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패스트 패션의 운명 – SCM은 그 자체가 ‘그린(Green)’이다

by 설창민

2020년 02월 27일

공급망관리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 이제 '재고 축소'의 시대

많은 제품 중 유독 고통받는 '의류', 온실가스와 의류시장의 관계

패스트패션 기업 자라(Zara)를 통해 본 '그린 서플라이 체인' 사례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 대학가에 붙은 현수막과 대자보에서는 '구국의 강철대오(鋼鐵隊伍)'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모두가 구국의 강철대오를 이루고 누구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조국을 구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금 생각난다. 우리가 나라를 구하느냐 조국을 구하느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전 세계는 '지구를 구하는 강철대오'를 이루었다. ‘그린 서플라이 체인(Green Supply Chain)’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저명한 사회 지도층 인사가 아닌 16살의 소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화두를 던졌다.

 

SCM도 친환경시대

 

지난 2019년 9월 23일, UN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자기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는 방치하는 기성세대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보다 급진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소모품처럼 옷을 만들어서 소비하게 만드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실제 2019년 9월 전후한 공급망 관련 해외 외신들은 난데없이 자원 낭비를 조장하는 의류 공급망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 때문인지 지난 2019년 7월 가트너 SCM Top 25 2위 기업 Zara가 2025년까지 100%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툰베리의 연설 후 이틀이 지난 9월 25일 16위 H&M은 2040년까지 완전한 친기후 경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H&M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재고 장사를 하던 H&M의 경쟁 브랜드 Forever 21은 9월 29일 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연설하는 그레타 툰베리

 

한때 H&M은 43억 달러어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재고발 경영위기를 겪었고,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를 부채질한다는 비난을 받았기에 다급히 친환경 경영 의지를 세상에 알린 셈이다. 또한 며칠 지나지 않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Forever 21은 더 이상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했다. 막상 H&M이 경쟁 브랜드 Forever 21의 파산으로 매출에 숨통이 트이면서 3분기 실적 개선을 발표했으니(미국 매출만 전년대비 19% 증가했다), 이만한 아이러니도 없다.

▲ 경쟁관계였던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위)과 Forever 21(아래)

 

이로써 2019년은 어쩌면 재고를 많이 가지고 가는 공급망이 비단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의류업계가 대상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모든 이유는 단 하나를 가리킨다. 바로 '재고 축소'.

 

유독 ‘의류’가 고통 받는 이유

 

첫째, 의류 비즈니스는 모델 특성상 재고가 많이 생기기 쉽다. 긴 재고 회전 주기 때문에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다량의 재고를 보유해야 하고, 만약 매장이 있다면 더 많은 재고를 가져야 하며, 계절이 도래하기 전에 수요를 예측해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쉽다. 게다가 재고가 남으면 대량으로 할인 판매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형 쇼핑몰에 가 보면 Zara를 제외한 다른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이나 유니클로, 망고는 유난히 세일을 많이 한다.

▲ 지속적인 재고의 압박 가운데 환경 이슈까지 감당해야 하는 의류 시장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 온실가스의 8~10%는 패션업계에서 나온다는 UN Environment Program의 2018년 분석도 있다. 2014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통계에 따르면 교통수단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14%임을 감안했을 때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결국 시즌 후에 대량으로 할인 판매되는(패스트 패션은 매장에서 소진한다 쳐도 브랜드에 따라서는 끝까지 팔리지 않으면 땡처리 신세가 된다) 재고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 기후 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인정되어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음. (출처: 두산백과)

 

둘째, 지구 환경을 등한시하던 기업들이 정말 기업 경영에 타격을 입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패스트패션의 상징이던 H&M이 재고 때문에 지난 6분기 내내 고생했고,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칭송받던 Forever 21 또한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H&M이나 Forever 21이 지구 환경을 완전히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양쪽 다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드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오프라인 매장의 절전과 에너지 재사용에 신경 쓰고 있다. 무슨 근거로 이들이 지구 환경을 등한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H&M이 선보인 친환경 & 재생 코튼 데님 제품(출처: H&M)

 

과거, 아니 겨우 10년 전만 해도 위와 같은 노력은 지구 환경을 지키려는 '필사적이고 윤리적인 노력'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노력을 요식 행위로 보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그만큼 본질을 바라보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지구 환경을 지키는 공급망 관리 관점에서 본질은 ‘재사용 가능한 재료 100% 사용’과 ‘재고 감소가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도입’이다. Forever 21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원인 중 하나로 이들이 유독 강조해 온 규모의 경제를 드는 사람도 많다. 즉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량 발주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재고를 가져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마지막 셋째, 의류업계는 전반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조사기관 CoreSight Research에 따르면 2018년 미국 국내에서 폐점한 의류 매장은 총 5844개였다고 한다. 2019년 들어 9월까지 8200개 점포가 문을 닫았고, 연말까지 12000개의 점포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오죽하면 현지에서는 유통종말(Retail Apocalypse)라는 표현까지 쓸까.

