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사물함 발전 과정에서 기술이 중요한 이유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 무인사물함, 핵심은 기술
-. 택배 수령 및 반품의 거점으로 부상하는 무인사물함
글. 김정현 기자
Idea in Brief
지하철, 대학교 도서관, 빌라, 편의점, 회사 건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인사물함(보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택배물량이 증가하고, 맞벌이 부부, 일인가구가 증가하면서 택배원과 면대면으로 물건을 수령하는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택배를 수령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무인사물함이 하나의 물류 거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무인사물함을 거점으로 활용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무인사물함 산업은 성장기에 돌입했다. 과거 일본에 의존하던 국내 무인사물함 산업이 지금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무인사물함 산업의 핵심 역량인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
터미널에서 물품보관함을 사용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동전을 구하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다. 물품보관함 사용료는 크기에 따라 1000원과 2000원으로, 현금을 투입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동전을 많이 갖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전교환기를 찾는다. 하지만 경부선 영동선 터미널 내부를 통틀어 동전교환기는 1대뿐이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2003년 동아일보 기사 中)
과거 무인사물함을 떠올려보자. 2003년만해도 길거리에서 코인락커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동전교환기에서 100원이나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 이용해야만 했다. 현금이 없거나 동전교환기가 주변에 없을 때는 이용가능한 자리가 있어도 물건을 맡길 수 없었다. 그러나 2016년이 된 지금은 코인락커를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카드 및 모바일로도 결제 가능한 전자무인사물함이 지하철, 대학교 도서관, 빌라, 아파트, 편의점 등에 설치되어 있다. 가끔 이태원 클럽 등에서 코인락커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점차 전자식으로 교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2007년 구로역에 설치된 코인락커
현찰로만 이용할 수 있던 무인사물함을 전자결제를 통해 이용 가능해지면서 보관함 산업은 호황기로 접어들었다. 무인사물함 제작업체 새누 황선오 대표는 2008년부터 하이시스 시스템 회사에서 코인식 보관함을 전자식 보관함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자보관함 개발을 총괄하다가 2011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누’를 창업하게 됐다. 황선오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무인사물함의 발전 과정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황선오 새누 대표
무인사물함의 역사, 흐려지는 경계
학교 사물함, 지하철 사물함, 도서관 사물함, 빌라 사물함... 사실 업계와 관련되지 않은 일반인에게 이 모든 보관함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무인사물함 산업은 2개의 영역으로 각각 다른 시장에서 성장해왔다. 첫 번째는 일반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무인보관함’, 두 번째는 아파트, 주택에 설치된 ‘무인택배보관함’이다. 업계에서 이 두 가지는 각각 다른 분야로 간주되어 발전돼 왔다.
첫 번째, 무인보관함은 ‘보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물함’ 개념에서 발전했다. 흔히 대학교 도서관,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된 것이 무인보관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코인 보관함’이다. 무인보관함의 경우 보관함 자체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임대 형식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물함 제작 업체가 설치를 하고 임대료를 받는 형식으로 ‘자판기’ 같은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아파트 및 빌라 등 공동주택에 설치된 무인택배보관함(이하 아파트보관함)이다. 과거 아파트보관함 시장은 전통적인 무인보관함 시장에서 발전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단순히 물건만 보관하는 기능만이 존재한 ‘깡통’의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해외에서 수입된 전자식 무인보관함을 아파트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보통 아파트나 빌라에 설치된 무인택배보관함은 지하철에 설치된 무인보관함과는 달리 ‘판매 형식’으로 거래된다. 수입업체는 주로 건설사, 주택관리사에게 영업하여 보관함을 판매해왔다. 아파트보관함은 국내 제조업체도 존재하지만 주로 몇몇 업체가 일본에서 무인사물함을 수입해 공동주택에 납품하는 시장을 근간으로 발전되어 왔다.
▲ 빌라에 설치된 무인사물함
그러나 지하철, 대학교에 설치되던 보관함들이 이제는 아파트, 빌라에도 설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기업에서도 보관함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서류 등 긴급 퀵을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의 경우 보안 문제로 퀵 수령시 1층으로 내려가서 물건을 받아야한다. 반면 보관함이 설치된 건물의 경우 퀵 기사는 수발용 보관함에 물건을 맡겨 나중에 찾아갈 수 있는 간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현 시점은 무인보관함과 아파트보관함 시장이 만나 수렴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통 무인보관함 제작 업체들이 아파트보관함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새누 또한 현재 아파트보관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며 “두 시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기”라 평했다.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 무인사물함, 그리고 기술
무인사물함 기술은 크게 함체 제작 기술(하드웨어), 락킹(Locking: 잠금 기술) 및 솔루션 등(소프트웨어)의 기술로 분류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무인사물함 기술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10년 이상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언급한 무인보관함과 아파트보관함 시장 역시 모두 일본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새누 또한 2011년부터 일본의 무인사물함 기술을 접목해 개발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무인사물함 발전 정도는 기술적인 수준에서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기술 발전 정체기인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응용 기술 분야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무인사물함 산업도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무인사물함 함체 자체의 내구성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일본이 앞서고 있다. 그러나 무인사물함에 설치되는 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국내 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 대표는 향후 무인사물함에서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무인사물함 시장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몇몇 국내 무인사물함 업체는 해외로 사물함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무인사물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개발이 성숙기에 들어간 국가들은 이미 무인사물함이 포화상태다. 반면에 개발도상국들은 현재 급격한 개발 단계에서 무인사물함 수주가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인사물함은 무게뿐만 아니라 부피가 크기 때문에 물류비가 상대적으로 높아 수출 자체가 까다롭다. 과거에 존재하던 코인락커에 비해 전자무인사물함의 경우 보통 3~4배 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당연히 가격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즉, 무인사물함 단가 자체가 영업에 큰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수출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일본의 무인사물함은 우리에게 있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한다.
