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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2PL 물류 갑질 여전... "억울해도 말 못해"

by 신준혁 기자

2018년 03월 18일

화주·물류자회사 갑질 여전, 물량 무기로 단가 인하˙저가입찰 유도

관련법 정비한다지만, 구조 개선 효과는 아직...

 

화주기업과 물류기업 사이의 갑을관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의 물류자회사(2PL)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다단계 수주로 인한 저단가 비딩 등이 문제로 거론된다. 정부는 최근까지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실상 효력은 없다는 게 포워딩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행 주체를 기준으로 물류를 나누면, 크게 1자물류(1PL), 2자물류(2PL), 3자물류(3PL)로 나뉜다. 1자물류는 화주가 직접 화물을 운송하는 것, 2자물류는 화주의 물류자회사가 화물을 운송하는 것, 3자물류는 물류전문기업이 화주로부터 운송을 위탁받아 진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내 물류시장은 2·3자물류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대기업(화주기업)이 물류자회사(2PL)에 물량을 몰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선주협회의 지난해 9월 발표(재벌기업 물류주선자회사 횡포방지 대책)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 범한판토스, 롯데로지스틱스, 삼성SDS 물류부문, 삼성전자로지텍, 한익스프레스, 효성트랜스월드 등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그룹 의존도는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90%에 달한다.

재벌기업 물류주선자회사 횡포방지 대책 中(자료: 한국선주협회, 17년 9월)

 

물류 갑질 횡행, 말은 못해...

 

안정적인 물량 수주를 바탕으로 성장한 물류 자회사는 사실상 주선사의 역할만을 하고, 확보한 물량을 무기로 선사와 하청업체에게 저단가 요구 등 갑질이 이뤄진다는 것이 포워딩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를 제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이 있지만,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계열사)의 매출액이 30%을 넘는 경우, 화주기업에 증여세가 부과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중소 포워더의 물량을 대거 흡수해 상대적으로 계열사 매출 비율을 줄이는 실정이다.

 

중소 물류기업 및 주선업체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포워딩 업계는 물류자회사가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물량을 무기로 갑질을 하는 것이 오랜 관례라고 이야기한다. 포워더를 선정할 때 입찰경쟁을 유도해 단가를 낮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포워딩업체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외국계 포워딩업체 K사 관계자는 “한국 사회에 갑질 문화가 만연하지만 물류만큼 갑질이 잘 통하는 산업이 없다”며 “포워더와 같은 물류 하청업체는 저가 입찰을 하는 등 손해를 보더라도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그는 “큰 규모의 사업은 입찰 경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경쟁이 적은 작은 규모의 사업에서 겨우 수익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손해를 떠안으면서도 거래를 계속하는 이유는 ‘대기업 거래업체’라는 레퍼런스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이런 상황에 화주사나 물류자회사에 쉽사리 항의하거나 신고할 수 없다. 포워딩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실상 ‘갑을’ 관계인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화주를 신고하는 것은 ‘거래를 끊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우, 화주기업은 위탁 단가를 낮추거나 거래를 끊는 등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해운업계의 경우엔 할증료 전체를 운임에 포함시키는 ‘총비용 입찰’ 강요, 수송계약 체결 후 빈번한 재협상을 통한 운임인하 등이 대표적인 화주기업의 갑질 사례로 꼽힌다.

 

한 선사 관계자는 “해운산업 전반이 마치 서비스업과 같다. 물량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물량을 가진 화주에게 불만의 표시를 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 정비 계속, 성과는 아직

 

정부는 화주기업 및 물류자회사와 물류업체 간의 갈등을 인식하고 최근까지 관련법 정비를 통해 갑질 문화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선주협회의 제안으로 일감 몰아주기 방지를 위한 ‘해운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기업 물류자회사가 3자물량을 확보하고 선사에 저가 운임을 강요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모기업 물량만 처리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해당 발의안은 해운, 포워딩, 화주 등 물류업계 전반에서 관심을 끌었다. 법적으로 갑질 문화를 해소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해당 발의안이 시장논리에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현재 해당 발의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지난해 9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화물업계의 공정거래를 확립하기 위해 ‘물류정책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정부가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화주기업과 물류기업의 부당공동행위, 불공정거래행위, 부당이익 제공행위, 보복조치 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아 이를 조사하고 조정하게 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공정거래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로 이관될 예정이다.

 

한편, 물류자회사 측은 모든 물류업무에 대해 3자 물류를 활용하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기업 물류자회사는 다년간 확보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모회사에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기술을 개발, 투자해 결과적으로 화주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대기업 물류자회사 관계자는 “3자 물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2자 물류를 제한하는 건 결국 풍선효과를 가지고 온다”며 “2자 물류는 자사 공급망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긴급하게 바뀌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 경쟁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천동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연구소 교수는 “(물류방식은)원칙적으로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지만,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등 폐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준혁 기자

시류(時流)와 물류(物流). 흐름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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