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물류로 본다는 것
“대항해 시대부터 스타벅스까지”
발표. 김필립 루후커피컴퍼니 대표
정리. 전수룡 기자
Idea in Brief
본지는 지난달 13 일 ‘제 1회 CLO 라운지’를 개최했다. CLO 커피라운지는 물류인의 오픈네트워크 행사로 매달 새로운 업계연사와 함께 공급망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행사다. 제 1회 CLO 라운지에는 김필립 루후커피컴퍼니 대표가 CLO 라운지 <창고>를 방문해, 30여 명의 업계 다양한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산지에서 커피가 생산되고 우리에게 한 잔의 커피로 도착할 때까지 공급망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했다. |
때는 15 세기. 범선이 처음 탄생했다. 그전까지 없었던 대형선박의 탄생으로, 인류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스코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으로 대항해시대는 시작됐다. 주요 거래품은 향신료였다. 아시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향신료는 유럽의 왕족, 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판매됐다. 그와 함께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 ‘커피’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하루 16억 잔의 커피를 소비한다. 무역통계를 봤을 때 기름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것이 커피다. 대항해시대와 함께 탄생한 커피물류. 우리가 오늘 이 순간에도 마시는 커피 한잔에는 SCM 철학이 숨어있다.
시대의 변화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여러 분야의 산업이 융합되어 신사업이 개발되고 있는 와중에 어떤 사업이 성공할지는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가늠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산업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예측’을 한다 .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예측’이라는 것을 해보지만 그 누구도 수년 후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정확하게 예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변화는 우리의 주변 환경과 모든 상황에 맞춰 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변하지 않는 것, ‘삶(Life Cycle)’
최근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에 있어 일상적인 것들은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들은 계속 유지가 될 것이고 또한 사람이나 화물이 공간적인 거리를 좁히기 위해 교통수단이 필요하다는 점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물류산업과 커피산업은 미래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 . 그것은 이미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내년 한국의 국가 총예산이 얼마인지 아는가. 386조 원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스타벅스 매출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22조 원 이상이다. 스타벅스의 매출은 이미 국가 한 부처의 예산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류는 어떤가 . 과거 대항해시대 , 돈을 번 것은 무역상뿐만이 아니었다 . 그들 못지않은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 범선을 운영하던 해운선사였다 . 통행료와 안정성을 확보하여 원산지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배송하는 것 . 그 시절의 개념은 지금 현재 커피물류에도 적용 가능하다 .
대항해시대와 커피물류의 탄생
앞서 언급했듯 대형물류, 해운업은 15세기 범선의 개발로 시작된다. 후추, 향신료, 차, 목화 등 과거 유럽왕족과 귀족들의 사치품을 수입하기 위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출항해 나섰다.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다. 이 때 주요 수입품목 중 하나가 커피콩, 즉 원두였다. 유럽의 무역상들은 전 세계를 돌며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남미 등에 원두를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인도, 스리랑카의 실론티와 인도네시아의 자바커피 등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커피다.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해운업 탄생의 중심에는 커피가 있었다.
▲ 본격적인 해운물류는 15세기 범선의 개발과 함께 시작됐다. 주요 거래품목은 아시아에서 수입된 후추, 도자기 , 차였으며 이는 유럽 왕족, 귀족들에게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커피물류의 패러다임 전환
커피와 물류는 근대에 와서 조금 더 각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둘의 관계는 크게 3세대로 나눠볼 수 있다. 커피물류 1세대는 공장에서 바로 시장으로 들어오는 직수출의 개념이다. 2세대는 공장에서 해당국가의 창고와 공장으로 연결단계, 즉 가공과정이 추가되어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마지막 3세대는 이러한 공급망에 다양한 유통분배체계가 더해지는 것을 말한다.
국내 커피산업 발전과정을 이 개념과 접목시켜 보자. 고종황제 때 중국을 통해 들어온 원두를 처음 1세대라 할 수 있겠다. 한참 뒤이긴 하지만, 90년대 초 커피, 프림, 설탕을 따로 단일 제품으로 구매하여 섞어 마셨던 개념도 1 세대다. 이후 동서식품에서 커피, 프림, 설탕을 일원화한 믹스커피를 만들어 판매했다. 공급망에 국내 공장에서의 재가공 과정이 추가된 커피, 맥심은 그야말로 글로벌 히트상품이 됐다. 이것이 2세대 커피물류의 시작이다. 한국은 동서식품의 창조적 발견으로 인해 커피를 수입하여 재수출하는 산업에서 전 세계 6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커피콩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나타난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이다.
