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양거봉의 이커머스 생존기] 정중동(靜中動)의 미학. 재고(在庫)에 관한 재고(再考) ①

by 양거봉

2019년 01월 29일

재고는 그저 '팔고 남은 것'일까? 내·외부적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

재고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물류가 앞장서야 하는 이유

 

글. 양거봉 팀프레시 OPS사업부 책임

 

 

동적 성격의 산업인 물류에서 재고는 유일하게 정적인 개념이다. 유통기한이나 변질에 의한 외부적인 요인을 배제하고 본다면 입고와 출고의 선행 업무가 이뤄지지 않을 때 재고는 변하지 않으며, 그만큼 선행조건에서 관리가 잘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그 결과 값인 재고 또한 별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보면 매 연말마다 혹은 분기나 반기마다 재고실사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고, 재고의 과다 혹은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타 부서와의 마찰이 끊임없다. 외부적으로는 가장 정적인 개념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가장 치열하게 움직이고 부딪쳐야만 하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 이번 기고문에서는 재고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1. 외부적 관점의 재고

 

1-1. 正 : 태초에 재고가 있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을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닭이나 달걀의 그 자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에 대해 늘 고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것을 풀어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물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닭과 달걀처럼 각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엇이 우선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이번에 다룰 주제인 ‘재고’에 관한 내용이다.

 

태초에 무엇이 먼저 있었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재고가 먼저 있었을 것이다. 재고 없이는 판매를 할 수 없고, 판매를 한다 해도 출고를 할 수 없으니 당연히 재고가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그 재고를 판매함으로서 커머스 사업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크라우드 펀딩 같은 특이한 형태가 있지만 이는 비용조달의 문제에 가깝다. 시제품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실물 공개 및 기능 시연을 진행하며, 최종 판매까지 이어진다는 관점에서는 역시 재고가 먼저 발생한다고 본다.)

 

흔히 입고-출고-재고의 순서로 표현 하지만, 출고가 없어도 입고가 끝나면 재고일 수 있고, 나아가 입고가 되지 않아도 대금 선지급으로 생산이 완료되었다면 생산 단위마다 재고가 증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흔히 ‘팔고 남은 것’이란 인식과 다르게, 재고는 물류의 가장 첫 과정에서 시작해 최후까지 남아있는, 물류의 알파와 오메가라 할 수 있다.

 

1-2. 反 : 모두의 교집합, 그리고 각기 다른 관점

‘재고란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물류의 다른 기능과는 다르게, 그 중요성이 물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특징이다. 때문에 가장 많은 이견이 발생하며, 각 부서마다의 관점에서 조율이 필요한 영역이다.

 

1. 재고는 곧 회사의 자산이다. 때문에 재고의 보유와 감가에 따라 회사의 보유자산이 수시로 변동되며, 재고의 보유수준에 따라 기업의 자금 유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재고를 보관, 관리하기 위한 고정비의 지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외부적으로는 회계 감사와 외부 투자검토 시 기업 업무능력평가, 가치 산정 등 중요 지표에도 큰 영향을 주므로, 현 재고 현황과 수불부의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2. 마케팅 및 판매관련 부서에서는 재고의 수량이 마케팅의 형태와 판매 기회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된다. 하나의 예시로 마케팅이 잘 이루어져 예상치 이상의 판매가 발생한다 해도, 충분한 재고가 보유되지 않았다면 생산지시-재입고-출고에 따르는 기간 동안 현재 판매의 완료는 물론, 후속 판매까지 진행이 불가한 상황이 되므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반복돼 지속적인 품절이 발생할 경우, 부정적 이미지가 누적되어 판매 기회의 손실이 발생하므로 마케팅과 고객관리 측면에서는 가능한 많은 재고를 보유하고자 한다. 이는 제품 뿐 아니라 고객 니즈에 맞춰 제작되는 부자재와 삽지, 증정품 등 비매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3. 물류부서에서는 재고가 공간 활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크로스도킹 형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류센터 구성은 보관ZONE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고량과 현재 인력의 규모에 따라 즉각적인 조정이 가능한 타 업무와는 달리, 재고는 보관량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계획 이상의 재고가 입고될 시, 타 용도의 공간까지 침범하므로 업무 효율성을 크게 저하시킨다. 이에 따라 소량의 재고를 지속적으로 보충하여 회전율을 높이는 방안을 선호하며, 부자재와 포장재 등 또한 필수 규격을 정해 보유량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각 부서 관점에서 보자면 동일한 재고라도 비용, 기회, 공간 등 각각의 업무적 관점에 따라 그 개념과 중요도가 다르다. 때문에 재고 관련 논의에 있어 각자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다 보니 늘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입·출고와 같은 타 업무는 물류의 고유적인 기능과 권한으로 움직이므로 실무자의 관점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재고의 경우는 물류의 권한보다 비용과 기회 관점에서의 발언권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기획-실무간 충돌은 필연적인 것이다.

