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필먼트센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수단
이커머스 물류 자동화는 ‘사람의 일을 돕는’ 방향으로
입고, 진열, 반품... 사람의 힘이 필요한 분야, 한국의 특수성 '감수성'까지
글.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
국토교통부가 올해 4,682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고용문제는 비단 청년 세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고용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온라인 쇼핑시장과 함께 성장한 ‘이커머스 물류’가 고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 산업 영역에서 자동화를 외치는 현 시점에서 이는 다소 황당한 주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커머스 물류가 ‘다품종’, ‘비정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반드시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IMF 이후 등장한 4개의 정권(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은 모두 ‘일자리 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받는 정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유세에 나선 정당과 후보자들은 여전히 각종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세웠다. 급격히 진행되는 노령화, ‘4차 산업혁명’의 가시화, 그리고 한국GM 사태까지 겹치면서 최근 ‘일자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 어떤 때보다 ‘절박’해 보인다.
물류업 전반도 아니고 이커머스 물류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필자가 무려 ‘이커머스 물류와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다니 격이 맞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함께 일어난 전통 소매·유통업의 일자리 감소에 ‘이커머스 물류’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면, 다룰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본다.
사람이 필요한 이유, ‘이커머스 물류’니까
미국의 경우, 이전까지 소매업 쇠퇴의 원인을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워싱턴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의 경제학자 마이클 맨델(Micheal Mandel)의 주장은 달랐다. 이커머스로의 전환이 소매업에서 줄어든 일자리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풀필먼트 센터(Fulfillment Center)’였다. 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매업의 쇠퇴로 인해 미국에서 약 7만 6,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같은 시기 이커머스 산업은 약 39만 7,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두 영역의 종사자 모두 비슷한 교육 수준을 요구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커머스 산업 종사자의 임금은 소매업 종사자보다 3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는 풀필먼트 센터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 센터와 그것이 가진 ‘자동화’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풀필먼트 센터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물론 아마존의 풀필먼트 센터가 최첨단인 것은 사실이다. 키바(KIVA)는 물론이거니와 공개되지 않은 온갖 자동화 설비들과 알고리즘이 ‘규격화된’ 업무들을 자동화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풀필먼트 센터는 이커머스의 영역이다. ‘이커머스 물류’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줄곧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커머스 물류는 ‘다품종’과 ‘비정형성’의 특징을 가지고, 그에 따라 상품에 대한 로케이션(위치) 부여 이후의 ‘피킹’이나 ‘패킹’ 등의 작업은 충분히 자동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로케이션 부여 이전의 ‘입고’, ‘진열’, 그리고 피킹 이후 제품이 알맞게 피킹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나 ‘역물류(반품)’ 등의 업무들은 아무리 고도화된 설비를 활용한다 해도 100% 사람을 대체하기 어렵다. 가능하더라도 더 많은 비용과 오류를 수반할 것이다. 가령, 한 대당 도입가격이 20~30억 원 정도인 키바를 도입해서 중소형 온라인 셀러들의 물류를 지원할 수 있는 사업자가 얼마나 될까.
과거 아마존은 월마트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물류용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가 낭패를 본 바 있다. 또한, 풀필먼트 센터 설립 초창기 몇몇 전문가들의 노하우에만 의지하다보니 전문가의 공백에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센터 운영 효율화에 걸림돌이 됐다. 수업료를 곱씹듯, 이후 아마존의 자동화 시스템은 ‘사람의 일을 돕는’ 방향으로 20년 간 진화해왔다. 상품의 진열, 피킹, 패킹 등 전 영역에서 시스템이 작업자의 동선을 추천하고 최적 효율화를 돕도록 하여 처음 온 알바생도 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인식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야
미국의 상황을 국내와 단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이커머스는 몇 가지 특성이 더 추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시장의 ‘감수성’이다. 한국에서는 ‘감성’이라는 특수성이 물류에도 반영된다.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제품에 팸플릿이나 사은품을 넣어 포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난이도의 디자인 포장이 들어가기도 한다. 창업 초기에는 일일이 손 편지를 쓰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100% 사람 손에 의해 좌우되는 영역이다. 때문에 한국시장에 맞는 이커머스 물류에는 더 많은 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GM 사태로 약 1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받았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이커머스 물류의 확산으로 한 산업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개편되고, 그 과정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로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풀필먼트’가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다른 일자리가 만드는 것보다 반드시 ‘더 많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일자리들이 생겨날 것은 확실하다.
이커머스 물류는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채용 인원수도 정비례할 수밖에 없다. 운전능력과 완력이 있어야만 하는 운송업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노인’이나 ‘여성’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또한, ‘사람’을 동반하는 비즈니스인 만큼, 자연스럽게 이커머스 물류 영역에선 ‘노무’ 문제도 진지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최장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최저임금은 올라가고 있는 현 정권의 정책 흐름을 볼 때 노무에 대한 노하우나 종사자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서비스와 값싼 프로세스를 개발한다고 하여도 시장에서 도태될 확률이 크다. 직원이 고통 받는 회사에 누구도 자신의 제품을 맡기고 싶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물류산업 전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 풀필먼트 영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납부하는 세금도 많아지게 되면, 풀필먼트 업체가 사업자 등록을 할 때 ‘일반 창고업’이 아닌 ‘전자상거래 전문 물류업’ 등으로 별도 분류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성균관대학교에서 무역 및 외국어를 전공하였으며, 2012년부터 두손컴퍼니의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5년 풀필먼트 서비스 '품고(poomgo)'를 런칭하여, 지금까지 100곳 이상의 이커머스 셀러들, 15,000종 이상의 제품들에 대한 물류를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