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겨울왕국 흥행이 공급망 관리에 끼치는 영향
필자가 지난 2016년 기고한 ‘디즈니 프린세스 이야기’는 여전히 CLO 웹페이지 상에 온라인 버전으로 게시돼 있다.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2013년 개봉하여 많은 관람객의 사랑을 받은 ‘겨울왕국’의 속편이 지난 2019년 11월 22일(한국은 11월 21일) 개봉되었으니 이제 기고 또한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다.
2019년 12월 현재 겨울왕국2의 흥행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극장 스크린의 60%를 점유한 만큼 그 이상의 흥행을 못 이뤄내는 것이 더 문제이긴 하지만, 2013년 극장 밖을 나서며 벅차게 '렛잇고'를 흥얼거리던 이들은 이제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고 있다. (두 번 외친다. 무슨 소린지 궁금한 분들은 직접 관람하시기 바란다)
덕분에 한국은 12월 7일 기준 관객 1000만 명을 가볍게 돌파했고, 미국은 관객수입 10억 달러를 가볍게 넘겼다. 겨울왕국2는 디즈니가 2019년 개봉한 영화 중 캡틴 마블,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토이스토리4, 알라딘, 라이온 킹에 이어 여섯 번째로 10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되었다. 디즈니의 영화사업부문은 내년도 실적 악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올해 실적이 좋다고 한다. 게다가 12월에는 꽤 오랜만에 스타워즈 시리즈,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해즈브로
때문에 2013년부터 스타워즈, 2015년부터 디즈니 프린세스와 겨울왕국 캐릭터 완구 제조 라이선스를 취득한 ‘해즈브로 Hasbro’의 각오는 남다르다. 2013년 ‘마텔 Mattel’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 2013년 겨울왕국이 처음 개봉했을 때 디즈니 캐릭터 완구 제조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던 마텔은 당시 겨울왕국이 이렇게 큰 인기를 끌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겨울왕국 본편이 개봉한 2013년은 물론 2014년 내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해즈브로는 11월 말 겨울왕국2와 12월 개봉하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완구재고 조달을 위해 항공운송도 불사했다.
▲ 해즈브로는 겨울왕국2 개봉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다만 현재 해즈브로가 처한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은데, 우선 올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유통업체들이 완구류를 적극적으로 구매하지 않았다. 실제 유통업체들은 관세로 인해 판매가격이 높아질 만한 물건은 구매를 꺼리며, 확실히 팔릴 만한 물건만 구매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편의 사례로 미뤄보아 판매량이 보장된 겨울왕국2 관련 제품은 자연스럽게 다량 구매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중국산 중심의 공급망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해즈브로의 경우 2019년 이전만 해도 중국산이 전체 공급의 2/3를 차지했다. 이후 무역 분쟁을 겪으며 지금은 제품의 상당부분을 다른 국가에서 생산하고 있는 상태다.
▲ 파산 신청에까지 이르렀던 ‘토이저러스’
마지막으로 2017년 세계 최대의 완구 판매점 ‘토이저러스 ToysЯus’의 파산 신청도 타격이었다. 해즈브로처럼 자체 브랜드와 라이선스 브랜드를 같이 파는 경우 판매 채널이 축소되면 라이선스 브랜드보다는 자체 브랜드의 판매가 감소한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원청의 인기에 힘입어 꾸준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지만, 자체 브랜드는 매장이 사라지면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2018년 토이저러스가 매장을 잠정폐쇄하자 2018년 해즈브로의 경영실적은 크게 악화되었고, 자연스럽게 해즈브로의 디즈니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진 상태이며, 올해 상반기 해즈브로의 실적 또한 저조했다.
마법과 모험, 그 속에서 만난 파괴적 혁신
물류와 공급망, 더 나아가 ICT 기반의 혁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완구를 판매하는 해즈브로의 고군분투 못지않게 겨울왕국2 자체가 주는 메시지도 중요하다. 겨울왕국 본편에서는 마법 능력을 가진 언니 엘사, 그리고 언니가 스스로 마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려던 동생 안나가 등장한다. 극중 안나는 엘사의 실수로 인해 얼음으로 변해버리고 마는데, 그때서야 엘사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져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안나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힘 하나로 안나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고, 얼어붙었던 아렌델 왕국은 다시 따뜻하고 살기 좋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 소중한 것을 잃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은 엘사, 안나 자매
이것이야말로 파괴적 혁신의 본질 아닐까? 자신의 속마음만큼은 드러내지 않으려던 엘사를 어떻게든 변화시키려다 그런 엘사의 마법에 걸려 얼어붙어버린 안나의 모습. 이 모습에서 어떻게든 변화를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는 요즘의 시대상을 떠올린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그런 안나의 헌신적인 모습에 드디어 변화한 엘사의 모습을 보고 ‘가장 아끼는 것을 잃는 순간 오히려 변화의 힘을 얻게 된다’는 파괴적 혁신의 메시지를 떠올린 것은 오직 필자뿐일까?
▲ ‘파괴적 혁신’의 전도사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
겨울왕국2를 관람하는 내내 ‘이것이야 말로 파괴적 혁신’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영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들은 스스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존의 것을 포기해야만 새로운 얻을 수 있는 상황. 이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와 같으며, 모든 것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파괴적 혁신의 본질과 일치한다.
SCM은 기존 명제를 거부한다
지금까지 공급망 관리는 전통적인 경영 이론을 근본부터 변화시켜가며 수없이 많은 혁신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언제 납기 못 맞춘 적 있느냐’던 제조공장에게 진정 고객이 원하는 납기의 개념을 도입했고, ‘우리가 무슨 신이냐, 어떻게 고객의 수요를 정확하게 맞추느냐’며 수요예측을 거부하던 영업부서에 수요예측의 개념과 필요성을 도입했다. 사업이 성장하는 시대, 재고를 쌓아 놓으면 팔리던 시대를 살아오던 이들에게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서는 공급과 판매를 축소해야 할 수도 있음을 알려 줬다. 기존에 통용되었던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포기한 결과 공급망 관리는 비용이 증가할 일은 있어도 줄어들 일은 별로 없는 지금의 시대에 근본적 비용 절감을 이루는 파괴적 혁신을 주도했다.
▲ 유료 배송 서비스에 콘텐츠 스트리밍을 붙여 나가고 있는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
나아가 공급망 관리는 ICT와 융합하여 Digital Transformation의 한 축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 곳곳에서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고객 맞춤 생산을 하면 수익이 날 수 없다는 명제에 과감히 도전하여 고객 맞춤 생산으로 판매를 늘리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수요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명제가 데이터 사이언스를 만나 근본부터 변화하고 있다. 고객에게 납기를 약속하고, 이를 정확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는 정확한 재고 가시성이 해결하고 있다. 무배(무료배송)가 대세인 시대에 별도의 배송비를 받으면 안 된다는 명제도 이제는 보다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필자도 예외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기는 했지만(두 번), 겨울왕국2의 뒤에는 공급망의 실패를 극복해 나가는 한 완구 회사의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는 생각이다. 과연 우리는 생존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을까, 또 이러한 각오를 가진 이들의 도전을 지지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이 사회에 다시금 혁신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이다.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