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이성일의 콜드체인로드] "EPS 대안 찾아라", 마켓컬리 에코박스 탄생기

by 이성일

2017년 07월 24일

환경오염 주범 스티로폼(EPS) 대안 찾아서

장기적 무형의 가치에 중점 두는 기업철학이 종이박스 도입 가능케 해

신선식품

글. 이성일 마켓컬리 로지스틱스 리더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포장재와 관련된 고민을 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현재 온라인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에 주로 사용되는 포장재는 EPS(Expanded Polystyrene: 발포폴리스티렌) 박스다. 쉽게 ‘스티로폼’ 박스라고 생각해도 좋다.

 

EPS, 무엇이 문제인가

 

EPS는 탄화수소 가스를 폴리스티렌 수지에 주입한 후 증기로 부풀린 발포제품이다. 제품의 2%만 폴리스티렌 수지이고, 나머지는 공기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EPS 박스는 원가가 낮고 단열 기능은 뛰어나다. 하지만 문제는 EPS가 매립되고 자연분해 되기까지 약 5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PS 박스는 크기도 크다. 이런 까닭에 EPS 박스는 환경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EPS가 환경에 끼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2003년 스티로폼 재활용을 법률로 지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장려했다. 그 결과 2013년 기준 총 3만 4,170톤의 스티로폼이 재활용되기도 했다.(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발표 기준) 이는 2013년에 사용된 스티로폼 총량의 76%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정부 차원의 노력이 스티로폼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막는 데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스티로폼이 찬밥 신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 유가 및 인건비 변동 추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스티로폼의 수거 및 불순물 제거는 재처리 업체가 담당한다. 재처리업체는 스티로폼을 수거하고 불순물을 제거한 뒤 일정 온도에서 녹여 ‘플라스틱 잉고트(Ingot)’를 만들어낸다. 폐스티로폼을 녹여 만든 가래떡 모양의 플라스틱 잉고트는 이후 가공 과정을 거쳐 액자나 건축 자재로 재생된다. 그리고 그동안 플라스틱 잉고트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 유가가 떨어지고 인건비가 낮은 중국 폐스티로폼 재활용 업체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라스틱 잉고트 수출에 차질이 생겼다. 즉, 새 플라스틱 원재료를 사용해 스티로폼을 만드는 것이 스티로폼을 수거하고 인건비를 들여 겉에 붙은 테이프 등의 불순물을 제거해 재활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해진 것이다.

 

그 결과 재처리 업체는 폐업하거나 스티로폼 수거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고객 편의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재처리 업체가 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함에 따라, 스티로폼의 재활용은 불가능해졌다. 일부 고객은 스티로폼 박스를 잘게 부수어 종량제에 버리기도 한다. 결국 신선식품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를 처리할 때의 번거로움은 온라인을 통해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스티로폼 벗어나기, 에코박스v.1의 탄생

 

마켓컬리의 CRM(고객관계관리)을 담당하고 있는 CC(고객커뮤니케이션)팀은 이러한 문제를 발 빠르게 감지하였다. 2016년 판매량이 급격히 올라갔는데, 이와 함께 스티로폼 박스가 고객의 불만사항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마켓컬리는 포장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가격은 낮고 보냉력은 우수한 스티로폼 박스를 대체할 만한 포장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1월, 출고량이 일 7,000상자 수준이 되자 더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미룰 수 없었다. 마켓컬리는 즉시 운영전략팀 내에 TF팀을 구성했다.

에코박스v.1, 마켓컬리

▲ 에코박스 v.1의 모습. 에코박스 v.1이 출시되기 전, 온도 유지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실험했다. 포장재 프로젝트를 주관한 패키지 TF팀의 허소영 PO(Project Owner)에 따르면, 상품별로 유지되어야 하는 최소 온도와 최대 온도를 정해 외부 온도를 다르게 하면서 박스 내부의 온도와 상품의 온도를 측정했다. 만약 정해놓은 온도에서 벗어나면 냉매를 추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온도를 조절했다. 

 

TF팀의 목표는 명확했다. 지속적으로 운영 가능한 비용 범위 내에서 보냉력, 환경 문제, 고객 편의성 등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포장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프로젝트 구성원은 전국을 다 뒤졌다.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회의를 한 결과 재활용율이 높은 ‘종이박스’로 의견이 모였다.

