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서장)

by 천동암

2015년 02월 09일

물류부장

글. 천동암 한화그룹 솔라경영혁신실 상무



“오 부장, 너 돌대가리냐?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밥값 좀 해라! 너 그만 하고 싶냐?”성 전무는 얼굴에 핏대를 올리고 오달수 부장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전무님, 그게아니고. 지난번 말씀하신 내용으로 정리를 했는데요.....,”오 부장은 잔뜩 주눅이 들어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성 전무는눈알을부라리며얼굴이금세찌푸려졌다“. 아! 예, 전무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바로 정리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무엇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대답을 하고 나온 오 부장은 등에서식은땀이줄줄흐르고있었다. ‘ 연말인사도얼마 안 남았는데 성 전무에게 찍히면 끝이야!’ 큰 아이 대학 등록금, 작은 아이 학원비, 당뇨로 고생하는 마누라 눈망울,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 얼 굴이 동시에 컴퓨터 팝업 창처럼 순식간에 오달수 부장머릿속에 반짝거렸다‘. 근데, 뭘다시정리하지, 제대로 지침도 안 받았는데.’오 부장은 성 전무실을 나오다 그만 의자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아! 아파‘ 라고 소리치자 마누라 무쇠다리가 오달수 가슴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핸드폰 자명종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새벽 5시, 이 런 젠장! 꿈이었구나!’나무토막 같은 마누라 다리를 보면서,‘ 도대체 마누라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말투도 점점 거칠어지고 돈만 보면 금세 얼굴이환해지는 아내, 잠자리도 언제 했는지 가물거린다. 부부가 아니라 남매가 되어 가는구먼!’ 마누라가 혹여나 깨어 날까봐 조심스럽게 이불 속에서 나온 오달수는 세수를 하다가 벽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다. ‘빠지고 있는 머리, 늘어가는 빗살무늬 주름들, 검버섯이 생기는 거친 피부, 거시기가 잘 보이지 않은 튀어나온 뱃살, 탄력을 잃어가는 엉덩이 근육.’오달수 부장은 배에 힘을 주지만 금세 힘이 풀려버린 아랫도리를 내려다본다.



‘젠장, 남매사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네!’혼자 히죽거리며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하기 전에 애들 방을 잠시 들여다본다. 아들은 늦은 밤까지 게임을 했는지 컴퓨터도 끄지 않고 책상에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었다. 딸은 고3이라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왔는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오달수는 지난번 자는 딸아이에게 뽀뽀 했다가 놀란 아이가 신경질 내며 고래고래 소리친 기억이 떠올라 뽀뽀를 하려다가 단념했다.



새벽 5시30분.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고 뒤를 돌아보는데 아무도 없다. 칠흑 같은 새벽, 집을 나서는데 뒷모습이 허전하다. 10년 전에는 새벽에 출근 할 때 아내가 밥상을 차려주고 아이들도 깨워서 출근 배웅을 해 주었던 노란 유채꽃 추억이 있었는데....... 잠시 그때 좋은 시절을 회상하니 금세 눈 꼬리가 올라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신문 배달하는 아줌마, 화장기 없는 얼굴을 보면서 혼잣말을 되뇐다. ‘누구 마누라는 남편 출근하는데 미동도 안하고 쿨쿨 자는데 이 아줌마는 코에 단내 나도록 새벽부터 고생 하구먼.’



차에 시동을 걸고 지하 주차장을 나오면서 창문을 내려 새벽공기를 마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어젯밤에 김 부장과 늦게까지 마신 숙취가 새벽 찬 공기에 뚫고 가로등에 붙어 있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차에 온도계를 보니 영하 2도,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가을이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버렸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오달수는 도봉산 주차장에 전철로 환승하기 위해 주차를 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차를 몰고 출근하고 싶지만 회사가 주는 교통비 아껴 애들 학원 비를 쓰려고 전철을 타는데 그 마음을 새끼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안개에 갇혀있다.



오달수 부장은 요즈음 내년도 물류사업계획을 만들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회사가 독일의 A회사와 중국의 H회사, 그리고 일본 Q판매회사를 인수합병 했다. 사후통합 작업인 PMI(Post-Merger-Integration)을 하고 있는데 오부장이 맡은 부문은 통합 물류사업계획이다. 오 부장은 영어로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간신히 하고 있지만 중국어와 일본어는 전혀 하지 못해 모든 서류를 번역해서 확인하고 다시정리하는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외국어는 몇 개나 해야 되나!’