황 대표는 “가격뿐만 아니라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한국 제품이 점차 해외로 뻗어나고 있다. 특히 해외로 수출되는 상품들의 경우 ‘기술’ 개발 정도가 사업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새누는 현재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여러 국가에서 주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무인사물함의 핵심 기술, 원격관제
무인사물함은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술적인 부분이 기업 경쟁력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무인사물함의 핵심 기술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원격관제(Broadcast Control)’다. 과거 모든 무인사물함 관리는 사람이 직접 해왔다. 하나의 무인사물함 관리를 위해서 한 명의 전담 직원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무인사물함 열쇠(혹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사물함 관리 직원이 현장으로 나가 안에 든 물건의 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원격관제 기술이 개발되면서 사물함을 관리하는 인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원격관제 기술은 직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지 않고 한 명의 관리자가 컴퓨터 모니터로 수십 개의 무인사물함 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격관제 기술로 무인사물함 업체 및 사물함을 이용하는 업체들은 상당한 인원절감 효과를 봤다. 예를 들어 원격관제가 가능하기 이전에는 한 지역에 30명의 인원이 투입되어 관리를 했다면, 현재는 7명의 인원으로 전반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 기존 인력의 약 70~75%가 줄어든 셈이다.
원격관제 기술로 무인사물함의 해외 공략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새누는 현재 원격 관제 기술이 탑제된 무인사물함을 대만에 수출했으며,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전했다. 기존 보관함들은 현장 관리자가 필요했던 반면, 원격 관제가 가능해지면서 보관함 관리 문제가 해결되어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원격관제 기술로 보이스피싱 등 사회적 문제 해결 또한 가능해졌다. 무인사물함의 편리함 이면에는 테러 및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원격 관제가 가능해지면서 의심되는 물건, 고가 상품 및 현금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신원도 항시 녹화된다. 실례로 한 무인사물함 업체 관제 직원이 한 할머니가 사물함에 천만원 가량의 현금을 보관하는 모습을 보고 보이스피싱을 의심했고 원격 관제로 용의자 검거까지 한 사례가 있다.
▲ 보이스피싱에 악용되기도 한 무인사물함
최근 무인사물함의 수요 증가로 시장이 커져가면서 새로운 무인사물함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추세이다. 황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새로운 업체가 많이 생기는 만큼 다수 업체가 생존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 원인을 업체들의 ‘기술에 대한 투자 부족’이라고 말한다.
미래 무인사물함의 모습은?
“경비실에 보관해주세요”
흔히 온라인에서 상품 주문시 택배기사에게 남기는 메시지로 적는 문구이다. 아파트 거주민들을 대신해 택배 수령 업무는 경비원들의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다. 해마다 늘어가는 온라인 쇼핑 이용률 증가로 택배 물량이 많아지면서 경비원들은 더욱 바빠졌다. (사실 경비법에 따르면 택배 수령은 경비원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맞벌이 부부, 일인가구 증가 등 여러 가지 사회현상으로 택배기사와 면대면으로 물건을 수령하는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인사물함은 근 몇 년간 택배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용 고객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원하는 시간대에 찾을 수 있고 택배원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으로 택배 수령 및 반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 서울시에 올라온 민원들 중 무인사물함 설치 민원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수취자 부재시 택배 분실 가능성이다. (자료=서울시)
▲자료=한국통합물류협회
무인사물함이 물류 거점으로 떠오르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무인사물함의 IT 시스템과 기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특히 모바일 시대에 맞게 스마트폰과 무인보관함의 연동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올해 새누는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지원이 가능한 무인물품택배시스템을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전송된 비밀번호를 보관함에 입력하면 물건을 찾을 수 있고 모바일로 바로 결제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 무인사물함에서 사용하던 키오스크 방식의 결제 수단이 모바일 결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은행과 카드사에서 어플리케이션 결제, 간편결제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모바일을 이용한 결제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현재는 모바일로 접속해 따로 무인사물함 결제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지만 향후 그 절차는 더욱 간소화될 전망이다.
▲이태원 역에 설치된 서울시 ‘여성안심택배’ 서비스
무인사물함을 물류 거점으로 이용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결제시스템뿐만 아니라 사물함 규격에 맞지 않는 상품 보관과 같은 ‘예외처리’를 위해서도 모바일이 이용될 것이다. 기존 무인사물함이 물류 거점으로 이용되는 경우, 쇼핑몰의 고객 주문과 동시에 배송기사가 고객이 주문한 물품을 무인사물함에 맡기고자 방문했다. 그러나 언제나 무인사물함에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며 상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물건은 크기가 맞지 않아 사물함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상품 마다 규격이 다르기 때문에 처리방법도 달라지는 것이다.
앞으로 무인사물함 업체와 이커머스 시장간 협업에 따른 배달 및 반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예외처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 이베이코리아는 GS25 편의점과 협업하여 ‘스마일박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물론 원활한 이용을 위해서는 배송될 화물 및 맡길 물건의 규격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황 대표는 “마치 영화관에서 좌석을 지정하듯이 무인사물함 또한 회전률을 감안한 운영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높은 수준의 시스템적 알고리즘과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며 “무인사물함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는 시기에서 무인사물함이 새로운 물류 허브로 부상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