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

외면 받는 현장, 물류의 그림자

by 박대헌 기자

2017년 11월 13일

사진

 

 물류가 뜨고 있다고 한다. 유통공룡인지, IT공룡인지, 물류공룡인지 헷갈리는 아마존 때문일까. 한국형아마존을 외치며 유니콘 스타트업이 된 쿠팡 때문일까. 드론과 로봇의 편대를 만들며 물류실험을 하고 있는 CJ대한통운 때문일까. 블록체인이니 클라우드니 빅데이터니 첨단기술을 물류에 때려 박고 있는 삼성SDS 때문일까. 어찌됐든 요즈음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물류’가 만드는 결과는 무릇 화려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물류현장에서는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게 많다. 기업에 있어 물류센터는 여전히 까라면 까는 비용절감 조직이다. 첨단 무인선박이 나타난다고 하는 시대에 여전히 화물선에 승선하는 선원들은 불공정 계약서에 울부짖는다. 퀵서비스?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가장 큰 것은 ‘단가’라고 한다.

 

왜 작업자들이 바라보는 현장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현장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할까. 기자는 물류센터 현장작업자, 선원, 퀵서비스 라이더를 찾아가서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이들 중에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경우도 있고, 혹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경우도 있으며, 나아가 사업주가 된 이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느꼈던 바를 모두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었다는 점이다.

 

전·현직 현장 작업자들이 들려준 물류현장의 이야기는 절대 밝지 않았다. 오히려 물류의 그림자에 가까웠다. 물류 서비스의 가치를 믿는다면서도, 현장 작업의 가치는 경시했다. 때로는 아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현장도 있었다. 이를 아는 기업은 영악했고, 국가는 무능했다. 같은 환경 속에서 현장 작업자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물류센터, 존중이 없는 공간

 

“물류센터 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물류에 대한 인식입니다” 물류센터에서 다년간 일한 A씨가 바라본 현장은 인식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A씨가 말하는 인식은 단순히 외부인들이 바라보는 물류산업에 대한 시각을 말한 게 아니다. A씨에 따르면 오히려 적은 내부에 있었다. 물류가 뜬다고 이야기 되는 세상에, 그가 바라본 현장에서, 위에 있는 누군가가 바라보는 물류업무는 여전히 ‘비용’이었다.

 

물류는 ‘비용 최소화’라는 명제가 부여되는 순간, 현장 환경은 더더욱 열악해진다. 예컨대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현장 작업자들이 근무하기 위해 필요한 소소한 비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비품 하나하나는 결제를 담당하는 누군가에게 있어 ‘불필요한 비용’으로 취급된다. 결국, 현장 작업자는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구입해서 쓰거나 혹은 근무환경의 열악함을 그대로 감내해야 한다.

 

당연히 현장 작업자의 의욕은 저하된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가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은 작업자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 속에서 작업자는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A씨가 일했던 현장에서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류 시스템의 고도화는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 중에 작업자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회사가 현장 작업자에게 보내는 신호는 뚜렷했다고 한다. 물류센터 현장의 숙련도가 불필요하다고, 혹은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는 현장 작업자는 필요할 때마다 충원하고, 필요할 때마다 잘라내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래서인지, 현장 작업자도 회사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업무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흩어진다. 이야기는 해봤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포기한 것이다. 그 아이디어를 수행하는 데 ‘돈’이 드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혹여, 다년 간 업무경험을 통해 숙련도를 쌓은 현장직원이 있어도 회사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장의 숙련도는 학력과 같은 계량화된 지표와 무관함에도, 그러한 지표가 없으면 애초에 인정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이 쌓이고, 숙련도가 올라간 작업자라도 언제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 생긴다. 회사부터 현장 인력을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니, 현장 작업자 또한 회사와 장기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작업자의 이동에 따라, 현장에 쌓였던 경험과 숙련도는 지속되지 못하고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에서 현장 작업자가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고 A씨는 말했다. 소소한 것, 예를 들어 추석 선물 같은 것이 그렇다. 일반직원 뿐만 아니라 물류센터의 현장 작업자에게 똑같이 추석 선물을 주기만 해도, 현장 작업자의 사기는 올라갈 수 있다. 단순히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똑같은 회사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한 번 돌아와 ‘인식’이 중요하다. 차라리 외부에서 현장 물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작업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 현장에서 비품, 명절 선물, 그리고 업무에 대한 인정. 소위 본사 직원과의 차별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현장 작업자는 업무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 A씨가 느꼈던 물류센터 현장은 ‘존중이 없는 공간’이었다.

 

선원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선원을 위한 복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사고를 나와 병역특례로 선원생활을 했던 B씨의 말이다. 그가 말한 해상 현장은 한마디로 ‘치외법권의 영역’이었다. 법은 있으나 유명무실했다.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선원도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를 써야 한다. 그러나 B씨가 말한 내용은 달랐다. 그가 말한 선원의 해상 계약은 일단 구두로 계약을 한 뒤, 승선부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승선 후에 받은 계약서는 구두로 합의한 내용과 달라져 있다. 기본급을 비롯한 월급이 구두계약보다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배에 승선한 선원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결국, 달라진 계약서대로 선원 생활이 시작된다.