 

1-3. 合 : S&OP

사실 이러한 충돌은 커머스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시기적으로 먼 과거부터 있던 갈등이다. 커머스에서는 대부분의 생산을 OEM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구매나 생산의 문제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생산·판매 업체의 SCM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충돌이나 의견 대립은 재고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더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 간 의견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기준 또한 없었기에 추후 문제 발생 시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해졌고, 때문에 전체적 관점에서의 운영이 아닌 부서 이기주의로 변질되는 악순환들이 반복됐다. 하여 경영진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과정 가운데 등장한 개념이 S&OP다.

 

S&OP에 대해 쉽게 풀어보자면, 영업-구매-생산-물류-재무 각 부서에서 판매 예측 및 결과를 바탕으로 피드백을 진행하고, 매월 계획에 대한 부서 의견을 취합하여 조정을 하는 협의체라 정의해볼 수 있다.

 

공격적 영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보수적 규모산정에 따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정 기구라 할 수 있는데, 데이터의 분석 기준이나 이를 토대로 한 인과관계의 판단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음으로 합의체의 세팅과 정착이 쉽지는 않지만, 각 부서간의 논의를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소통 채널이다.

 

물론 S&OP가 부서간의 관점을 일치시키는 만능 해결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자의 의견과는 별개로 실제 경험에서는 수십 가지의 제품에 대해 몇 달 간 S&OP를 진행했을 때 매우 큰 불일치가 발생했으며, 이에 대해 여러 부서에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적 관점에서 S&OP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류적인 관점이나 사고로 볼 수 없는 외부적 관점의 재고에 대해 충분히 듣고 고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류는 부진 재고의 발생이나 과다재고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내놓지만, 관점을 바꿔 본다면 판매와 매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부서는 아니다. 또한 물류의 확장은 절대 자체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판매의 증가 없이는 물류의 확장 또한 이뤄질 수 없다. 때문에 물류의 확장을 위해서는 물류 자체의 효율화와 기능의 고도화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판매 등 이익 실현을 위한 계획 및 그 계획 속에서 물류가 준비해야할 사항에 대해 알아야 한다. 병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고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고, 물류적 개선 방안을 먼저 제안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고정적이며 한정적인 보관 공간만을 활용 할 때 분명 어떤 결정은 불편을 초래할 것이며, 물류부서 구성원들의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재고 의견에 대한 결정 사유를 듣고 충분히 이해해야 하며, 프로모션 등 특정 시기나 운영 방식에 맞춰 물류 운영에도 변화를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S&OP에 대한 모든 의견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화를 먼저 시도해야하는 부서, 그리고 재고 변동에 대해 가장 잘 대응을 해야 하는 부서는 물류부서임이 틀림없다. 규모에 관계없이 물류의 앞단과 뒷단을 보조하는 부서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변화, 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앞서 말한 ‘각자의 관점’을 ‘회사의 관점’으로 통일하고자 함이다.

 

<다음 기고문에서 '2. 내부적 관점의 재고'로 이어집니다.>



양거봉

배달의민족과 미팩토리, 두 곳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물류업무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과 MD 등 다양한 부서와 물류팀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겪고, 또 해결해나가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물류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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