 

생각해 보면 오프라인 매장은 손님이 오지 않는 한 재고를 담아두고 있는 공간일 뿐이다. 대형 오프라인 매장일수록 재고를 위한 공간은 많을 수밖에 없다. Forever 21이 미국에 가진 오프라인 매장은 평균 1100평 정도다. 가장 큰 매장은 4600평이고, 뉴욕 타임즈 스퀘어 매장은 2600평이다. 그렇다고 Forever 21이 이토록 큰 매장을 활용하여 요즘 유행하는 '온오프라인을 아우른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하려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의류업계는 ‘재고를 줄여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같은 의류지만 Zara는 다르다

 

그 가운데 요즘 들어 Zara의 모기업 Inditex의 공급망 관리가 더 빛나 보인다. Inditex는 공급망 관리를 어제오늘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 일찌감치 스페인에 초대형 물류센터와 공장을 갖추고, 중간 가공업자와 원재료 공급업자를 모두 인근에 두는 전략을 써 온 덕에 품질을 확보했으며, 완제품 재고는 줄일 수 있고, 빠르게 매장에 공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Zara의 공급 체계를 잘 살펴보면 의류보다는 공산품 공급망에 더 가깝다. 인근 공급업체로부터 JIT로 모듈이나 어셈블리를 단시간에 공급받고, 이를 최종 조립 후 빠르게 국내외 배송하는 체제는 재고를 줄이고 공급 리드타임을 줄이는 데 매우 유리하다.

 

이런 식으로 중앙 물류센터가 대부분의 공급을 맡게 되면 요즘처럼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는 가운데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쇼핑으로 전환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물류센터와 공장이 여러 국가에 혼재하면 공급계획이 복잡해지고 각 거점의 상황에 따라 온라인 공급 프로세스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할로윈 드레스는 베트남에서 제 시간에 왔는데 패딩은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으로 발이 묶일 수 있다. 매장을 줄여서 공급망이 단순해질 것 같지만 공급계획이 복잡하다면 장점은 희석된다.

 

하지만 중앙 물류센터가 공급을 담당한다면 물류센터 피킹과 현지 배송 조건만 달라지며, 유사시 매장을 철수하기도 쉽다. 그래서 그런가, 공급망 관리에 대한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환경을 생각한다면 Zara에서 옷을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경운동가도 나온다. 교통수단 중 가장 공해를 많이 배출한다는 항공기를 주된 국제운송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아무튼 처음부터 쓸데없는 생산을 하지 않아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나보다.

▲ Zara의 스페인 의류 공장. 타 의류기업과는 차별화된 공급망 관리가 돋보인다.

 

이렇게 수십 년간 열심히 공급망 관리에 투자한 결과, Investing.com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Zara와 H&M의 재고회전률은 각각 30.33과 2.67이다. Zara와 H&M의 매출은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Zara가 훨씬 많다.

 

의류도 온라인 판매가 답인가?

 

물론 모든 의류업계가 Zara처럼 비즈니스 모델을 갖출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제한된 분야에서 기획력, 그리고 SNS에서 생긴 입소문을 통해 온라인 판매 전문 브랜드가 점점 성장하는 동향은 예의주시할 만하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 또한 따지고 보면 재고를 줄일 수 있다. 온라인 판매는 완제품 재고를 중앙 물류센터에 보관하면서, 원재료는 동대문 생산업자에게 맡겨둘 수 있으므로 잠재적으로 재고를 줄일 수 있다.

 

필자가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했었고 실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나고 자라면서부터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세대들이 등장해 이 같은 쇼핑 형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온라인으로 멋모르고 산 옷이 자신의 몸매와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인증샷을 SNS나 포털에 업로드하는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에 그랬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고 즐기려는 마음도 없지 않으리라 본다.

▲ 간단한 검색만으로 쉽게 의류 구매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구글 이미지 검색 캡처)

 

온라인 판매는 택배상자, 포장재 등 새로운 형태로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택배상자는 종이고, 포장재는 마음만 먹으면 종이로 대체할 수 있다(최소한 아이스팩은 필요 없다). 배송 수단 또한 전기차를 활용한 택배나 전기자전거, 전동스쿠터를 이용한 라스트 마일 배송을 이용할 수 있다. 나아가 소비자가 직접 픽업한다면 매연과 미세먼지 배출은 향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의류업계에서 가장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형태의 공급망은 온라인 판매일 지도 모른다.

 

SCM은 그 자체가 그린

 

자, 이제 갈 길은 분명해졌다. 재고를 줄이는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온라인 판매 증대. 마지막으로 자원재활용률 개선.

 

국가 관점에서 만약 목표가 지구 온난화 지연이면 의류 재활용률을 높이고 수거를 확대하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다. 또는 목표가 의류업계의 안정적 비즈니스라면 청년고용에 대한 인센티브,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유예, 수출 알선밖에 해 줄 것이 없다. 하지만 목표를 재고 줄이기로 놓고 의류업계에 공급망 관리 컨설팅을 지원해 주고, 클러스터링을 통해 의류 공급망을 공산품 제조업 공급망처럼 바꿔줄 수 있다면 재고를 줄이면서 의류업계의 경영을 개선할 수 있으며, 그만큼 쓸데없는 생산이 없음으로 지구 온난화 지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여기에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의무화하고, 해당 소재 개발을 지원한다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도 있고 수출길도 열린다.

▲ 지난 3월 런던에서 열린 ‘지속가능 패션’ 컨퍼런스(출처: Drapers)

 

필자가 공급망 관리에 대한 기고를 시작한 초창기에 ‘공급망 관리는 재고를 줄이고, 쓸데없는 생산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그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다시 지금, 명백한 증거를 보았다. 재고를 늘리며 쓸데없는 생산과 할인 판매를 반복하는 기업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 반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노력하는 기업을 향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모습까지 보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공급망 관리는 그 자체가 그린이다. 그린 서플라이 체인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이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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