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희생양 된 '비운의 물류기업'
금호-대한통운, 유진-로젠 인수 3년 만에 재매각
물류계열사, 위기 때마다 자금줄 역할…업계 '씁쓸'
대한통운과 로젠 등 물류기업들이 결국 그룹의 희생양이 됐다. 16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년 전 인수한 대한통운을 재무개선의 마지막 카드로 공개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날 유진그룹도 같은 해 사들인 로젠택배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금호와 유진, 이들의 공통점은 M&A;를 통해 승승장구하던 기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승자의 축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인수한 물류업체들은 3년 만에 다시 매물로 전락했다.
인수당시 그룹계열사와 시너지를 통해 역량있는 글로벌 물류회사로 키워내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매각설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현실이 됐다. 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대한통운은 매년 최대실적 속에서도 부동산을 매각했고, 유상감자를 통해 유동성 위기에 있던 그룹의 구원투수가 됐다.
◆대한통운 왜 되파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을 내놓게 된 배경은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통운 인수 당시 발행했던 교환사채(EB)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대한통운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각 5500억원, 4500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5년 만기의 EB는 상환 연한이 2012년이다. 그러나 두 회사가 계열 분리할 경우 조기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겨있어 아시아나항공은 내년 상반기까지 약 4000억원 가량을 상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아시아나항공(23.95%), 금호P&B;화학(1.46%), 금호개발상사(0.12%) 등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통운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역시 대우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통운 지분 23.95%를 매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삼성, 포스코, SK, 한진, 농협, 롯데, STX, CJ 등이 대한통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경영권 프리미엄 등 대한통운 인수가가 오를 것을 염려해 일정 선을 긋고 있다.
◆물류업 투기 더 이상 '안돼'
공교롭게도 금호가 대한통운 공개매각을 발표한 날 유진도 로젠택배 지분을 미래에셋-나이스 사모투자전문회사에 800억원에 매각했다.
미래에셋-나이스 사모투자전문회사는 유진그룹의 모회사인 유진기업이 보유한 ㈜로젠 지분 71%와 HTIC-2호 기업구조조정조합 보유 지분 29%를 각각 588억원과 212억원에 인수한다. 미래에셋-나이스 사모투자전문회사는 사모펀드로 매입금을 미래에셋벤처투자와 나이스F&I;가 운용사(GP)가 돼 만든 사모투자펀드다.
반면 이번 거래가 외형은 매각을 띈 투자유치로 보는 경향도 있다. 유진이 미래에셋-나이스의 투자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지분을 수년내 재회수 한다는 조건이 깔려있다는 것. 유진이 펀드에 150억원 출자자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통운과 로젠택배가 그룹 내 계열사 중 수익성이 높은 알짜회사”라며 “그룹 인수 후 성장에 대한 기대감과 자부심이 컸는데, 주인을 잃어 직원들의 실망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대한통운의 재매각 추진은 물류업에 대한 대기업들의 잘못된 이해를 보여준 현 주소”라며 “물류업 자체를 기업의 성장 동력이 아닌 투기로 일삼아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한편, 대한통운 매각이 대기업 물류자회사 출현에 도구가 될 경우, 전문물류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결국 국내 물류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란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철민 기자 olle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