀 다르다. 물류업종은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지만 물류센터에서 외노자가 일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외노자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물류센터와 직업을 구해야만 하는 외노자 간 니즈(?)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외노자 없이는 ‘못 굴러가는’ 물류센터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경기도 이천의 한 택배 물류센터가 마비됐다. 해당 물류센터에서 불법으로 일하던 187명의 외노자가 무더기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서 근무하던 한국인은 100명에 불과했지만 외노자는 200~300명 가량 됐다”고 회상했다. 근무 인원의 50% 이상이 단속에 걸렸으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물류센터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인력난 속에서 물류센터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외노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외노자가 물류센터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업계 내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실제 현장은

 

그래서 궁금해졌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외노자들의 실태와 고용형태를 살펴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방문한 곳은 이천의 물류센터 밀집지역. 해당 지역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교통이 불편해 서울에서 찾아가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물류센터 이천 외국인노동자▲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물류센터 밀집지역이다. 물류센터는 고속도로가 가까운 교외에 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거리는 한산했고 물류센터용 간선차 외에는 일반 승용차도 보기 힘들었다. 주변에 위치한 편의점 직원에게 “여기 외국인 많나요?”라고 묻자 힐끔 쳐다보더니 “네”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외노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물류센터는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류센터 경비실에서는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간신히 외노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기자’ 직함이 적힌 명함을 보자마자 도망치기 일쑤였다.

 

결국 취재원에게 부탁했다. 이에 어렵사리 외노자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주 5일 하루 8시간씩 근무한다고 말한 A씨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만족한다”며 웃어보였다. A씨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였다.

 

한국에 온지 1년 반이 넘었다는 A씨는 초기에는 아르바이트 말고는 규칙적인 일자리가 없어 힘들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어가 서툰 것도 하나의 이유였으나 지금은 꽤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하지만 의문이 생겼다. 외노자의 물류센터 취업은 법적으로 막혀있는 상황에서 A씨는 어떻게 정규직 타이틀을 달고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불법으로 자행되는 ‘파견’에 있었다.

 

외노자 A씨가 정규직으로 채용된 배경은 이렇다. 그가 일하는 물류센터의 대표는 제조회사와 물류센터를 동시에 운영하는 법인의 소유자다. 즉, H-2 비자(방문취업이 가능한 비자)를 취득하고 있던 A씨를 제조회사 직원으로 채용한 뒤 실제로는 물류센터에 파견을 보낸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엄연한 불법이다. A씨가 근무하는 B물류센터의 대표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외노자가 없으면 당장 물류센터 가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물류센터에서 일할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힘들다”며 “한국 사람들은 물류센터에서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노동 환경 때문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물류현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외노자들이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외노자 투입은 사실상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사용자에게 있어 마지막 선택지인 것이다.

 

당국의 단속에 적발될 경우 근로자에 해당하는 외노자는 근무 일수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다. 강제 출국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사업주 역시 출입국관리법에 의거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물류센터 측은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입장이다.

물류센터 외국인노동자

대안 없는 물류센터

 

물류센터의 인력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소위 막노동에도 못 미치는 임금은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케 한다. 일각에서는 물류 선진국의 사례처럼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인력난을 극복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영세한 물류센터가 대다수인 업계 특성이 발목을 잡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물류센터에 가해지는 외노자 채용 규제를 풀자는 업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며 현 상황을 해결할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건의가 들어오면 생각해 보겠으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며 “현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외노자는 주로 인력회사에서 공급받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법적 규제를 푸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김태영 기자

물류를 통해 사람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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