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대표 물류연구기관, 한진물류연구원·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롯데물류연구소
R&D 조직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 ‘독립성’과 ‘일관성’
최근 물류업계에 연구기관이나 연구조직이 새로 신설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다. 롯데는 약 3개월 전 롯데물류연구소를 신설했다. 지난해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해 이름을 롯데글로벌로지스로 바꾼 뒤, 대표 브랜드 현대택배 역시 롯데택배로 이름을 바꾸고 신규 택배 브랜드를 론칭했다. 여기에 새로운 물류 전문 연구조직 구성까지 더해져 두 조직의 시너지 효과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물류업체들이 연구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기업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이때, 내부 혁신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공제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있는 추세지만, 정부 역시 연구소 설립 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으로 기업의 R&D 투자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연구조직의 특성상 기업의 성과에 따라 연구조직의 유지가 결정되는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활동 중인 민간 물류연구기관 사례로 한진물류연구원과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이 꼽힌다. 두 연구원과 롯데물류연구소의 사례를 통해 물류업계의 연구조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봤다.
물류 연구의 터줏대감, 한진물류연구원
한진물류연구원은 물류관련 민간연구기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91년 당시 ‘한진물류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26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초 한진해운이 파산하기 전까지 한진은 육운(㈜한진), 해운(한진해운), 항공(KAL), IT(한진정보통신) 관련 계열사를 모두 갖춘 것을 핵심역량으로 내세웠다. 종합물류기업으로서 현장 물류업무 실행력은 갖췄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자연스레 현장 이외의 연구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그 갈증의 배경엔 더 전문화된 물류 서비스의 필요성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평당 얼마’, ‘무게당 얼마’, ‘거리당 얼마’처럼 단순히 금액만을 가지고서 고객사에게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영업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객사의 물류업무에 대한 진단과 개선점을 도출하는 컨설팅의 개념이 물류업계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현장 업무만으로는 이러한 컨설팅 역량을 갖추기엔 부족했다. 이에 따라 물류기업에게도 컨설팅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됐는데, 그 기초가 되는 연구기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진그룹 역시 자사의 물류경쟁력 강화를 위해 물류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한진물류연구원이 앞서 말한 것 이외에도 물류지식과 물류인의 저변확대, 여기에 물류에 대한 사회적 공헌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엔 대학에 물류학과조차 전무했던 시절이고, 따라서 물류라는 학문적 이론정립이 아주 미미한 상태였던 사회적 배경이 주원인이다.
박찬익 한진물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진물류연구원의 설립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며 “설립 이후 물류전망이나 물류연감을 펴내는 활동을 했고, 연구원 자체에서 물류아카데미(구 물류스쿨)를 개설해 3PL, SCM, 물류IT, 택배, 수배송관리 등 중요한 물류키워드를 중심으로 임직원을 포함해 물류업계 종사자를 교육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한진물류연구원은 순수 연구 인력이 대부분인 조직이다. 자연스레 직접 고객사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기 보다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룹사 내에 다양한 수송업체가 있는 만큼, 연구 분야 역시 육운, 해운, 항공운송, IT 등으로 다양하다. 연구 과제는 연구원 자체에서 설정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의뢰하기도 한다. 한진물류연구원에서는 의뢰 받은 과제와 자발적으로 모집된 과제를 모아 자체적으로 필터링 과정을 거쳐 연간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하고 연구원에게 분배한다. 연구 수행 중 현장 인력의 도움이 필요하면 일정 기간 차출해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한진물류연구원에서는 학술활동을 중심으로 물류동향, 물류전망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대외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논문이나 자료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96년부터 발행해 온 교통물류연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업 밀착형 프로젝트가 늘어났다는 것이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데이터가 나날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맞춰 연구원의 키워드를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로 설정하고, OR(Operation Research) 부문을 강화해 현장 적용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중요하게 작용한 사례가 바로 한진택배가 2015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 동남권 택배허브터미널을 구축한 일이었다. 박 연구원은 “이전까지의 택배 트랜잭션(Transaction: 쪼갤 수 없는 업무처리의 단위)과 유동패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통해 업무 효율이 높은 수도권에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를 적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물류아카데미 역시 올해 개편을 거쳐 현장 업무 인력이 숫자와 데이터를 가지고 솔루션을 잘 도출할 수 있도록 역량강화(Skill-up)에 초점을 맞췄다.(다만 현재는 그룹사 내 인력만을 대상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연구와 컨설팅의 시너지,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
물류업계에서 현재 가장 큰 연구기관을 가진 업체는 CJ대한통운으로 꼽힌다. 연구인원으로 따지면 150명 안팎으로 파악된다. 출신 역시 현업 출신보다는 순수연구 업무를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연구기관들이 구체적인 인력 규모를 밝히지 않아, 구체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 가장 큰 규모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의 경우 연구역량과 컨설팅역량의 결합이 가장 큰 강점으로 부각된다. 일반적으로 기술 연구소, 컨설팅팀, IT 컨설팅조직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데에,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은 연구인원이 개발하고 고민한 연구 콘텐츠를 직접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 된다. 그렇다보니 고객에게 큰 틀에서의 방향성뿐만 아니라 필요한 설비 도입, 솔루션 제공 등 실행 단계에서도 비교적 고객에게 와 닿는 방식을 추천해 자연스레 제안 영업력은 강화된다.