며칠 전 재무부서의 김 차장이 사장님이 배석한 회의에서 독일 회사에게 사업보고를 하면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더니만, 오늘도 사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피 인수된 일본회사 임원들에게 일본 판매실적과 계획에 대한 질문을 일본어로 날카롭게 하는 것을 보고 사장님이 빙그레 미소 짓고 있다. 성 전무는 사장 앞에서 김 차장을 칭찬하고 오달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오달수 마음속에는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새로 부임한 경영지원팀장은 사장의 장남인데다 30대 후반이고 김 차장과는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소문이 있고, 김 차장은 업 무 능력도 탁월하고 외국어도 능통해서 사장과 임원들에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오달수 부장이 각 국가별로 통합한 물류운영계획을 발표 할 차례가 되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일본 주재원으로 있던 차대리가 오 부장 프레젠테이션 중간에 일본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우선, 물류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3개국을 합친 물류비는 미화 5백5십만이고, 물류비율은 중국은 판매 대비 2.4%, 일본은 3.4% 그리고 한국은 4.7%입니다.”경영지원 팀장이 오달수에게 질문을 했다“. 국가 별로 물류비 편차가 나는데 원인은 무엇이죠? 특히, 한국은 중국 대비 2배차이가 나는군요.”오달수는 이 질문을 예상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 팀장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차이가 생깁니다. 첫째는 한국이 중국에 비해 인당 작업자 인건비가 2배 차이가 있습니다.둘째는 창고임차비용은 3배 차이가 있고, 창고 거점수도 한국은 10개, 10만 평이고, 중국은 5개 7000평 규모입니다. 셋째는 운송비 부문인데요, 한국은 컨테이너 내륙운송이 중국에 비해 2배가 비싼 운임체제입니다.”지원팀장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그렇군요. 이런 상황에서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경쟁사 대비 우리 회사의 물류비 지출 수준이 어떤가요?”이 질문은 받은 오 부장은 당황했다.

 

사실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못했고, 더구나 경쟁사 물류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오 부장은 머뭇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대답을했다.“ 팀장님, 현재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과제는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쟁사 물류비는 파악이 불가능합니다.”오 부장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 전무가 소리를 지르려다가 참는 모습이 보였다. “오 부장, 문제점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같이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세상에 불가능 하다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말로 표현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긍정의 마인드를 발휘하세요!”성 전무가 자기 집무실에 있었으면 벌써 온갖 쌍욕이 몇 번 나왔을 것 같은데 사장 아들인 경영지원팀장이 있는 자리에서는 부드럽게 얘기를 했다. 내 앞에서는 사자의 발톱으로 내 가슴을 할퀴고, 아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비둘기 같이 온순한 사람으로 변하니 성 전무는‘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 반박해야 하는 일에는 오 부장은 한마디도 제대로 말대꾸도 못하고 심장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어쨋든 우역곡절 끝에 오후 회의가 끝나고 오 부장은 자리에 앉으니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인사팀의 후배인 곽 부장의 전화가 왔다“. 오부장님, 이번 물류팀 직원들 인사고과 매길 때 SMART(Specific, Measurable, Achievable, Time frame)원칙과 A등급 10%, B등급 10%, C등급 60%,D등급 20%입니다. 이 골든룰(Golden Rule) 반드시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이 원칙이 안 지켜지는 것은 받지 않겠습니다. 직원들 급여 총액은 정해졌고 이 등급에 따라 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회사에 인건비 예산과 관련이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전화를 끊고 오 부장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번에총20명부서원중진급해야할 부서원이 10명, 박 차장은 나 보다 3살이나 많고 이번에 부장 진급을 못하면 권고사직 받을 것 같고, 5명은 과장 진급 대상자인데 입사 동기들이나 누구는 진급을 하고 못하면 동기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 될 것이고, 김 과장, 박 과장, 모 과장, 차 과장은 차장 진급 대상인데 김 과장,박 과장은 작년에 승진 누락되어서 이번에 승진 안하면 문제가 될 것 같고, 모 과장과 차 과장은 부서 내에서 가장 성과가 좋아서 인사등급을 잘 주어야 하고, 마지막 사원 4년차인 김원배는 이번에 대리 승진 대상자인데 지난번 인사고과 면담 할 때, 선배들 때문에 자기 인생은 항상 오란C라고 울분을 토했고....... 누구를 상위고과를 주고 누구를 하위고과를 주어야 하나?’



