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지난 7월 27일 카카오뱅크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은행 산업은 정부의 규제와 보호 속에서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모든 은행의 내부 프로세스는 대동소이했고, 따라서 고객도 어떤 은행을 선택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건 은행 간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뱅크가 인터넷은행, 온라인 전용 은행으로서 시장에 참여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카오와 한국투자금융지주, 국민은행이 주요 주주인 카카오뱅크는 영업 개시 첫날 30만 좌, 5일 만에 100만 좌, 한 달 만에 300만 좌의 신규 계좌 건수를 기록하며 기존 은행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수요가 애초 예측을 크게 상회하면서 서비스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고객 불만도 늘어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카카오뱅크가 장기적으로 성공할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카카오뱅크의 단기적 성과가 기존 은행을 크게 긴장시킬 만한 수준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카카오뱅크 돌풍의 원인은
카카오뱅크 돌풍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원가경쟁력과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우선 원가경쟁력을 살펴봅시다. 카카오뱅크는 오프라인 지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운영비용이 기존 은행에 비해 적게 들고, 이것이 곧 원가경쟁력 제고로 이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뱅크는 향후 인터넷은행의 특성을 활용해 원가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존 오프라인 은행과 달리 인터넷은행에선 고객의 모든 활등이 모바일 앱을 통해 이뤄집니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카카오 플랫폼과 연계해 고객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출 리스크를 줄여 낮은 금리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 관련 이슈와 카카오 플랫폼이 메신저 서비스에 치우친 점이 한계로 작용할 여지가 있어 카카오뱅크의 원가경쟁력 확보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카카오뱅크의 원가 경쟁력 확보는 카카오 플랫폼을 유통 및 물류 등 실물 경제와 얼마만큼 연계하고 여기에 데이터를 얼마나 접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가경쟁력이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데 핵심 동력이었다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은 카카오뱅크의 고객 기반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존 오프라인 은행도 웹이나 모바일 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카카오뱅크는 이들과 또 한 번 차별화된 메뉴 구성 및 프로세스 설계로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가령 기존 은행의 웹/모바일 서비스를 사용할 때는 매번 공인인증서를 인증해야만 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경험이 오프라인 서비스 경험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반면 카카오뱅크는 공인인증서 인증을 최대한 줄이고 지문이나 패턴 입력을 통해 로그인할 수 있는 등의 새로운 서비스를 대폭 도입했습니다. 또한 카카오뱅크를 이용하는 고객은 대출부터 송금까지의 모든 서비스에 단순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비스에 가입 후 상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용자 경험은 카카오뱅크의 고객 기반 유지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불확실한 상황, ‘린’하게 대응하자
카카오뱅크가 출시되고 돌풍이라고 할 만한 인기를 끌면서 이와 관련된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왜 기존 은행은 이제껏 전통적인 서비스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사용자경험 측면에서 혁신을 하지 못 했는가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IT에 관심이 많은 모 은행은 서비스에 대규모 투자를 했음에도 카카오뱅크보다 편리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내부 프로세스 재설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카카오뱅크의 혁신에 추진제가 된 걸까요. 또 무엇이 기존 은행이 혁신하는 데 발목을 잡는 걸까요. 카카오뱅크의 사례를 보며 성공적 혁신을 가능케 하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미 규모의 경제를 구축했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도 있는 대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로 무장한 혁신기업과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 반대로 혁신기업은 어떻게 시장을 선점한 전통 기업과 경쟁할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카카오뱅크와 기존 은행 간의 경쟁에서 시야를 조금 더 넓혀,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도전자와 기존 시장을 지키려는 리딩 기업 간에 벌어지는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다양한 방법이 거론될 수 있겠습니다만, 필자는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린 스타트업 방법론’과 ‘디자인 사고(디자인 씽킹: Design Thinking)’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린 스타트업은 에릭 리스(Eric Ries)의 2011년 저서 <린 스타트업>에서 나온 혁신의 방법론입니다. 에릭 리스는 시장 상황이 안정적이고 고객의 요구사항이 명확하다면 전통적인 혁신 방법론이 유효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쳐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는 전통적인 혁신 방법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도요타 자동차의 성공을 이끈 ‘린 제조’의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에도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론을 은행 산업에 접목시켜 보겠습니다. 모바일 환경이 정착하기 전, 전통 은행은 충분한 시장 조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왔습니다. 탄탄한 경험과 노하우에 기반하여 프로세스를 조금씩 개선해 나감으로써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모바일 비즈니스가 제조 및 유통 산업 등에 널리 활용되면서 은행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요컨대 고객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고, 시장을 이끄는 확실한 선도기업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전통적 방식의 점진적 개선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한편 린 스타트업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제품 혹은 서비스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시장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이를 신속하게 개선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린 스타트업은 철저한 시장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방향 혁신 프로세스의 반대말로서, ‘유연함’과 ‘스피드’에 중점을 두고 제품 개발 및 피드백, 개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개념입니다. 즉 어떤 서비스나 기능이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시장에 다양한 서비스와 기능을 출시하고 테스트함으로써 방향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입니다.