대외적으로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은 기술과 솔루션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TES센터다. TES는 테크놀로지(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 시스템&솔루션(System&Solution)을 합한 것으로, 종합물류연구원의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역시 방향성으로 강조해 스타트업과의 제휴 등을 통해 신기술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연구기관의 주 업무가 컨설팅에 집중되면, 본래의 기능인 연구, 개발 부문에 집중되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이에 대해 최용덕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R&D에 집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기술을 개발하면, 그것이 실제 적용되었을 때의 현장을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따라서 연구원에 대한 KPI 평가 역시 영업 분야와는 다르게 설정된다”며 “컨설턴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회사의 가치사슬(Value Chain) 확대나 개발한 기술의 현장 적용도, 경영혁신에 대한 기여도 등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의 연구원은 새로운 기술 개발과 적용을 연구하면서도, 그것을 컨설팅 기반으로 활용하는 ‘기술컨설턴트’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물류, 유통업 등 다양한 고객과 만나면서 본 현장의 모습과 변화는 연구원에게 다시 자극이 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데 좋은 재료가 되어 선순환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새로 진입하는 자, 롯데물류연구소
최근 한진, CJ대한통운에 이어 대기업 내에 물류연구소가 신설되며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롯데물류연구소다. 롯데의 경우, 그룹의 계열사 개념으로 롯데중앙연구소가 존재한다. 다만, 롯데중앙연구소는 식품과 관련된 연구가 주로 이뤄져 물류만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기관은 이번 롯데물류연구소가 처음이다.
롯데물류연구소의 조직이 꾸려진지 약 3달 정도가 됐다. 다만, 연구소장 자리가 공석으로 비어 있어 공식적인 출범 소식을 알리지는 않는 상태다.(작년 11월 말 기준) 현재 롯데물류연구소는 롯데로지스틱스 산하로 귀속되어 있다. 롯데물류연구소 내부 관계자는 “아직까진 TF의 형태로 물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제대로 조직이 갖춰지면 그때 독립적인 그룹 계열사 하나로 독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롯데물류연구소의 ‘물류연구소’인만큼 롯데로지스틱스와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정보통신 세 업체 출신의 구성원과 일부 순수 연구원 출신의 인원들이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구성원으로만 보면, 현업 출신의 연구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의 모델을 좀 더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는 앞선 언급된 것처럼 수장의 자리가 비어 있어 구체적인 연구 방향이나 분야가 정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현업 출신의 연구원들이 많은만큼 당장 필요한 PI(Process Innovation)* 컨설팅 관련 프로젝트에는 돌입한 상태라고 내부 관계자는 전했다.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조직, IT 등 기업활동의 전 부문에 걸쳐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효과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축 하는 경영개선 업무(한경 경제용어사전)
해당 관계자는 “아직 내부 정리 중이라 향후 연구소 운영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지진 않은 상태”라면서도 “최근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물류 서비스 역시 고객에 요구에 맞춘 서비스가 필요한데 이번 물류연구소 설립을 통해 다양한 고객의 상황에 맞춰 균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는 물류 플랫폼화, 통합작업이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구소에 원하는 것, ‘일관성’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류 관련 연구기관이나 조직에 대한 기업의 니즈는 꾸준했지만, 과거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기업에서 연구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기업 지속성장의 거름이 되게 하려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할까.
이에 대해 연구 종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것이 ‘독립성’과 ‘일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민간연구기관이나 연구조직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회사 내부에 귀속되어 있거나 독립된 형태다. 한 회사 내부에 귀속되는 경우, 업무 성격 상 대부분 연구부서는 보통 기획경영이나 기획전략 조직 산하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조직이 R&D 업무가 아닌 현업에 지나치게 투입되는 경우, 연구조직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해 성과를 내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즉, 연구 인력이라면 성과보다는 마음껏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회사의 경영철학과 맞물리는 문제다. 한 물류연구업계 관계자는 “연구기관을 대할 때 ‘비용과 성과주의의 관점’에서만 보기 보다는 기업 차원에서 R&D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나아가 자사의 물류사업과 관련된 R&D의 목표를 가지고 관련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