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공작의 화려한 날개는 구애의 수단인 동시에 다른 수컷들에게 견제 받는 원인이 된다.
산업 간 경계가 더 이상 무의미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물류를 품에 넣고자 하는 이종산업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온디맨드,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의 새로운 기술이 범람하는 지금, ‘물류산업’은 어떻게 새로운 경쟁을 준비해야 할까. ‘로지스틱스 포캐스트 2017(Logistics Forecast 2017)’에서 진행된 몇 가지 발표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어보자.
발표. 민정웅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 정리. 임예리 기자
물류, 이종산업의 침입을 받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2016년 한 해를 뜨겁게 달궜다. 그 핵심은 ‘가상공간(Cyber Space)’과 ‘물리적 공간(Physical Space)’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고, UCC와 웹2.0의 출현으로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사라졌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정치, 문화적 대변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역사를 통해 경계가 무너질 때마나 커다란 혁신이 일어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요컨대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역과 경계의 붕괴는 거대한 변화의 전조이다.
지금까지 물류산업은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내부적 요인에 의해 점진적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온 사회를 감돌고 있는 변화의 기운을 감지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해야만 한다.
물류의 본질과 변화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물류산업의 전통고객이었던 ‘유통업’이 물류산업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업의 본질은 크게 1)영감(Inspiration), 2)정보(Information), 3)공급(Supply)에 있다. ‘영감’은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어떠한 상품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객에게 알려 그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정보’는 고객에게 가격, 기능 등 제품과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급’은 제품 자체를 물리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유통산업의 본질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본질을 전달하는 ‘원천(Source)’이다. 과거에 상품 판매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던 ‘일반인’이 SNS를 통해 물건을 팔고 패션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유통업체가 아닌 새로운 주체가 소비자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공급의 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쇼핑 채널’의 확산으로 전통적인 물류업체를 통한 공급이 아닌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공급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소비 채널’과 쿠팡과 같은 ‘온라인 소비 채널’ 역시 ‘채널 통합을 통한 영감 제공’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소비자는 앞서 언급한 유통의 세 가지 본질을 얻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야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어떤 채널을 통해서도 해당 본질을 얻을 수 있다. ‘옴니채널(Omni-Channel)’이 유통의 새 트렌드가 된 것이다. 옴니채널은 쉽게 말하면,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자신이 어떤 채널을 통해 구매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것, 즉 단절 없는(Seamless)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핵심은 물류의 플랫폼화
아마존은 온라인을 기본으로 옴니채널을 구축한 대표적 기업이다. 온라인 쇼핑몰로 출발한 아마존은 현재 미국 5개의 오프라인 서점과 약 30개의 팝업스토어를 구축했다. 특히 작년에는 계산대가 필요 없는 마트 ‘아마존고(AmazonGo)’를 공개하며 오프라인 채널 강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아마존이 공개한 영상에서 아마존고 매장에 방문한 소비자는 계산대에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장에 들어와 휴대전화로 입장 확인을 하고 물건을 고른 뒤 들고 나가면 그것으로 쇼핑이 완료된다. 이 과정에서 계산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아마존이 단순히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해 아마존고를 들고 나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마존은 결국 ‘단절 없는’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절 없는 소비 경험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대응’ 역시 중요하다. 여기서 물류의 역할이 대두된다. 사실 이전까지 물류기업은 여러 기술을 개별적으로 도입해 물류서비스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즉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비즈니스와 새로운 산업영역에서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지 고민한 것이 아니라, ‘원가 절감’과 같은 내부 운영 최적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물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채널 간 경계가 사라지는 유통 채널의 변화가 ‘유통의 플랫폼화’를 낳은 것처럼, 물류산업에서 역시 ‘물류 플랫폼’이 필요하다. 물류 플랫폼은 각기 다른 고객에게 천편일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고객의 요구를 맞춰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제공해주는 개념이 돼야한다. 이를 위한 물류 플랫폼의 핵심은 다양한 시장 플레이어(Player)를 하나의 판 안에 모아두는 것이다.
아마존을 예로 들어보자. 아마존의 배송 옵션은 10가지 이상이고, 심지어 고객은 운송수단에 대한 메뉴도 직접 고를 수 있다. 하나의 물류 플랫폼이 마치 뷔페처럼 다양한 운송수단과 배송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뿐만 아니라 자사의 IT플랫폼을 이용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고객의 욕구를 분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업자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으는 것이야말로 아마존 물류 플랫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증가’가 필요해
요컨대 현재 물류산업에 필요한 것은 질적 증가가 아닌 ‘양적 증가’다. 단순히 배송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보다 다양한 배송 방식과 선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USB를 자유롭게 삽입하고 빼는 것처럼 물류산업이 제공하는 ‘운송’, ‘보관’ 등의 서비스를 다양한 옵션을 통해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물학적 자살’이라는 말이 있다. 날개가 화려한 수컷 공작새는 종족 번식을 위해 날개를 펼치지만 그 모습은 암컷뿐 아니라 천적인 다른 수컷들에게도 노출된다.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한 공작새의 선택이 자신의 생존에 치명적인 선택을 주는 것이다. 현재 물류산업이 처한 현실이 꼭 이와 같다. 다들 비용을 절감하고, 배송 속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만을 하고 있다. 물류가 이종산업의 침입을 받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고민에서 벗어나 서비스의 양적 풍성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류를 읽어야 미래가 보인다>
② 산업을 바꿀 4가지 비즈니스(http://clomag.co.kr/article/2174)
③ 완벽한 플랫폼의 조건(http://clomag.co.kr/article/2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