 

문제는 보냉 기능과 온도차로 발생하는 결로에 대한 방수 기능이었다. 마켓컬리는 종이박스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박스 내부에 특수 소재를 코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종이 원단과 코팅 원단을 합지하는 기술이 있는 파트너사를 찾아 제작에 들어갔다. 한 달간의 디자인 보완을 거쳐 마침내 에코박스(ECO BOX)v.1이 탄생하였다.

내부코팅, 에코박스

▲ 에코박스v.1의 내부가 코팅된 모습

 

사실 에코박스를 도입하는 데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비용’이었다. 에코박스는 같은 용량의 EPS 박스에 비해 2배 정도 비쌌다. 비싼 가격은 에코박스의 전면 도입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긴 시간의 회의 끝에 마켓컬리는 ‘장기적인 무형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자는 결론을 내렸다. 에코박스가 물류센터를 차지하는 면적이 EPS 박스 대비 1/4인 점, 환경이 보존돼야 좋은 먹거리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는 마켓컬리만의 철학,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를 사용함으로써 의식 있는 잠재고객들이 유입되고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당장의 비용 대신 장기적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에코박스와 마켓컬리가 추구하는 철학적 방향은 일치했고, 그래서 마켓컬리는 에코박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분리배출, 에코박스, 마켓컬리

▲ 에코박스는 접어서 분리배출 가능하다.

 

에코박스v.2, 보냉력을 보완하라

 

에코박스v.1을 출시하기 전, 300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테스트도 진행했다. 두 달 동안 해당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에코박스에 담아 배송했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제작에 반영했다. 가령 종이상자에 붙은 송장을 떼기 어렵다는 의견을 반영해 송장 아래에 접착력이 약한 스티커를 붙여 송장을 쉽게 뗄 수 있도록 만들었다.(마켓컬리는 향후 마켓컬리의 홈페이지에 포장에 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 박스 관련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을 예정이다.)

 

마켓컬리는 4월 5일 식목일에 맞춰 에코박스v.1을 출시했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고객들과 유통 관계자들이 각종 SNS를 통해 응원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에코박스v.1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외부온도가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보냉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겨울이나 봄, 가을철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에도 외부온도가 25도 이상으로 오르는 하절기에는 에코박스v.1이 상품의 품질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에 착안해, 마켓컬리는 에코박스v.1을 기획할 당시 곧바로 두 번째 버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내부 코팅 원단을 보다 두껍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중 마켓컬리는 써모렙코리아라는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게 되었다. 써모렙코리아는 2017년 1월에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친환경 포장재를 연구·개발하여 생산하는 업체였다. 써모렙코리아와 처음 만났을 당시 써모렙코리아는 제품을 정식으로 양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켓컬리는 써모렙코리아가 가진 제품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이 마켓컬리와 일치하며, 써모렙코리아가 충분한 제품 R&D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는 합심하여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수많은 미팅이 열렸고, 써모렙코리아의 자체 실험 결과가 마켓컬리의 제품과 적합한지에 대한 실험도 한 달간 진행됐다.

 

이후 써모렙코리아의 생산시설이 완비돼 충분한 양의 제품을 납기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에코박스v.2가 완성되었다. 다행히 모든 일정은 온도가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5월 15일 이전에 마무리되었다. 마켓컬리는 5월 16일 곧바로 에코박스v.2를 출시했다. 이 과정에서 써모렙코리아의 의견을 받아들여 두꺼운 코팅은 뜯어지기 편하게 합지하여 분리배출의 용이성을 높였다.

에코박스v.2, 마켓컬리▲ 에코박스 v.2의 모습과 단면도

 

에코박스는 아직도 배고프다

 

에코박스는 EPS 박스보다 가격은 높은 데 반해 보냉력은 약간 떨어진다. 때문에 에코박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환경을 고려하려는 기업 철학이 필요하다. 박스가 노출되는 외부의 온도도 낮게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마켓컬리가 냉장 차량 등의 콜드체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 주문 마감부터 배송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8시간 이내라는 점, 배송시간이 선선한 새벽 시간대라는 점 등의 이유로 마켓컬리는 에코박스를 포장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에코박스v.3 개발은 계속될 것이다. EPS 박스를 근본적으로 대체하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켓컬리뿐 아니라 일반 택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박스를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 환경을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포장재와 관련된 많은 스타트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이, ‘기업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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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seongil.lee@kurly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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