 

달라지는 건 월급만 있는 게 아니다. 근무시간도 처음 계약과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B씨는 말했다. 하루 10시간, 심지어 12시간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혀 있는 근무시간은 8시간이다. 선원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8시간 근무를 지켰다는 문서에 서명한다. 그렇게 배 안에서 땀을 흘렸던 시간은 바다 속으로 잠겨버린다.

 

나아가 B씨의 주장에 따르면, 배에서 내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분명 승선에 대한 계약기간이 있음에도, 그것을 넘기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선원이 내리면, 대체할 사람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선사 측은 교대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원을 내려주지 않는다. 결국, 몇 개월 이상 추가적으로 배 위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강요된다.

 

망망대해 위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심각한 안전사고의 경우, 배 안에 있는 위성전화로 구조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큰 회사가 아닐 경우에는 실제로 구조신호를 보내는 일이 드물다고 B씨는 말했다. 구조요청만으로 끝나지 않고, 사고에 대한 조사를 받고 보험료가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피해는 선원이 고스란히 부담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오래전부터 지적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개선되지 않은 것일까. 이에 B씨는 정부기관이 하는 일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로 정부에서 하는 일은 문제를 조사하고, 이에 대해 벌금을 매기는 일이다. 그런 역할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선원이 겪는 현장의 열악한 점들을 개선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끝으로 B씨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제도 및 기관의 설립을 원했다. 요컨대, 선원의 복지를 전담하는 기관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유사한 기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B씨는 그런 기관들은 현장에 대해 모르거나, 현장을 바꿀 능력이 없다고 여긴다.

 

담당 공무원에게 B씨가 직접 관련 법 조항을 알려준 사례도 알려주었다. 의아한 B씨에게 공무원은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담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B씨는 바란다. 현장의 작은 것 하나에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더는 해상 현장이 치외법권인 상태로 머물지 않기를 말이다.

 

배달에 미친 나라

 

퀵서비스 라이더를 20년 넘게 하다가 최근에 퀵서비스 업체(퀵사) 사업주가 된, C씨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줄 아십니까? 배달에 미친 나라에요!” 그는 당장 2차선 도로만 봐도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매일 같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는 달랑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운전하는 10대도 있다. 바로, 배달대행을 하는 젊은이들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만 16세가 되면 원동기 면허를 딸 수 있다. 그렇게 이제 막 면허를 딴 10대들이 배달대행으로 몰려온다고 C씨는 말했다. 그렇게 들어온 배달대행으로 버는 돈은 건당 2500원에서 3000원이다. 그런데 같은 오토바이를 탄다고 하더라도 퀵서비스의 건당 비용은 최하가 5천원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배달대행의 인력은 몇 년이 지나면 퀵서비스 인력시장으로 진입한다는 게 C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배달대행과 퀵서비스는 전혀 다르다고 C씨는 주장한다. 배달대행은 제한된 거리에서 음식과 같은 특정 상품만을 운송한다. 그러나 퀵서비스는 거리에 제한이 없다. 운송하는 품목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C씨의 주장에 따르면 퀵서비스는 전문화된 이륜차 화물운송 서비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배달대행을 하는 젊은이가 퀵서비스 기사로 전직을 할 때, 아무런 진입장벽이 없다는 것이 C씨의 아쉬움이다.

 

그리하여 퀵서비스 인력시장은 인력이 끊임없이 수급된다. 그러나 퀵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일정량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퀵서비스 오더를 얻기 위한 퀵라이더들의 경쟁은 격해진다. 당연히 서비스 단가는 내려간다. C씨는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20년간, 퀵서비스 단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퀵서비스는 때로 ‘라이더가 많은데 라이더가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본 기자가 C씨를 찾아간 날은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9월 말이었다. C씨는 퀵서비스 사업주임에도, 저녁 8시까지 직접 퀵서비스 기사로 활동했다. 사무실에서 받은 퀵서비스 주문을 이행할 기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퀵 수요가 늘어나,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오더를 ‘가려서’ 받기 시작해서라고 한다. 평소에 단가가 만원이라면, 이제는 최소 15,000원 이상을 제시해야 주문을 받는다. 여기서 영업의 주체인 퀵서비스 업체는 정기적으로 단가계약을 맺고 주문하는 고객에게 성수기 추가 비용을 청구하기 어렵다. 결국 추가 비용만큼 사업주가 손해를 보거나, 직접 배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명절이 끝나면 입장은 정반대가 된다. 퀵사 사업주는 명절에 받은 손해를 메꾸고자 기사에게 지급하는 단가를 낮춘다. 그럼에도 기사는 거부할 수 없다. 서비스 공급자인 퀵라이더들이 과열 경쟁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 건의 오더를 받기 위해 500명이 달려드는 시장이 퀵서비스라고 C씨는 말했다.

 

그래서 C씨는 이륜차 화물운송에 대한 규제를 주장했다. 이륜차 화물운송을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륜차 화물운송을 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과 자격을 만들고, 진입하는 인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이루어져야 기형적인 인력시장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C씨가 원하는 나라는, “아무나 배달하지 않는 나라”였다.



박대헌 기자

좋은 콘텐츠는 발견되어야 한다.
페이스북브런치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