3세대 커피는 커피숍의 탄생이다. 즉 카페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삐삐세대 에는 사람들이 삐삐로 도착한 신호에 답신하기 위하여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선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창조적 아이디어는 ‘전화기가 설치된 커피숍’이었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전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커피숍에 열광했다. 이후 휴대폰의 탄생으로 이러한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자동적으로 커피숍의 수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1998년. 이대 앞에 처음으로 스타벅스가 생겼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커피물류의 시대는 바로 이 때다.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것
전 세계 4만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 그와 함께 태동한 수천, 수만 개의 카페의 영향으로 커피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무역규모를 봐도 엄청나다. 커피는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가장 많이 국제거래되고 있는 품목이다. 커피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 16억 잔을 소비하며, 지구상에는 약 1억 명의 커피산업 관련 종사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커피 산업의 총 규모는 얼마나 될까. 2013년 기준 세계 커피 시장의 규모는 2000조 원이다. 미국은 520 조 원으로 커피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의외로 12조 원이라는 적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중국의 차 문화 때문인데 최근 중국에도 커피문화가 점점 스며들기 시작하여 산업이 성숙단계에 도달하면 700조 원의 시장 규모를 가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 때 중국은 필연적으로 원두 공급 부족현상을 겪을 것이다. 중국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는 이런 점을 주목해야한다.
기회는 물류에서
이렇듯 커피산업은 굉장히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커피산업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인식 또한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한 블록에서 수 개의 커피숍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많은 커피숍의 50% 이상은 3년 이내에 폐점한다. 하지만 커피산업의 미개척지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 커피의 제조’, ‘소매유통’이 아닌 공급망의 중간 부분을 살펴보자.
가공된 원두를 환적, 분배하는 물류센터와 커피포트(Coffee Port)는 77%가 유럽, 10%는 미국에 배치되어 있다 . 때문에 아프리카와 중남미, 남미에서 생산되는 커피콩들은 필연적으로 유럽과 미국을 거쳐 여러 국가로 분배될 수밖에 없다. 수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현재 커피물류의 허브는 유럽, 미국이지만 아시아에 위치한 중국 14억, 인도 12억 인구는 모두 커피에 관심이 있다. 장차 커피 허브가 현재 유럽에서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커피물류시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일본 요코하마, 동경에는 커피 물류센터와 커피포트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비롯된 기회(?)는 대한민국이 동북아 커피물류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
공급망이 지배하는 커피
결국 미래 커피산업의 경쟁력은 물류, 그것을 넘어선 공급망이 좌우한다. 이런 점에서 커피산업은 SCM(Supply Chain Management)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급망 사이에 숨어있는 틈새를 찾아야 한다. 먼저 커피 공급망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커피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로 최종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커피 유통업체의 공급망에 포커스를 맞춘다. 즉 프랜차이즈 카페나 개인 카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틈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커피농장이 있는 나라의 무역상, 그리고 동서식품과 같은 국내 커피 제조가공업체, 마지막으로 제조가공업체와 최종 소비자 사이에는 ‘물류’가 존재한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 이 분야는 미개척 분야임에 분명하다.
물론 단순히 ‘커피를 옮긴다’의 개념으로 물류를 바라본다면 비전이 없다.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에 독창적인 ‘가치 (Value)'를 추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가가치공급망(Value Added Supply Chain)의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커피는 원두 공급과 생산/가공, 운송, 배달, 소비과정을 거쳐 판매된다. 그리고 운송과 배달 사이에는 검역, 보관, 팩킹, 라벨링 등 다양한 부가가치공급망 프로세스가 추가된다. 한국이 이러한 부분에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부산, 인천, 평택항을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우리가 소비하는 커피 한 잔(5000원) 에서 얼마만큼의 수당을 받을까. 농부들은 원두(Green Bean) 하나가 10원이라 한다면 대략 5원 정도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원두를 가공하여 파는 업체들은 얼마를 벌까? 동서식품은 원가의 20배, 버거킹은 100배, 스타벅스가 남기는 이익은 350배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 있는 물류기업들 또한 이익을 남기고 있다.
물류인이 커피사업을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물류를 하는 사람이라면 커피 공급망 안에서 어떠한 비즈니스를 해야 할까. 혹 물류센터를 구축하여 망을 설계하고(Hub&Spoke), 유통가공(Consolidation, VAL) 과정을 통해 재수출로 수익을 극대화한다면 커피산업도 마치 정유산업처럼 새로운 산업화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먼저 재수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커피는 커피 생두의 원산지, 가공지, 소비지가 분리되어 있어 수입 후 재가공 과정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후 재수출되는 경우가 많은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그러나 국내의 커피 재수출 산업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커피산업이 발전한 나라의 경우 수입규모의 2배 이상의 커피를 재수출하고 있다. 특히 가공기술이 발달한 독일, 벨기에, 미국 등에서 재수출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도 재수출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유통가공센터(Consolidation Center)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동북아 지역에는 아직 대규모 생두 물류허브가 구축되지 않았다 . 우리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중국, 인도, 러시아, 일본 기업의 생두물류허브를 구축하고 이어서 다양한 원산지로부터 생두를 수입하여 재가공을 거친 후 수요시장으로 재수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무역회사들을 유치하고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및 배후부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피산업은 큰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러시아, 일본, 홍콩, 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는 더욱 많은 잠재수요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 시장에 진입할 선진국 , 글로벌 자본가와 어떻게 경쟁해야 될 것인가. 결국 새로운 전략과 틈새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의 해답은 결국 SCM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커피생두, 원두, 커피문화의 중심거점으로 재탄생하고 세계 커피시장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결국 SCM 중심의 사고관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8권(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