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명이 물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데 반대하는 이유
기술개발 패러다임, 비용절감에서 근로자 편의 향상으로 바뀌어야
글. 이성일 마켓컬리 로지스틱스 리더
지난 5월엔 특히 연휴가 길었다. 더구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항상 조직구성원의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는 휴식을 취하며 가족들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데, 다른 누군가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한다. 참 고되고 씁쓸한 일이다. 근로자에게 대체 휴무나 추가수당 등의 방법으로 근로에 따른 보상을 한다 해도, 그들의 불만이 완벽하게 충족될 수는 없다.
이는 봄비가 살랑살랑 내리는 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떠올리는 한가한 감상이 아니다. 현재 물류업계가 처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다. 위와 같은 문제가 ‘물류는 3D업종’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고, 이는 다시 신규 근로자가 물류로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대한민국 전체가 일자리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방안을 찾고자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지금 물류업계는 사람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모순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물류 영역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복지와 처우를 개선하려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배송기사의 사고 보상에 취약한 이륜차 배달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송기사의 보험가입을 실시한 ‘메쉬코리아’나, 장기 근속자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하고 전국적인 감사 이벤트를 연 ‘마켓컬리’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반가운 소식을 적극적으로 실어 나르는 고마운 매체들도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물류에 덧씌워진 스테레오타입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현재 물류업계 전반에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인력부족 현상은 머지않아 물류업계 전체가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⓵ 이커머스와 O2O의 급격한 성장
그야말로 배송 전쟁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쇼핑을 할 수 있고,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배송기사가 집까지 배송해주는 시대가 찾아왔다. 오프라인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던 기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온라인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심지어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온라인 신선식품 분야에도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어 시장 규모를 넓히고 있다. 전통적 개념의 이커머스의 성장과 더불어 O2O서비스 업체 역시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커머스와 O2O의 급격한 성장으로 물류 인력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향후 온라인으로 전환할 오프라인 시장이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례를 보자. 14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은 택배 산업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 2015년 중국의 총 택배 수량은 200억 건을 넘었고, 2016년에는 320억 건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 수량을 실어 나를 인력이 부족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인구밀집 도시에서는 최대 보름까지 배송을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약 200만 명에 이르는 택배기사로도 소화하지 못할 만큼 택배 수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인력수급에 비상이 걸린 택배업체는 급하게 택배기사들의 임금을 대폭 올렸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배송서비스가 핵심인 이커머스 업체의 고민은 깊어졌다. 중국 1위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주문이 접수되는 대로 주변에서 배송이 가능한 전기자전거 소유자를 찾아 배송 업무를 맡기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또한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JD닷컴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배송망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배송망 확충으로 배송비가 조금 오르더라도, 안정적인 시간에 배송하는 것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택배 배송을 위한 이러한 노력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택배 배송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으며,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물류비용 인상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⓶ 인구 고령화
베이비붐 세대 이후 젊은 인구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국가를 지탱하는 근로자의 주 연령층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는 물류업계 인력부족의 또 다른 원인이 된다.
