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서 꽃 핀다,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동남아
코린도부터 태광실업까지…사례로 보는 동남아의 기회요소
글. 남동현 트레드링스 이사
기회의 땅, 동남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동티모르, 브루나이.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휴양지 혹은 신혼여행지? 틀린 답은 아니다. 물가는 싸고, 아름다운 해변과 리조트 역시 즐비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기대했던 답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위험(Risk)과 기회가 공존하는 땅이다. 많은 동남아 국가의 물류·통관시스템, 항만, 내륙 및 철도 인프라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국제정서와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분명한 것은 향후 동남아의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남아의 과거와 현재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남아 국가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 국가 GDP, 1인당 GDP, 인프라 순위, 물류 순위를 살펴보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대부분 동남아 국가의 순위는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가 $27000인데 비해 인도네시아는 $3347, 필리핀은 $3077, 베트남은 $2043에 불과하다. 국가 경제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남아도 사정이 있다. 우선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겪었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미얀마와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일본의 식민지를 지나온 한국은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아직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기적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동남아 미래의 청사진
우리는 동남아의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해 동남아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공황 같은 특수한 기간을 제외한다면, 동남아의 FDI는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현재 동남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금이 모여드는 곳이다. 과거 중국에 자리한 제조시설에 돈을 투자했던 기업들이 이제 동남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이 동남아에 투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동남아가 중국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제조국가에서 세계 1위의 소비국가로 발돋움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제조원가가 올랐고, 이에 따라 중국에 제조공장을 둔 기업들이 동남아로 몸을 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80년대 한국과 2000년대 중국을 발전시켰던 ‘산업화(Industrialization)’의 바람이 동남아에서 불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는 소비시장으로서도 매력적이다. 물론 아직은 동남아 사람들의 소비여건이 좋지 않지만, 산업화로 인한 투자유치 및 시장발달이 머지않아 동남아의 구매력 상승을 촉진할 것이다. 인구수만 보더라도 인도네시아는 인구는 2억 5,000만 명이고, 베트남 역시 1억 명에 육박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이들 국가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상당수가 동남에 내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중국처럼 동남아에서도 산업화와 내수시장의 성장이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산업화의 열쇠를 쥔 ‘물류’
하지만 마냥 기다린다고 장밋빛 미래가 찾아오지는 않는다. 산업화와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은 바로 ‘물류인프라의 발전’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2년 단위로 발간하는LPI(Logistics Performance Index)를 보면, 물류인프라, 통관, 정속성, 트레킹 항목에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의 순위는 모두 50위권 바깥에 있다.
또한 세계은행이 매년 발간하는 사업 현광 평가결과(Doing Business)는 동남아의 주요 국가들의 물류수준이 선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와 비교하면 얼마나 떨어지는지 보여준다. 특히 수입 프로세스를 진행할 때 소요되는 시간은 한국의 30배 이상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역시 달라지고 있다. 열악한 물류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동남아 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물류시스템 효율화와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인도네시아는 통관 및 서류제출에 대한 창구를 일원화하여 수출입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개선했으며, 베트남은 통관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수출입 효율을 높였다.
문제는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인프라 사업은 시스템 효율화와 달리 천문학적 금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국가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탓에, 인프라 사업에 드는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앞으로 추진되는 인프라 사업은 민관협력사업(Public Private Partnership)을 통해 주로 이뤄질 전망이다. 요컨대, 동남아 국가의 열악한 인프라, 부족한 재정이 기업으로서는 기회일 수 있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동남아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 FDI는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국내 물류업체 가운데서도 동남아 진출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곳이 있다. CJ대한통운이 대표적이다. CJ대한통운은 재작년부터 중국 진출 및 중국 내 시장 확대를 꾀하더니, 작년 말부터는 베트남 등 동남아까지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는 아직도 칠판에 글씨를 적어 택배를 분류한다. CJ대한통운은 이처럼 열악한 동남아 택배 시장에 국내의 효율적인 택배 시스템을 도입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성공적인 동남아 진출 사례
지금까지 동남아에 감춰진 ‘기회’에 대해 말했다. 이제 이 사실을 입증할 만한 사례를 살펴보자. 사실 물류업체가 아니더라도 동남아에 진출해 성공한 한국 기업의 사례는 많다. 그 가운데서 필자가 동남아 출장을 다니며 직접 만난 회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1969년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한국계 기업 코린도(Korindo)는 현재(2016년 3월 기준) 인도네시아 내에서 20대 기업에 들 정도로 성장했고, 그 밑에 중공업, 화학, 물류, 금융, 제지 등 3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2010년 필자가 한국 증권거래소 상장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코라오홀딩스(Kolaoholdings)도 있다. 오세영 코라오홀딩스 회장은 베트남에서 크게 사업을 벌이다 사기를 당해 라오스로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코라오홀딩스를 ‘라오스의 삼성’이라 불릴 정도로 성장 시켰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트럭과 오토바이 등을 수입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시중은행을 설립하여 라오스 내 1위 은행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끝으로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나이키 신발을 제조하는 업체로 유명한 태광실업은 교섭력과 현지 적응력이 최고의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태광실업은 2013년 말레이시아 정부 및 유관기업과 천연가스 매입 계약 당시 뛰어난 교섭력을 바탕으로 당시 국제 거래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수익성을 크게 제고한 바 있다.
물론 지금 언급한 세 기업은 엄밀히 말하면 물류업체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물류’와 깊게 연관돼 있다. 가령 조림사업을 하는 코린도의 경우, 코린도 소유의 조림지가 도시와 떨어진 정글 한 가운데 있다. 그러나 코린도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바지선(Barge)을 이용함으로써 나무로 만든 반제품과 완제품을 조림지에서 항구까지 싸고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
코라오홀딩스는 라오스 진출 초기 현지에 트럭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트럭을 먼저 들여와 판매 및 운행에 나섰다. 나중엔 이 트럭을 이용해 오토바이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판매하기도 했다. 코라오홀딩스는 물류인프라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곳에 현지화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을 스스로 마련함으로 현재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면 물류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해 동남아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남아 국가에 부족한 게 어디 물류뿐이겠는가. 하지만 이들 기업은 그 어려운 환경을 모두 극복하고 성공을 거두었다.
진흙 속에서 꽃이 핀다
물론 성급한 투자는 금물이다. 투자자들 역시 동남아에 대한 관심만으로 투자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많은 것을 고려하고 따져봐야 한다. 수익률은 물론 지급보증 등의 조건들도 잘 체크해야 한다. 동남아에 어지럽게 얽혀있는 정치적, 법적 이슈들도 많다.
하지만 분명히 동남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일본이 동남아의 제조시설 및 물류인프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기업들이 시장에 대한 검증을 마치고 주요 기업으로 자리잡아가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동남아에 진출한 선도적 물류기업들의 노력에 의해 열악한 물류시스템과 인프라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더 이상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하던 동남아가 아니다. 이제 시스템과 논리적 관점에서 동남아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동남아는 분명 기회로 가득 차 있다. 동남아의 열악한 환경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진흙 속에서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가 왔다.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학부를 맞친 후 IBK투자증권에서 리서치와 IB, 삼일회계법인에서 해외 인프라투자 Advisory 등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현재 국제 물류 플랫폼 스타트업인 트레드링스에서 투자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페이스북}