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주먹구구 콜드체인, ‘기본 레시피’ 만든다

by 양수정

2017년 09월 19일

자신의 상황에 맞춘 표준화 아닌 전체 합의에 근거한 표준화 이뤄져야

단체표준, 콜드체인의 '객관적 평가 기준' 역할 기대

콜드체인 냉동냉장물류

 

글. 양수정 엔로지스 CEO / 박정수 탑경영연구원 대표

 

지난 기고에서 국내 신선·저온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증가하고 있지만, 업계 전반에 물류 표준화와 체계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왜 표준화해야 할까. 표준화는 포장, 창고보관, 운송방식, 전산화 등의 운영상 기준점 역할을 한다. 만약 한 업체의 물동량이 증가하더라도 이러한 기준점만 튼튼하다면, 물류를 일관되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류비를 낮춰 물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신선식품의 조달에서부터 물류, 유통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준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장 수요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표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전체 합의에 근거한 미래 지향적인 업계 혹은 국가 차원의 표준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체 합의’다. 자사의 현황만을 고려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기나 설비를 기준으로(혹은 부분 합의에 의한) 표준화를 시도한다면, 시장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 하는 결과는 낳게 될 뿐이다. ‘부분 합의’에 근거한 표준화는 오히려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기도 하며, 이에 따라 애써 구축한 표준화 설비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비(非)표준화가 초래하는 문제들

 

실제로 국내 콜드체인 관련 표준화 수준은 낮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제품을 담아 유통한 뒤 회수하는 플라스틱 용기를 사례로 들어보자. 국내 유제품의 규격은 거의 표준화가 돼 있다. 그러나 용기 규격은 각 업체마다 다르게 정해져 있다. 또한 업체들은 각각의 제품마다 다른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 보니 배송 차량에 제품을 적재하여 운반할 때 정합성과 적재율이 떨어지거나 파손율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제3의 외주업체에 물류를 위탁하여 운영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유제품 제조사마다 서로 다른 용기 규격과 색상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류업체는 제조사가 빈 용기를 원활히 회수할 수 있도록 용기를 회사별로 구분해 정리·관리해야 하는데, 그러면 용기 관리에 많은 시간과 공간이 소요돼 물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체와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는 제3의 물류 위탁업체는 제조업체의 소유물인 빈 회수용 용기 관리에 소홀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유통업체의 비용 손실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사례는 화장품이나 음료 업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라는 업체가 적재와 보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파레트(Pallet) 규격에 맞는 자동화 창고를 구축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업계에서는 A업체 자동화 창고용 파레트가 아니라 표준 파레트에 제품을 적재하여 납품해주기를 원한다. 결국 A업체는 생산한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표준 파레트에 이적(移積)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혹은 자사 자동화 창고의 파레트 규격과 시장에서 요구하는 표준 파레트 규격이 상이한 까닭에 사전에 제작된 제품을 자동화 창고에 보관하지 못하고 평치 공간에 임시 적치해야 하는 문제를 맞이할 수도 있다.

 

물류 운영 프로세스에서도 우리의 표준화 인식 정도와 활용도는 많이 부족하다. 예컨대 유통가공업체는 유통업체의 요구에 따라 제품이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순차적인 매뉴얼에 따라 작업이 이뤄지고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 프로세스는 미비한 상황이다. 이러한 탓에 유통업체는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이는 결국 납품 후 반품이나 소비자 클레임 및 리콜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 유통가공 제품의 제작을 위한 재고관리 프로세스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행착오 비용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다.

 

국내에서 저온 제품을 취급하는 배송차량의 경우에도 적재함의 표준 규격이 아직 없다. 때문에 제작 업체가 자사의 특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적재함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열 정도와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양을 파악하기 어렵다. 시급히 국가적 차원의 표준 규격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적재함 내 온도 유지에 용이한 소재의 연구 개발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 필요하다.

 

전체는 보는 눈이 필요하다

 

표준화 미흡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와 같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표준화 시행 시 반드시 시장 전체의 트렌드와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글로벌 환경에서 국제 표준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왜일까. 국가적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국가 표준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또 왜일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규정이 지켜지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에서일까. 결국 통용되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부분 합의에 의한 표준화는 지양돼야 한다. 대신 시장의 트렌드와 흐름을 반영해 전체 합의에 근거한 국가 차원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표준화로 얻게 되는 이익과 효율성 증대 효과가 더 커진다. 현재의 트렌드와 흐름을 반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예상되는 시장의 변화까지 고려해 표준화를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겠다.

 

물류를 위한 표준은 없다

 

서두에서 표준화를 튼튼한 기준점이라 표현했다. 기준이 있어야만 평가를 할 수 있다. 가령 콜드체인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가운데는 자사만의 전략과 노하우, 매뉴얼화 작업 등을 통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 스스로 과도한 물류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올바른 방법으로 콜드체인 관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해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현재로선 그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썹(HACCP),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등의 인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해썹의 적용 의무화 대상은 주로 제조업이며, 적용 카테고리 역시 축산물 중심이다. 가령 농산물이나 과일을 취급하는 물류센터가 해썹 인증을 얻기 위해서는 상품의 특성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식품의 위생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의 기준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더욱 필요한 것은 상품 특성에 맞으면서도 운영 부담은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기준이다.

 

다시 말하면, 제조업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해썹 규정을 보관이나 관리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보관이나 관리에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현업에서 물류 업무를 수행하고 제품을 보관할 때 상황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고, 정해진 기준과 매뉴얼에 따라 제품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을 만들어 이를 현실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체표준, 콜드체인 표준화 첫걸음

 

한편 한국콜드체인식품협회는 저온 제품의 보관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내용을 정리한 표준 요구사항을 준비하여 단체표준 신청을 마친 상태다. 단체표준이란, 요리로 치면 ‘기본 레시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밥을 짓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밥을 처음 짓거나 혹은 자신이 밥을 짓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다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레시피는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콜드체인 운영에 관한 단체표준이 그러한 레시피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기대한다.

 

현재 콜드체인 물류센터 운영에 관한 단체표준이 신청됐고, 정부기관이 이를 단체표준으로 제정하기 위해 심의 중에 있다. 향후 단체표준이 제정되면, 현업에서 활용이 용이하도록 조금 더 자세하고 체계적인 관리 방법을 담은 매뉴얼 책자도 출간할 것이다. 해당 자료는 그동안 일정한 기준이나 매뉴얼 없이 자의적이고 각자의 환경 여건과 조건에 맞게 일관성 없이 이뤄졌던 보관상의 관리 방식을 체계화함과 동시에 지켜야 할 사항을 명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제품의 균질한 품질 유지와 유통기한 관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단체표준이 제정되면 현재 수준을 계량화하고 모니터링 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기업 간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밑바탕이 될 것이고, 나아가 물류업체와 유통업체, 그리고 실사용자인 소비자 사이의 신뢰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체표준은 고객중심의 전략을 수립하고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며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단체표준은 콜드체인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콜드체인 비표준화로 인한 문제는 무엇이며, 어떤 방향에서 콜드체인 표준화가 이뤄져야 하는지, 콜드체인 표준화로 인한 효과는 무엇인지 등을 차례대로 살펴봤다. 국내 식품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아직은 콜드체인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하기 힘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콜드체인이 적용되는 범위와 시장의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자만이, 고객이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하는 자만이, 그리고 거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양수정

성남에 위치한 엔로지스 신선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국가표준기술력 향상사업의 신선물류(Temperature controlled supply chain technology)국제표준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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