▲ 10년 이내에 한국도 인구 분포가 역 피라미드 형으로 변모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근로자 부족현상이 심화 될 것이다.(행정자치부, 2017년 3월 기준)
이번에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자.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시달리는 일본에서는 경제 활동 인구가 감소하며 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일본 택배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야마토운수는 그동안 꾸준히 늘어나는 택배물량에도 불구하고, ‘지정시간 배송’, ‘수령자 부재 시 원하는 시간대에 재방문’ 등 고객 편의를 높이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택배서비스의 질을 이전처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에 야마토운수는 택배 물량을 늘리는 것을 당분간 중단하고, 택배기사의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다. 또한 다른 택배사와 배송망을 공유하여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야마토운수는 소비자가 직접 택배보관소에 방문해 물품을 수령해 가는 비즈니스 모델도 내놓았다. 택배보관소 사업 ‘푸도(PUDO)’가 그 핵심이다. 야마토운수는 2022년까지 전국에 택배보관소 5,000개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던 택배보관소 설치 사업을 더욱 서둘러 우선 대도시에 올해 안에 2,500개의 택배보관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야마토운수는 다른 택배업체도 푸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택배함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야마토운수는 또한 IT기업 DeNA와 손잡고 기술혁신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일례로 야마토운수의 ‘로보네코 야마토’는 수령자가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입력하면, 물품을 실은 차량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 차문을 열고 기다리는 서비스다. 수령자는 대기하고 있는 차량의 뒤편에 탑재된 사물함을 QR코드로 열고 물품을 가져가면 된다. 로보네코 야마토는 배송기사가 운전업무만 수행하게 하여, 집 앞까지 상품을 배송하는 데 드는 노동력을 절감해준다. 야마토운수는 2018년부터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차로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는 테스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푸도와 로보네코 야마토의 주목적은 배송기사가 물품을 수령자에게 전달하는 기존 방식에서, 수령자가 물품을 직접 찾으러 오는 방식으로 택배 배달의 메커니즘을 바꾸는 데 있다. 물론 수령자가 수고로움을 분담하는 만큼 배송비 할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그럼에도 이는 지금껏 야마토가 유지해온 고객 편의를 극대화하는 배송서비스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도 택배보관소와 관련된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는데, 아직은 다양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⓷ 기술의 한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류업계가 인력난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커머스와 O2O의 성장보다는 일을 할 사람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탓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라스트마일(Last-mile)의 사례를 가져온 까닭은 소비자와 가까운 프로세스일수록 문제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라스트마일뿐만이 아니다. 재고관리(Inventory Management)와 주문처리(Order Fulfillment) 영역에서도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에는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현재 물류 자동화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등으로 이뤄지는 재고관리, DPS(Digital Picking System)와 DAS(Digital Assorting System)로 대표되는 주문처리, 라스트마일을 위한 차량별 분류 소터 등은 더 이상 고도화하기 힘들 만큼 자동화가 잘 되어있다. 즉, 현재 시점에 물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화 이후에도 필요한 인력들이다. 해당 영역에서는 아무리 자동화가 더 이뤄지고, 첨단의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인력을 줄일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인력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동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자동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영역을 자동화하는 것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시스템과 하드웨어를 요구한다. 때문에 이러한 영역을 자동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언제쯤 상용화될 지는 예측 불가하다.
가령 라스트마일 영역에서는 상품의 최종 전달 행위와 관련된 기술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최근 활발하게 연구 중인 자율주행차는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고객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이상 배송에 도입되기 쉽지 않다. 드론 배송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드론에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무게나 드론과 관련된 법률적 규제를 차치하더라도, 1회 비행 시 한 곳의 주문지에만 배송이 가능하다는 것과 마당이 없는 인구밀집 지역에 상품을 최종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상하차가 가능한 인간형 로봇이 상용화되어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해야만 현재 배송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자동화를 이룰 수 있는데, 이 얼마나 먼 미래의 일이란 말인가.
주문처리 영역에서는 박스형 상품을 낱개로 개봉, 개봉 후 폐박스 정리, 파손을 방지하는 1차 포장, 상태와 성질이 서로 다른 상품의 패킹 등 섬세한 수작업이 필요한 업무에 어떤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다.
재고관리 영역에서는 입고 시 상품을 검수하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등의 직관적 판단이 필요한 업무와 입고 후에 상품을 적치하는 등 장비를 구동하는 업무에 대한 자동화가 요원하다. 결국 기술로서 현재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것에는 당분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사람'
지금까지 물류산업이 겪고 있는 인력 부족 현상의 원인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이유로 AI와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며, 그 신호탄이 될 영역이 물류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 섞인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로 머지않은 미래에 물류산업은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인력 공급이 감소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결국엔 사람이다. 지금까지처럼 비용만을 줄이려는 기술 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근로자의 업무 편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자율주행차를 인력을 줄여 비용을 아끼는 데 쓸 것이 아니라, 운전 노동 강도를 줄여 배송기사가 배송서비스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유치하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이 노동 업무를 보조한다면 고령 인구와 여성 인구도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물류가 3D업종이라는 스테레오타입도 깨질 것이고, 이로 인해 훌륭한 인재들이 물류산업에 들어올 것이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 대기업의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