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억 규모 롱테일 시장을 노린다, '수제 맥주' 유통 스타트업 '벨루가'
벨루가는 왜 유료회원 3000명 규모 정기배달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나
유통기한‧운반‧보관 등 수제 맥주 시장의 난점, '콘솔 물류 플랫폼'이 해결할까
글. 신승윤 기자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시장이 뜬다. 크래프트 맥주란 개인 또는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든 맥주로 ‘수제 맥주’라고도 불린다. 대기업과 같은 거대 자본의 투입 없이, 수많은 맥주 제조자들만의 비결을 담았기 때문에 그만큼 맛과 개성이 무궁무진하다. 이를 크래프트 맥주라는 용어로 지정한 것은 미국양조협회(American Brewers Association, ABA)로 1970년대 말 수제 로컬 맥주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단, 크래프트 맥주는 단순히 소규모 생산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 창의적 시도, 맛과 품질에 대한 집착과 노력 등 무형의 가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전형적인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를 띠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약 2000억 원 규모로, 5조 6천억 원 규모의 국내 맥주 시장 가운데 약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5년간 예상되는 성장규모는 약 6000억 원 규모로 전체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롱테일(Long Tail)** 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기대 받는 상황이다.
▲ 벨루가 사무실에 모인 구성원들
이러한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새로운 도매 유통 플랫폼 서비스를 들고 나온 스타트업이 있다. BaaS. ‘Beer as a Service’를 목표로 비효율적인 유통·물류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스타트업 벨루가(Veluga)다. 과거 크래프트 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던 중 국세청의 입장 번복으로 인해 2번의 서비스 중단을 겪은 벨루가. 이후 새로운 B2B 서비스로 완전한 전환을 이룬 그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주류 유통‧물류 채널은 어떤 모습인지 김상민 대표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Q.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원래 맥주 마니아다. 유학시절 미국 라거 맥주 버드와이저의 생산 공장이 있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 Missouri)에서 생활했는데, 주민들 대부분이 공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옆집은 양조사, 그 옆집은 물류 운전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후 맥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 다양한 맥주들을 찾아 즐기기 시작했다.
▲ 김상민 벨루가 대표
이후 국내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나만의 창업 기준이 생겼는데, 첫 번째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확실한 사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맥주는 2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의 가파른 성장을 보면서 분명 ‘맥주도 공유경제 기반의 플랫폼 사업’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주류 업계의 장벽이 높아 경쟁자가 없다는 것도 장점 중에 하나였다.
Q. 스타트업 이름은 왜 ‘벨루가’인가?
단지 직관적인 이름으로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작명에 그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중국 여행 중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하얀 돌고래의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니 ‘벨루가’였고, 그대로 업체명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돌고래나 흰 돌고래만 봐도 우리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여담으로 현재 기존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중단하고, B2B 서비스를 새로 시작함에 있어 업체명이 벨루가였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배달의민족과 같이 직관적인 이름이었다면 피벗에 있어 다소 복잡하지 않았을까.
▲ 흰돌고래를 의미하는 벨루가
Q. 기존 정기배달 서비스는 어떤 서비스였나?
크래프트 맥주를 소비자들이 원하는 곳으로 정기배달 하는 서비스였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란 특징을 가진 크래프트 맥주는 수입과 보관, 납품 등에 있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이를 여러 소비자들의 수요를 모아 구매 규모를 형성하고, 정기배달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형태의 서비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모델 구상 이후 적법성을 검토하는 데에만 1년여 시간을 들여 2017년 4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음식과 함께 주류를 배송하기 때문에 위법성은 없었다. 단 서비스 개시 이후 주류 통신판매 관련 고시가 ‘음식과 함께’에서 ‘음식에 부수한 형태로’로 바뀌었다. 주류 비중이 음식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업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서비스를 잠정 중단, 음식의 비중을 높이는 형태로 보완해 같은 해 11월에 재시작했다.
▲ 음식 비중을 높여 서비스를 재시작했으나 다시 한 번 위반 통보를 받은 벨루가 정기배달 서비스
당시 국세청은 새롭게 시작한 정기배송 서비스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2년의 시간동안 유료회원 3000명 규모까지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지난 5월 국세청이 주류고시 위반 여부를 다시 조사하면서 결국 서비스를 중단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회원을 모집하여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서비스 형태가 주류 통신 판매 위반 사항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 정기배달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많은 스타트업이 이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허나 위반이 된다는 근거 관계 법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벨루가는 안 된다’는 식의 통보받게 되었다. 처음 서비스를 중단했을 당시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을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위반 사항이라고 통보하는 국세청의 행정 처리가 부당하다 생각했지만, 우리는 기존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Q. 새로운 주류 유통 플랫폼 서비스는 어떻게 탄생했나?
