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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톡톡] 필름깡통이 하드디스크가 된 그 이후

by 엄지용 기자

2017년 08월 07일

※ ‘소셜톡톡’은 SNS상에서 특정 이슈를 주제로 오간 ‘자유담론’을 정리합니다. 본고는 ‘영화산업의 디지털전환’을 주제로 CLO 엄지용 기자와 전기화물자전거 제조업체 이삼사의 장기석 CSO 사이에 오고간 내용을 기반으로 합니다. 대담자의 주관이 들어간 조금은 자유로운 글입니다.

▲ 옥자 스틸컷.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옥자는 돼지영화다. (사진= 넷플릭스)

 

<옥자>가 영화업계에 던진 파장이 굉장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6일 기준 데이터에 따르면 옥자의 누적 관객수는 31만 6,541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옥자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상영관 3사의 보이콧으로 스크린 확보의 핸디캡을 안고 시작한 상황(옥자 개봉당시 스크린점유율= 1.9%)에서 이룩한 성과이기 때문에 경이로운 성과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옥자의 성과가 놀랍다고는 하지만, ‘옥자’의 제작비로 알려진 5000만 달러(약 560억 원)에 비하면 관객수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에 터무니없어 보이는 숫자인 것이 사실입니다. 옥자의 티켓 판매 매출은 고작 24억 원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런데 관객수와 별개로 또 하나 주목할 수치가 있습니다. 옥자 개봉 이후 넷플릭스 국내가입자는 약 9만 8000명에서 20만 명 이상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한국진출 후 약 1년간 쌓았던 가입자 수를 불과 한 달도 안 돼 유입시킨 것입니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옥자가 한국에서만 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콘텐츠의 파급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넷플릭스가 진출한 글로벌 시장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올해 2분기 전 세계 넷플릭스 신규가입자는 약 520만 명으로 집계됐으며, 누적 가입자 수는 1억 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 넷플릭스 한국 요금제 안내

단순 계산으로 신규 유입된 520만 명이 한 달 스트리밍 요금으로 1만 원씩만 낸다고 하더라도 520억 원입니다. 두 달이면 옥자의 제작비는 훌쩍 넘길 수 있겠네요.

 

물론 글로벌 넷플릭스 가입자수 증가의 원인을 ‘옥자’ 하나로만 보는 것은 비약이며, 넷플릭스가 독립 콘텐츠로 ‘옥자’ 하나만 투자하는 회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옥자가 기존 극장 중심의 배급시장에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채널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디지털 전환은 예전에도

 

사실 넷플릭스와 같은 VOD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의 등장 훨씬 이전에도 영화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논의는 있어왔습니다. 종전까지 DHL, UPS와 같은 특송업체가 필름깡통을 각 극장으로 직접 배송하는 방식을 ‘파일’이 오고가는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논의였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한창 ‘디지털시네마 전환’이 이슈화 됐던 2005년 당시 KT에서 영화 디지털배급 사업을 검토하는 일을 맡았던 장기석 이삼사 CSO의 경험담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장기석 : 디지털 배급이 진행되기 전 국내 영화시장에서 필름배급은 필름깡통 5~7벌을 특급우편을 통해 각 극장으로 배송하는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극장에는 두 개의 영사기가 있었고, 1벌 상영이 끝날 때 즈음, 대기하고 있던 2벌의 프린트가 상영되는 방식이었죠.

해외 수입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헐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자면 대부분의 영화와 프린트가 태국이나 호주에 모여서 자막 작업 및 일부 색 보정, 각국의 영삼심의규정에 따른 재편집을 거쳐 항공 특송으로 국내에 반입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공항에 들어온 프린트는 수입사/배급사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픽업하여 이를 다시 홍보물과 함께 각 극장으로 배송됐죠.

저는 가장 ‘KT스러운’ 컨텐츠 사업이 이런 오프라인 필름 배급을 ‘디지털 배급화’ 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당시 KT가 보유하고 있는 망은 DCN(Digital Contents Network) 사업을 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으니까요. KT는 위성, 해저케이블, 유선케이블, 무선케이블 등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중앙 관제 및 서버 클라우드, 전송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죠.

필름깡통을 인력으로 무식하게 배달하기보다 허브에서 각 지역의 극장으로 전송하여 상영하는 시스템, 이것은 사실 물류산업의 ‘허브앤스포크’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원래 케이블 통신 사업자들이 그린 그림이 사실 허브앤스포크이기도 했구요.