린스타트업의 다섯 가지 원칙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조직 문화가 필요하고 조직 내에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하며 매끄러운 협업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각자의 업무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된 기능 단위의 경직된 조직에서는 부서 간 협업이 어렵고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해, 에릭 리스는 린 스타트업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첫째, 창업가는 어디에나 있으며, 소규모 회사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업은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 둘째, 창업가 정신은 관리다.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의 성공은 새로운 방식의 관리를 필요로 한다. 셋째, 스타트업은 돈을 벌고 서비스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고 학습하기 위해 존재한다. 넷째, 만들고 측정하고 배운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피드백이 최대한 빨리 순환돼야 한다. 다섯째, 혁신을 측정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데 있어 새로운 측정방식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불확실성 아래에서 혁신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스피드와 유연함, 그리고 피드백 순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의하고 각 과정을 단계별로 진행하는 순차적 혁신 프로세스를 피드백 순환에 기반한 병렬적 혁신 프로세스로 전환하는 게 중요해졌고, 린 스타트업 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 연구되고 현장에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감으로 혁신을 디자인한다
이처럼 린 스타트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널리 활용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혁신 방법론은 논리적 사고(로지컬 씽킹: Logical Thinking)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논리적 사고란 정량적 분석에 기반하여 고객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이를 기능 및 프로세스 설계에 접목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논리적 사고는 정교한 분석 방법으로서, 순차적 혁신 방법론이 무리 없이 진행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반면 디자인 사고는 논리적 사고에 빠른 피드백 순환과 고객에 대한 공감을 덧붙입니다. 오랜 기간 프로세스 및 서비스를 혁신하는 데 논리적 사고가 주로 사용돼 왔습니다만, 논리적 사고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혁신을 이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객이 어떤 서비스와 품질 항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지를 정략적 분석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대안으로서 디자인 사고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디자인 사고는 불확실성 아래서 제품을 빠르게 디자인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테스트함으로써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디자인 사고의 방법론은 크게 공감(Emphasize), 정의(Define), 아이디어 도출(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의 단계로 구성됩니다. 디자인 사고는 아이디어 도출에서부터 프로토타입 제품 생산, 피드백을 통한 개선을 빠르게 반복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혁신 방법론과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나 디자인 사고가 기존 혁신 방법론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공감’이라는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사고에서 공감은 사람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논리적 사고를 활용한 전통적 혁신 방법론의 ‘요구사항 분석 단계’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구사항 분석과 달리 공감의 단계에서는 서비스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문제점에 그야말로 '공감'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례를 통해 그러한 차이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패드가 시장에 처음 나오던 시점에 많은 컴퓨터 제조업체는 어떻게 노트북 자체를 개선할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디자인 사고 방법론에 입각해 소비자가 노트북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에 더 집중했습니다. 즉, 기존 컴퓨터 제조업체가 더 빠른 CPU, 더 많은 액세서리, 더 가벼운 무게 등에 집중할 때 애플은 노트북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가 노트북을 통해 얻는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애플은 소비자가 겪게 되는 어려움과 문제에 공감하고 그 부분을 개선·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장난감이 시장에 등장하며 위기에 빠졌던 레고도 디자인 사고 방법론을 활용해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레고는 2000년대 초반 경쟁 장난감 제조사와 경쟁하기 위해 레고 제품수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고, 경영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레고는 혁신을 위한 질문을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가’에서 ‘아이들은 왜 노는가’로 바꾸고, 아이들의 놀이 과정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세스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근본적인 공감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것입니다.
스피드, 유연함, 그리고 사람
린 스타트업 방법론과 디자인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고민과 공감입니다.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는, 사람에 대한 고민과 공감을 바탕으로 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빠르게 구현 및 수정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스피드와 유연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도전자와 기존 시장을 지키려는 리딩 기업에게 모두 필요합니다.
4차 산업이라는 단어가 매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며 기업이 미래 비즈니스 환경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통이나 물류, 제조산업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존의 점진적 혁신으로는 시장을 방어하거나 확대하는 데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확실성 아래서는 기존과 다른 혁신 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대학교 전문가 교육 과정, 기업의 혁신 프로세스 모두가 새로운 시대의 방법론으로 재설계돼야 할 시점입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홈플러스그룹, POSCO, CJ대한통운, 현대엠앤소프트 등 제조, 유통, 물류 분야의 기업들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였고, 삼성전자, LG전자, CJ제일제당,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생산성본부, 국군수송사령부 등과 함께 SCM 및 물류혁신 관련 교육을 진행하였다. Marquis Who's Who, IBC 등 인명사전 등재 및 논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관심분야는 SCM 최적화, 물류 및 유통 혁신, 위치 기반 서비스 및 네비게이션 최적화 등이 있다.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