사실 이번 주류 유통 플랫폼은 기존 정기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에 꾸준히 기획 및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기배송 중단 후 새롭게 서비스를 구상했다기보다 또 하나의 플랫폼 서비스로 제공 예정이던 내용이다. 크래프트 맥주를 직접 판매함과 더불어 판매를 원하는 사업자들에게 수입, 보관 등 도매 단계의 B2B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시장에 뛰어들어보니 어려운 점이나 해결했으면 하는 요소들이 명확히 보였고, 이를 플랫폼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Q.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난점이라면?
우선 국내 크래프트 맥주의 80% 이상은 해외에서 수입해온 제품이다. 병에 담긴 액체이기 때문에 적재와 운송, 품질관리에 있어 매우 예민한 맥주는 무게도 상당하기에 항공 운송은 불가능하다. 선박을 통해 부산항으로 입고된 맥주들은 그때부터 통관 과정에서의 한국어 라벨링, 식약처 안전검사 등의 과정을 거쳐 냉장 창고로 입고된다. 그 후에는 오프라인 영업을 통해 상점에 출고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평균 5~6개월가량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문제는 맥주의 유통기한이 1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크래프트 맥주들은 유통기한을 6개월 남기고 출고되기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수명이 상당히 짧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유통기한이 3개월 이하로 남은 맥주들은 ‘임박분’으로 처리해 빠르게 소진해야만 한다. 1+1 또는 3+1 행사들은 임박분 맥주들을 빠르게 소진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이벤트다.
제품 종류와 수입처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크래프트 맥주는 수요예측 난이도가 매우 높음은 물론, 구매 규모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에 물류 단계에서 발생하는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2가지로 정리하면 과다 공급으로 인한 폐기 손실, 그리고 공급 부족으로 인한 임대료 손실로 구분할 수 있다. 유통기한 내 팔지 못해 폐기를 하거나, 창고 공간은 남는데 이를 채우지 못해 고정비만 지출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크래프트 맥주의 가격을 비싸게 만드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결국 소비자도 부담을 지는 셈이다.
Q. 벨루가 플랫폼은 이를 어떻게 해결 하는가?
먼저는 정보 불투명성을 해소한다. 사실 판매자 입장에서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들 하나하나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단순히 유행을 쫓거나, 감에 의존하거나, 매장을 방문한 영업 사원을 맹신하는 등 합리적 판단을 위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관련해 벨루가 주류 유통 플랫폼은 상점에게 가격을 포함한 맥주 정보, 공급사 정보를 제공해 판매자가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원하는 맥주를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맥주별 정보에는 판매량, 시즌별 데이터 등이 포함돼 있기에 수요예측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벨루가 애플리케이션 이용 화면
이어 크라우드 오더링(Crowd Ordering) 구매를 활용해 비용절감을 가능케 한다. 크라우드 오더링은 ‘선공동구매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각 상점이 최소 발주 단위 이상의 맥주를 함께 예약 주문해서 공급사가 설정한 목표량을 달성하면, 공급사는 이를 한 번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구매 단가를 낮춤은 물론 물류비 절감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사전 예약 방식이기 때문에 창고를 거치지 않고 매장으로 곧장 배달하는 등 보관에 필요한 고정비 또한 최소화활 수 있다. 나아가 구매 및 판매 데이터 축적을 통해 수요예측 고도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벨루가는 플랫폼 운영과 동시에 물류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동 물류 모델’을 구축해 크래프트 맥주 보관을 위한 공용 창고 공간을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의 물류까지도 통합해 비용절감 및 유연성 확보가 가능하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Q. 향후 벨루가의 목표는?
앞으로 맥주 시장은 커피 시장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 커피는 가정이나 자판기 등에서 인스턴트 위주로 소비되며 대중화를 이뤘고, 현재는 다양한 프랜차이즈부터 로스팅 전문점, 동네 카페 등 소비자 취향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 이제 커피 수요는 비탄력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맥주 시장 역시 제도 개편을 앞두고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부터 개편된 주세법이 적용되고, FTA에 따라 지난 7월부로 수입 맥주 관세율이 0%로 철폐됐다. 크래프트 맥주와 관련해서 과세 표준 경감 범위 또한 확대되면서 보다 대중적인, 커피와 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 벨루가는 크래프트 맥주의 제조, 물류, 유통 등 공급망 전체를 아우를 날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벨루가 플랫폼은 크래프트 맥주 시장 플레이어들에게 보다 쾌적한 사업 환경을 제공하며 동반성장하고자 한다. 중국의 타오바오처럼 말이다. 입점 셀러들을 대상으로 일체의 판매 수수료도 받지 않는 등 플랫폼 이용자를 적극 배려함과 동시에 셀러들의 다양한 상품제작 수요를 한 데 모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이로부터 공동의 이익을 발생시키는 방식. 이처럼 벨루가는 국내 맥주 시장에서 인프라 제공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 플랫폼 이용자들이 오직 소비자들의 수요를 찾아내고 이를 공략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더불어 까다로운 주류 물류‧유통 서비스를 고도화하다보면 자연스레 3PL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향후 주류를 포함해 완성도 높은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로 성장해 나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