29층 사무실에 창문을 무심코 바라본 오 부장은 갑자기 ‘부장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노트에다 한 글자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장으로 산다는 것



운동장에서 축구는 하지 않고
고함만 치는 축구코치처럼
언제가 부터


실무에서 벗어나 보는 눈은 구~단
입으로는 십~단
눈과 입으로만
먹고 살기 시작 한다


윗분 오늘기상도를
살피며 보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서성거리는
순간, 순간들


높은 분 마음을 헤아리는
눈치예측 정확도는 높아지고
후배들이 고개 내밀고
핏기 올리기 시작할 때
권리보다 의무감이 많아지고
지고 갈 책임이 쇳덩이처럼
무거워 아스러지는 순간


무지한 사람들은
부장이 되었다고
한턱내라고 야단인데


직장생활 환갑나이
남은 기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달에 낼 공과금, 이자비, 학원비에
한숨 내쉬며


허공을 쳐다보며 불러본다

‘아부지‘


허나, 어이하나?


주어진 책임이 무거워도
부장으로 산다는 것에
감사하고
훗날,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
후배들에게
함께 보낸 정겨운 추억
자양분 되어
그들의 가슴속에
비처럼 스며들어
영혼의 그림자로
남고 싶다





‘부장으로 산다는 것’시를 프린트해서 오 부장은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서 나지막하게 읽어 보았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명치끝이 아렸다. 어느새 빌딩 숲속에서 해는 지고 하루 일과가 끝나가고 있었다.



오 부장은 작년에 희망퇴직하고 치킨가게를 하고 있는 대학동창에게전화를했다.“ 이 사장, 달수다. 장사 잘되냐?”“저녁 장사 준비허고 있네. 야채는 방금 가락시장에서 사왔고, 닭고기 손질하고 있는디, 시간되면 가게 한 번 와라!”동창은 피곤에 지쳐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어, 그래, 오늘 저녁에 가게로 갈게, 술 한 잔 하자.”



밤 8시 즈음에 동창가게에 갔다. 80평 넓은 가게에는 손님이 두 테이블 정도만 있고 캘리엔론의 노래 가사가 칙칙 하게 들려오고, “I owe you the sunlight in the morning” 가사는 적막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오 부장은 친구가 준비한 치킨 안주에 맥주를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 하듯이 얘기를 했다.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듣고 난 친구는 정색을 하며 얘기했다. “어이, 달수야! 월급쟁이 너 행복 한 줄 알아, 이 가게 장만하려고 퇴직금, 희망퇴직 위로금, 모자라는 돈은 집 담보로 빌리고 말 그대로 올인을 했는데, 처음에는 장사가 좀 되었는데, 5개월 전에 이 근처 대형체인 호프집이 들어오고 설상가상으로 ‘세월호’사태 이후 사람들이 추모열기로 술집 발길이 뜸해서 급기야 지금은 초기 대비 매출이 70%까지 떨어져, 요즈음에는 투자금액 60% 정도 까먹었어, 죽을 맛이다.”가만히 이말을 듣고 있던 오 부장은 자기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인 친구 얘기를 듣고 이런생각을 했다‘. 나는성전무가악의 축이고 친구는 대형호프집 체인이 악의 축인데, 누가 더센 존재인가?’오 부장은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술잔을 기울려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집 앞에 섰다. 갑자기 초인종은 누르고 싶었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집안에 미동이 없다.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가자 아들 은 게임에 열중이었다. 마누라는 누워서 얼굴에 마사지 팩으로 감싸고 있어서 도플갱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딸은 아직 독서실에서 오지 않았는지 방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마누라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 했다. “자기 왜 그래? 멀쩡한 손가락 놔두고 초인종은 왜 눌러, 당신 집 번호 까먹었어? 치매야?, 글구, 웬 술을 맨 날 먹고 다녀!”오 부장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마누라에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괜히 말을 해서 뭐하나 싶어. 입을 꼭 다물고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전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이 몸을 이불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불은 무거웠다. 사냥하는 지겨움, 아니, 밥벌이의 지겨움이 두꺼운 이불이 되어 오늘 유난히 오 부장을 꼭꼭 누르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무슨 악몽을 꿈꿀 것인지 더럭 겁부터 났다.

 



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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