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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교섭 나선 택배노조, 택배사는 수수방관

by 박대헌 기자

2018년 0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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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의 설립신고 허가, 그 이후

 

지난 11월 3일, 고용노동부는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의 노조설립 신고를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면, 택배노조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했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개개인이 특수고용직노동자인 택배기사의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첫 번째 사례다. 택배노조는 이후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게 됐고, 기존 시스템을 구성하던 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신고증

▲ 지난 11월 3일, 택배노조의 설립필증이 발급되었다. (자료:전국택배연대노조)

 

실제 노조 필증을 받은 택배노조는 대리점의 과도한 수수료공제, 일방적 계약해지 등에 대해 CJ대한통운의 일부 대리점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했다. 그 중 경북 경주지역의 4개 대리점(남경주·경북안강·안강중앙·황성)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의해 택배노조 경주지회가 교섭권이 있음을 인정받았다. 이후 대리점과 택배노조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노조홍보 활동을 하는 노조원과 CJ대한통운 부산 금정터미널 직원 간 충돌이 발생했으며, 경기 하남대리점에서는 택배노조가 교섭 대상으로 확정되었음을 알리는 공고문을 제거하는 일도 있었다.

 

대리점측의 자율성, 모두의 문제는 아니다

 

그 동안 택배노조를 둘러싼 담론에서 대리점은 대체적으로 빠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택배회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기도 했고, 택배회사의 요구에 독립적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관계자 A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대리점장이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장으로서 자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수수료 이야기를 꺼냈다. 택배노조는 대리점 갑질 중 하나로 ‘높은 수수료’를 제시했다. 택배 기사에게 과도하게 많은 수수료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그런 문제는 대리점 전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A씨가 운영하는 대리점의 수수료는 연차가 쌓일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장기근속 및 경험에 대한 보상으로 수수료율을 점차적으로 낮추는 제도를 시행 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시스템을 대리점에 도입한 이후로, 업무를 그만두는 택배기사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즉, 대리점의 경영지침에 따라 좀 더 택배기사에게 친화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A씨는 말했다. 나아가, 수수료 문제는 단순히 택배업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택배 상품에 대한 상품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기에, 택배회사는 ‘저단가’ 경쟁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애초에 ‘제대로 된 택배가격’을 받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단가 경쟁 속에서는 택배회사와 대리점 역시 이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A씨는 규모가 작은 대리점의 경우, 운영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영세한 규모’에 가까운 곳도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대리점을 ‘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미다.

 

다른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택배회사는 필요한 대리점 수 이상을 운용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야 대리점간 경쟁 속에서 회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같은 회사 내에 있는 대리점 사이에도 경쟁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리점은 택배회사와 관계에서는 ‘을’이 되기도 한다.

 

물론,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문제점들까지 A씨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과도하게 수수료를 떼어가는 대리점은 도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택배기사와 대리점 간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대리점이 경영되어야 한다고 A씨는 전했다.

 

단, 그 방법에 있어 ‘단체 교섭’은 쉬이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실제로 교섭이 지향하는 방향이 ‘대리점주의 배제’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택배노조는 ‘바지 사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A씨에게 대리점주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대리점을 경영하는 엄연한 택배업의 한 주체이다. 따라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택배노조에 부정적이다.

 

노조측, 자율성이 문제 야기해

 

택배노조 김진일 사무국장의 생각은 대리점주 A씨와 정반대였다. 대리점주의 ‘제어되지 않는 자율성’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나아가, 대리점이 갑질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 사무국장도 대리점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다. 현재까지는 대리점 운영에 대한 전수조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과도한 수수료를 포함한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대리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택배노조도 알지 못한다.

 

노조설립운동

▲ 택배노조는 설립신고 이후 필증 발급을 위해 여론전을 벌였다

 

그러나 김 사무국장은 대리점주에 따라서 대리점의 운영방식이 택배기사에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같은 대리점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택배기사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수료가 다른 것도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나아가, 이렇게 택배기사가 착취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택배회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게 택배노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택배회사가 대리점 등에 수수료를 비롯한 각종 경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택배노조는 협상 테이블에 CJ대한통운을 비롯한 택배회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체교섭의 대상이 대리점을 넘어 택배회사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택배회사와의 협상을 통해서만이 대리점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택배노조는 말한다. 현재까지는 택배노조는 일부의 대리점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상태이지만, 택배노조의 궁극적인 단체교섭 대상은 대리점이 아니라 택배회사라는 설명이다.

 

대리점은 택배노조에게 ‘일시적인’ 협상대상일 뿐이다. 나아가 택배노조는 대리점 업무의 외주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리점이 담당하는 업무가 실은 택배회사가 직접 운영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 택배노조가 부딪치고 있는 것은 대리점이지만, 택배노조는 대리점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리점 역시 택배 노조를 협상테이블의 주체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택배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택배회사는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대리점주가 각 대리점의 경영 주체이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적으로 택배회사와 택배기사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택배노조가 노조법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기까지는 ‘사용자성’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택배기사가 독립적인 자영업자라고하기엔 사측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여기서 사측이 단순히 대리점만 의미하는지, 혹은 택배회사까지 포함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물론 추후 택배회사의 택배기사에 대한 ‘지휘·감독’이 인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에 대한 표준 계약서를 마련하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으로는 초과근무 수당, 휴가 등이 들어가 있다. 적어도, 이에 대한 부담 중 일부는 대리점뿐만 아니라 택배회사도 짊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업계의 평가다. 그렇다면 선제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쪽이 택배회사에게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 고용노둥부 관계자는 "택배 기사와 법적 관계가 있는 대리점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원청으로 볼 수 있는 택배 회사의 경우에는 택배기사와의 '계약 관계'가 증명될 때에만, 교섭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는 택배노조와 대리점 사이에 접점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서로 협상 테이블에 함께 앉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양측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올 수 있는 이는 택배회사뿐이다. 대리점과 택배노조, 양주체가 원하는 것 중 일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택배노조가 인가되었고, 빠르면 올해부터 택배기사에 대한 표준계약서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 시작을 누가 할 것인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박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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