 

오프라인 필름 영화 배급의 디지털화 논의는 어찌 보면 부가적으로 드는 ‘물류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연히 나타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당시 KT의 생각처럼 쉽게 사업이 추진되지는 못했나 봅니다. 이 시스템을 안착시키려면 전통적인 영화배급사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일단 헐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들이 이를 반대한 것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합니다. 장기석 CSO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장기석 : 당시 배급사들이 디지털 배급에 반대하며 공식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즉 복제 이슈였습니다. KT 역시 미국에서 공식 상용화된 MS사의 DRM 기술을 적용시키고자 했는데, 디즈니, 20세기폭스, 유니버셜 등의 스튜디오들이 모두 반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유야 어쨌든 당시 제 입장에선 이런 배급사들의 모습이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배급’으로 인해 배급사가 모든 유통채널, 즉 극장 외 TV-PC-Mobile 플랫폼에 대한 주도권을 뺏기면 그들이 할 것이 별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은 배급 스튜디오 사업자가 극장 사업을 못하게 되어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하드디스크’

 

여러 논란에 불구하고 영화배급의 디지털화는 시대의 대세처럼 다가왔습니다. 국내에서도 2004년 6개 디지털 상영관을 시작으로 현시점에선 거의 대부분의 스크린이 디지털 상영관으로 바뀐 상황입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처럼 아날로그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몇몇 작품들이 아직 있긴 하지만, 필름 촬영 작품도 ‘디지털 컨버팅’이 쉽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럼 물류는 어떨까요? 이론적으로는 전혀 필요 없어져야 맞는 것일텐데요.

장기석 : 디지털 배급의 시대, 필름 물류의 대상은 기존 ‘깡통필름’에서 ‘하드디스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만 이러냐고요? 헐리우드 영화도 실상은 같습니다. 태국, 호주 등에서 2차 가공 후 하드 디스크 형태로 한국에 도착하면 수입, 배급사 관계자들이 공항에 나가서 자료를 받은 후 하드디스크 여러 개를 각 극장에 배송하는 방식입니다. 왜 하드디스크를 여러 개로 쪼개서 보내냐구요? 이것도 다 DRM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 배급 시장의 디지털 혁신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전미 디지털시네마 배송 책임업체인 UPS를 비롯한 FedEx, DHL, TNT 등 특송업체들도 당장 큰 돈을 잃고 싶지는 않겠죠.

 

▲ 필름깡통은 이렇게 생겼다. 첨언하면 <덩케르크>는 IMAX+ 6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장기석 CSO가 현시점 한 글로벌 영화 직배사 고위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러한 ‘하드디스크’ 물류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국내 한 영화제 관계자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도 이와 같았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감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암호화된 DCP(Digital Cinema Platform) 파일을 주거나, 택배로 파일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보낸 것을 받아 상영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배급사나 물류업체 입장에서도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추후 관련된 물류업체나 배급사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마침 국내에서는 DHL이 영화제 관련물류를 맡고 있어 관련 인터뷰를 요청해두기도 했지요.

 

어찌됐든 디지털은 다가온다

 

하드디스크 이야기는 잠시 뒤로하겠습니다. 어찌됐든 플랫폼의 등장으로 영화업계에 ‘디지털전환’의 바람은 다시 한 번 불어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풍이라 볼 수도 있겠는데요. 최소한 기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상영관들을 긴장하게 할 만큼의 바람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장르영화를 참 좋아하는 제 입장에선, 기존 시스템을 통한 ‘배급’, ‘상영’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의 다양성영화에 플랫폼이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지 기대 됩니다. 사실 전 지난달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이틀의 휴가를 보냈었는데요.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퀴어’, ‘스카톨로지’, ‘마조히즘’, ‘카니발리즘’과 같은 절대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의 영화를 잔뜩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 2017 부천국제영화제 상영작 <로우> 스틸컷. 선배의 꼰질로 육식에 빠진 채식주의자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아름다운 작품이다.(사진= 부천국제영화제)

 

이 같은 장르는 대중이 즐기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는 있습니다. 절대 대중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들이 박수갈채를 받는 영화제 판입니다. 전 세계의 매니아들이 영화제 방문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껏 이런 영화들은 대중시장의 외면을 받았죠. 극장에서 틀기엔 돈이 안됐거든요. 일례로 2016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얻어 올해 극장 개봉까지 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대책없다>의 관객수는 1,706명이었습니다. 베드씬 빼고는 레알 보면 안된다고 이야기 되는 그 영화에도 47만 명이 들었다고 하는데 숫자부터 차이납니다.

 

자, 그런데 전 세계 1억 명의 관객이 스트리밍을 받고 있는 플랫폼 넷플릭스가 나왔습니다. 1000만 관객만 넘어도 그해 흥행 1위를 갈아치우는 한국시장과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지금껏 절대 대중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었던 매니아 시장이 ‘플랫폼’이라는 수단을 통해 거대하게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제가 휴가기간 마지막으로 본 영화인 <어둔밤>의 심찬양 감독은 GV(Guest Visit)를 통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의 미래는 넷플릭스에 있다”고요.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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