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탄 아쉬의 'DEE 프레임워크'로 보는 창업생태계의 이해
DEE 프레임워크의 핵심 '다면시장 플랫폼', 플랫폼 위에서 탄생하는 창업붐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미국의 구글, 애플, 페이스북... 우리는?
창업과 관련된 교과목들이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학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다. 이런 몰인정에 불구하고 창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한 몇몇 학자들이 있다. 졸탄 아쉬(Zoltan Acs)가 대표적이다. 졸탄 아쉬의 완결판 이론이라 평가받는 DEE 프레임워크를 통해 창업생태계를 설명하는 ‘이론’이 어떻게 현상과 맞물리는지, 그리고 우리의 창업생태계는 지금 어떠한지 반성해본다.
앙트러프러너십(이후 창업이라고 쓸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쓰겠습니다만, 사실 제법 다릅니다.)을 전공한 교수들은 현장과 학계 양쪽에서 좀 이상한 취급을 받곤 합니다.
우선 창업자들로부터는 “창업도 안 해보고 그걸 가르쳐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럴 때 저는 질문이 아니라 탄식을 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말도 안 되네요”라는 뜻이겠지요. 저는 스스로 창업경험이 있지만, 창업경험이 가르치는 자의 필수조건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부인과 교수도 아이 안 낳고 가르쳐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만, 짧은 대화로 그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이 분야 교수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학계 내부의 몰인정입니다. 지금 해외 주요 MBA 교과과정에서 창업과 관련된 교과목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를 제대로 된 학문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완고한 학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각은 주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흔한데, 경제학의 표준적인 교육과정에서 앙트러프러너십은 별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외생적’ 현상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창업과 관련된 내용을 한번 찾아보시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창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깊게 고민해 온 소수의 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졸탄 아쉬(Zoltan Acs)입니다. 헝가리 태생의 미국 이민자이면서 영국에서 교수생활을 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그는 자신의 연구경력 대부분을 국가별 창업생태계의 비교와 그것이 해당국가의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데 바쳤습니다. GEI(Global Entrepreneurship Index)라는 국가별 창업생태계 비교지표를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졸탄 아쉬의 완결이론 'DEE'
그런데 그가 작년부터 ‘디지털혁신창업생태계(DEE, Digital Entrepreneurship Eco-system)’라는 개념을 (자신의 완결판 이론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생태계를 따져볼 때 그 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여러 자원요소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이 환경을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이 왜 중요하며, 과연 타당한가를 따지는 것은 물론 학문적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가 설명한 네 가지 환경요소들은 현상을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그는 우선 ‘디지털시민권’에 주목합니다.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탄생하고 성장하려면 자유롭게 디지털 환경에 접속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적인 시민들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들 디지털시민들은 적극적인 고객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잠재적인 창업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디지털 문맹들을 어떻게 ‘개화’시킬 것인지 고민해볼 일이고, 무엇보다도 사찰하고 댓글 조작하는 자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한 것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요소는 ‘디지털 인프라 지배구조’입니다. 말이 좀 어렵지만 간단히 말해 공공부문의 디지털환경 개입 여하와 방법에 따라 혁신창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주로 규제에 관련된 논의입니다.
이 분야의 연구들을 살피면서 놀랐던 것은, 몇몇 나라의 정부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새로운 혁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정부는 까다로운 규제를 통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존재이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일에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런 규제와 씨름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영국과 같은 나라의 관료들은 새로운 혁신이 사회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의 관료들은 혁신의 속도에 맞추어 어떻게 입법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서 개입을 멈출 것인가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잖이 부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쉬가 디지털혁신창업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 것은 ‘디지털 마켓플레이스’입니다. 실제로 창업자와 사용자가 만나는 장을 의미합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다면시장플랫폼’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 안드로이드, 애플 등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거대기업들이 대부분이 플랫폼 사업자입니다.
우리는 플랫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쉬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한 생태계에서 창업활동이 어떤 플랫폼 위에서 일어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중국의 많은 창업활동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미국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창업기반 플랫폼인 셈입니다. 이들을 경쟁규제로 마구 몰아넣으면 안 되며, 생태계에 기여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 대목에서 부끄럽지만, 우리는 창업자들이 어떤 플랫폼을 기반으로 창업하고 있는지 따져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를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창업자가 탄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창업자를 더 많이 탄생하게 하려면 네이버를 독점규제로 밀어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구글처럼 우리나라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놓아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료를 근거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민망한 일입니다.
좀 딱딱하게 이론적인 이야기를 쓴 것은 아쉬움 때문입니다. 우리는 벌써 십수 년 창업생태계 육성이라는 구호를 외쳐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 창업지원과 투자시스템은 양과 질 면에서 매우 선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론이나 근거에 의하지 않고, 면밀한 분석과 통계 없이 “해봐서 아는데”와 “외국은 이렇대”에 의지하여 의사 결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론은 창업생태계의 적이 ‘국정원 댓글’이나 ‘네이버 때리기’처럼,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