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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장어 한판과 맞바꾼 물류컨설팅

by 김철민 편집장

2016년 01월 19일

김편의 구라까이(여섯 번째 이야기)
혁신과 역발상에 대한 오해
 
지난 가을에 수확해 한겨울 잘 말린 콩을 주말에 털었습니다.
어렸을 적, 콩을 턴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이 작업이 여간 손이 많이 가고 힘든 게 아닙니다. 우선 말린 콩대를 도리깨로 휘둘러 콩깍지를 빼냅니다. 콩깍지에서 털어낸 콩은 다시 불순물(흙, 돌가루, 마른 콩잎, 쭉정이 등)과 분리해야 하는데, 이게 한두 번 만에 되질 않습니다. 더욱이 콩을 털 때 발생하는 먼지가 엄청나서 코와 입, 눈에 들어가는 일은 무척이나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몇 백만 원짜리 탈곡기가 있다면야 콩 터는 일이 큰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100평(330제곱미터) 남짓 텃밭을 일구고, 한해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하는 고가의 기계를 사는 것도 딱히 효율적인 방법은 아닌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탈곡기 대신 선풍기를 사용해 콩 선별작업 을 합니다. 장인어른 말씀으로는 본인이 직접 고안한 방법이라 떼쓰시지만(?), 사실 어느 시골 소작농의 콩 터는 풍경과 크게 다르질 않습니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몇 만 원짜리 선풍기 한 대가, 몇 백만 원짜리 탈곡기의 가치를 대체하는 순간입니다.
 
(설명: 선풍기 바람을 이용해 콩과 콩까지를 분리하는 모습)
 
(사진: 콩 탈곡기)
 
선풍기 하니까 몇 일전 SNS 친구가 공유한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몇 년 전 트위터를 통해 소개된 미국의 한 비누공장에서 일어난 기발한 역발상 사례 인데요. 그런데 이 내용이 다시금 지난해 연말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내용인즉, 비누공장의 포장기계가 가끔 오작동해 비누가 포장이 되지 않은 채 빈 박스가 그대로 기계를 빠져나와 생산 품질에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경영진은 이 문제로 외부에 컨설팅을 받았는데, 이 업체는 엑스레이 투시기를 공정에 투입시켜 포장되지 않은 빈 케이스들을 별도로 수거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비용만 컨설팅 비용 10만 달러, 기계값 50만 달러, 인건비 5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엑스레이 투시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몇 달 동안 그 문제로 인한 불량률이 제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보니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이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포장라인에 흐르는 비누 케이스 중 빈 케이스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비용은 단 50달러(선풍기값) 밖에 하지 않았지요.
 
요즘 소위 말하는 ‘혁신’과 ‘역발상’ 의 거창함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혁신은 현장에서 시작되고, 역발상은 편견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일깨운 유사한 사례가 얼마 전 있었는데요. 한 해외(역)직구업체 CEO분이 제게 이런 문의를 했습니다. 이 회사가 취급하는 품목이 수천가지가 넘는데, 제품마다 사이즈가 다 달라 숙련되지 않은 현장 직원들의 경우, 포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이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외운송요금은 제품과 포장의 부피와 무게와 따라 책정되기 때문에 수출입 품목의 포장은 물류비 절감의 매우 중요한 요소 입니다.
 
물론 이 같은 업무는 현장에서 몇 년 이상 숙련된 포장의 달인들에게는 별문제가 되질 않습니다만 이직률이 높은 물류 현장을 감안할 때, 신입 직원들에게는 제품 사이즈에 딱 맞는 포장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 결과, 컨설팅업체는 이참에 직구업체 물류센터 직원들에게 구글 글래스(사진) 를 착용해 제품 정보(크기, 종류 등)를 인식하게 하고, IoT(사물인터넷) 기반의 창고 관리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CEO분은 향후 물동량 증가에 대비하고, 스마트 물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선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대규모 투자를 할 정도의 여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이 CEO가 제게 술자리에서 털어 놓은 고민의 전부입니다. 저는 이 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잠시 고민하다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물류센터 내에서 구글 글래스 활용 모습, 출처: www.scandit.com)
 
“사장님, 우체국 가보셨어요? 거기에 소포 크기에 따라 박스를 분류하고, 가격까지 표시한 뭔가(사진)가 있던데요.” ( 역시 술의 힘은 위대합니다. 평소 말 수 적던 이 대리에게 방언을 터지게 하시고, 수줍던 김 과장을 일어나 춤추게 하시니... 물론 술을 좋아하는 저의 주관적 견해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 ㅎㅎ ) 그 자리에서 바 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여드렸더니, 이분 표정이 압권이었습니다. “헉~”, “열~”, “이런 ~”. 그리고 이날 저와 그분은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하마터면 수천만 원의 컨설팅 비용과 수억 원의 구매비용이 들어갔을지도 모를 컨설팅을 1인분 9000원인 꼼장어 한판으로 대체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우체국 소포 규격 박스, 택배 보낼 물품을 박스 안에 넣어서 비교하면 박스 크기 호수와 가격을 알 수 있다. 출처: 블로거 토박이 김반장님)
 
역사상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탄성을 지르게 할 기막힌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역발상’입니다. 이를 통해 시대를 바꾼 도전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위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갖췄다 는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오늘도 혁신을 꿈꾸시나요, 여러분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김철민의 SCL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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